3(1). 가능합니다

기한이 남은 사람으로 산다는 것

by 류서윤

아버지는 공여자 수술을 위해 담배를 끊으셨다.

습관처럼 이어지던 삶의 일부였던 것을 단호히 놓으셨다. 오직 나를 위해.


이식 적합성 검사에서 고혈압 소견이 나왔을 때도 약 복용을 미루셨다.

대신 운동을 하고 식사를 조절하며 조용히 몸을 다듬으셨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동안 마음은 무거워졌다.

평생 짊어지지 않아도 될 짐을 아버지의 어깨에 얹어둔 것 같아서.


어떤 미안함은, 말로 꺼내는 순간 더 아프다.

그래서 침묵으로 삼키며 결과를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의사의 한 마디.

“이식 가능합니다.”


그 순간, 아버지의 등 뒤에 숨어 있던 수많은 눈물과 헌신, 사랑과 희생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한 사람의 결단이 또 다른 사람의 삶을 다시 시작하게 한다는 것. 그 사실을 온몸으로 기억했다.


공여자 수술을 먼저 마치신 아버지는

"단 하루, 그 하루만 아팠다"고 하셨다.


그리고 수혜자인 나는 수술 직후 무균실로 옮겨졌다.

의식이 희미한 가운데 유리창 너머로 한 사람이 서 있었다.

환자복을 입고 한 손에 링거를 든 채 나를 바라보고 있는 아버지.


그 순간, 분명히 살아 있었다.

내 안에서 뛰는 아버지의 신장 소리를 들으며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감사와 사랑이 숨결을 따라 천천히 흘러내렸다.




<나의 기록>


이식 적합성 검사는 결코 간단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아버지의 건강이 우선이었고, 나와 면역학적으로 맞지 않으면 내 생명조차 보장되지 않았다.

‘이식’이라는 단어가 의사의 입에서 나왔을 때, 아버지는 주저하지 않으셨다.

4시간 혈액투석 치료를 마치고 집에 와도, 온종일 구토를 하고 요독으로 인해 생긴 피부 가려움증으로 얼굴과 팔, 다리를 피가 나도록 긁어댔다.

매일 밤 가위에 눌려 온전한 잠을 자지 못하고, 음식과 물조차 제한해야 했다.

스물일곱의 아픈 딸을 보며 아버지는 곧장 마음을 정하셨다. “내가 이식을 해줘야 한다.”

그 순간부터 우리 집은 전쟁터가 되었다.
어머니는 식이 제한해야 하는 환자식을 어렵게 준비하여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이려 온종일 애쓰셨고,

큰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분주해졌다.

그 시절, 신장이식은 지금처럼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 못했다.

간호사들도, 다른 환자들도 부작용을 이유로 “차라리 투석이 낫다”라고 말하곤 했다.

자세한 정보, 지식도 없이 그저 딸을 살리겠다는 결심으로 부모님은 이 모든 것을 행하셨다.


가족이라고 해서 이식이 당연한 건 아니다.
그때는 몰랐지만, 세상에는 가족끼리도 이식 문제로 더 큰 상처를 안고 사는 사람들이 많았다.
어린 나는 그것을 알지 못했고, 지금에야 부모님께 더 깊은 감사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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