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 위의 시간들
어떤 날은, 살아 있다는 감각조차 내려놓고 싶다.
하루는 약으로 시작해 약으로 끝난다.
이식 이후의 삶은 ‘나아진 삶’이 아니라, 그저 ‘다른 방식의 생존’ 일뿐이다.
내 안의 면역은 더 이상 나를 지켜주지 않는다.
이제는 가장 먼저 경계해야 할 적이 되었다.
하루 29알의 약 중,
가장 독한 약이 내 생명을 붙든다.
면역억제제. 몸의 방어를 없애는 대신, 시간을 준다.
아주 조금 더 살아 낼 시간을.
그렇게 얻은 ‘연장된 기한’은 값비싸다.
암의 그림자가 내 몸 안 어딘가에 숨어 있었고,
얼굴은 부어오른 풍선처럼 낯설게 변했다.
기억은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모래처럼 새어갔다.
사람들은 말한다.
“그래도 이식해서 다행이지.”
“이제는 괜찮아졌잖아.”
괜찮아진 건 겨우 껍데기뿐이다.
몸속의 고장은 여전했고,
나는 그 고장을 감춘 채 하루를 이어간다.
작은 열에도 영유아용 체온계를 챙기고,
감기 기운에도 병원 침대를 먼저 떠올린다.
외출 전날이면 약과 음식을 다시 계산하며
내일을 위해 오늘부터 싸운다.
오늘도 면역과 맞서며,
내 안에 조용히 뛰는 아버지의 신장과 함께
천천히 하루를 버텨낸다.
이식 이후 병은 줄지 않았다.
다만 고통과 공존하는 법을
약으로 배우고 있을 뿐이다.
그렇게, 기한은 조금 더 이어졌다.
마치 희미하게 타오르는 불씨가
끝내 꺼지지 않고 이어지듯이.
<나의 기록>
신장이식 환자의 삶은 '약'과의 공존이다.
나는 하루에 25~30알의 삼킨다(개수는 더 추가될 수 있다).
아침에는 알약을 늘어놓고 손바닥 위에서 몇 번을 세어본다. 하나라도 빠뜨리면 안 되니까.
'공복'에 먹어야 하는 약도 있다. 삼키고 나면 속은 더부룩하고, 손가락 관절은 욱신거린다.
거울 속 얼굴은 점점 붓고, 피부는 얇아져서 작은 상처에도 쉽게 피가 난다.
이식은 혈액투석의 합병증과 병원 침대에서 보내는 시간을 줄여주었으나, 고통을 없애주지 않았다.
다만 매일 이 약들을 삼켜야만, 조금 더 살아낼 수 있다는 걸 알게 해 주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