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아픈 엄마에게 딸이 낫다

기한이 남은 사람으로 산다는 것

by 류서윤

“엄마가 아프면 딸이 낫지.”


임신 내내, 가장 많이 들은 말이다.


그래서 나는 간절히 바랐다.

제발, 딸이 아니기를.

아니 어쩌면 애초에 임신 자체를 하지 말았어야 했던 걸까.


누군가에게 짐이 되는 사람으로는 살고 싶지 않았다.

봉양을 바라지도 남편에게 온전히 기대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소박한 가정을 이루고 싶었을 뿐이다.


우리 부부에게는 아기의 성별은 중요하지 않았다.

단 하나의 질문만이 매일 가슴을 눌렀다.


'내 몸이 이 아기를 끝까지 품어줄 수 있을까'


나는 매일 면역억제제를 삼키며 아기를 품었다.


오른쪽 복부에는 아버지의 신장이,

그 옆에는 천천히 자라는 아기가 자리했다.


고요히 살아내는 풍경은

기적이면서도 늘 미안한 마음이 스며들었다.


비슷한 시기에 임신했던 이식 환자가

30주에 아기를 떠나보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임신중독증으로 신장을 잃고 다시 투석으로 돌아간 사람,

임신 때문에 아예 신장을 잃어버린 사람.


그 이야기들이 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겁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그러나 나는 믿고 싶었다.


내 안에서 뛰는 두 개의 심장이

끝까지 서로를 지켜낼 거라고.


그래서 아들이든 딸이든 상관없었다.

그저 건강하게만 태어나기를.

그리고 내 몸이 끝까지 버텨주기를.

임신과 출산이라는 열 달의 치열한 드라마가

언젠가 누군가에게 단 한 줄의 희망이 되기를.


"가능합니다."


그 한마디가 또 다른 엄마의 심장을 살리고,

또 다른 아기의 심장을 뛰게 하기를.


그리고 언젠가

아픈 몸으로도 생명을 품을 수 있었다는 나의 기록이

누군가의 두려움을 덜어내는 증거가 되기를.




<나의 기록>


나는 임신과 출산을 기적처럼 경험했지만,

그 과정은 단순히 개인의 용기만으로 가능하지 않았다.

이식 환자의 몸은 보통 사람과 다르지 않아 보이지만

법적으로도 혈액투석 환자와 이식 환자 모두 장애인이다.

그러나 외관상 티가 나지 않아 역차별을 받기도 했다.

런 현실 속에서 한 생명을 품는다는 건, 두 배의 무게를 감당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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