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버린 빨강 - 2
지금도 넉넉한 삶을 살고 있는 건 아니지만
어린 시절의 우리 집은 분명 가난이라는 말과 잘 어울렸다.
아버지는 도박과 술, 그리고 여자 문제로 늘 가족을 힘들게 했다.
집안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엄마는 매일 새벽이면 저편에 떠있는 달을 보며 일하러 나갔다.
그리고 해가 완전히 지고 캄캄해진 밤이 되어서야 지친 얼굴로 돌아오곤 했다.
이 맘 때는 몰랐었다.
아버지의 잦은 부재와 어머니의 바쁜 일상이 나에게는 너무 이해 가기 어려운 어린 나이였기에.
내 나이 고작 4~5살이었을 때이다.
그런 아버지와 어머니의 빈자리를 채운 건 할머니였다.
그날도 아마 어머니는 일하러 나가 계셨고, 아버지는 어디에 있었는지조차 기억에 없다.
할머니마저도 잠시 집을 비웠던 것 같다.
그 일이 일어났던 순간 나는 어른들 중 누구와도 함께 있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연탄을 피웠던 걸 보면 아마도 겨울이었으므로 짐작해 본다.
좁은 부엌에선 연탄불이 피워져 방을 데우고 있었다. 가장 따뜻하고 푸근한 공간이었다.
부뚜막 옆엔 밥인지 국인지 모를 음식이 담긴 양푼이 놓여 있었던 기억이 난다.
정확한 시간도, 그날이 어떤 날이었는지도 모르겠지만, 하나는 확실하다.
배가 고팠다.
한 살 터울의 언니와 나는 연탄불을 사이에 두고 부뚜막 양옆에 나란히 앉아 음식을 먹으려 했다.
음식이 담긴 그릇은 언니 쪽에 있었다.
언니는 또래보다 유독 힘이 세고 자기주장이 강했다.
매번 말로도 지고 행동으로도 눌려 지냈다.
그날도 먼저 더 많이 먹으려고 했던 언니는 순간 나를 밀쳐냈다.
나는 넘어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다가 그만 오른손으로 연탄불 위를 짚고 말았다.
기억 속에서 아팠던 감각보다도 더 강하게 남은 건 놀람이었다.
너무 놀라서 울었고, 언니는 그런 나를 뒤로하고 부엌을 뛰쳐나갔다.
아마 언니도 무서웠으리라.
이때 우리들은 고작 5~6살 정도였으니까.
그다음 기억은 어렴풋하게 할머니가 돌아와 부엌의 쪽방에서의 장면으로 이어진다.
상처를 본 할머니는 병원에 데려가는 대신 민간요법을 선택하셨다.
병원보다 점과 굿, 무당을 더 믿으셨던 분이었으니까.
할머니는 화상에 좋다며 큰 대야에 소주를 가득 부었다.
소독을 해야 한다면서 내 팔을 잡아끌어 소주에 손을 담그려 했다.
나는 본능적으로 거부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강한 힘으로 내 팔을 끌어당겼고, 내 손은 소주 속으로 푹 잠겼다.
그 순간의 고통은 지금도 또렷하다.
수십 개의 바늘이 손바닥을 찌르는 듯했고, 쓰라림과 통증이 뒤섞여 머릿속이 하얘졌던 끔찍한 기억으로.
비명도 지르지 못할 정도로 아팠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소독이 끝났으니 이제 치료를 해야 한다며 할머니는 장독에서 된장을 퍼왔다.
진한 갈색의 된장이 내 손바닥 위에 덕지덕지 올려졌고
그 위를 긴 흰색 천으로 둘둘 감싸며 할머니는
“흘리지 마라, 이게 상처를 빨리 아물게 해 준다”라고 하셨다.
된장에서 나는 야리꼬리 하고 고약한 냄새
한 없이 무겁게만 느껴졌던 천의 무게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받아들여야만 했던 여리고 어린 나의 마음.
몸보다 마음이 더 무거웠던 시간이었다.
저녁 무렵 일을 마치고 돌아온 어머니는 내 손을 보고 놀랐다.
“병원에 데려가지, 이게 뭐 하는 짓이에요!”
어머니의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맴도는 것 같다.
그날의 기억은 내게 지워지지 않는 상처이자 충격이었다.
그 이후 내 오른손엔 지문이 또렷하지 않게 남았다.
어쩌다 행정복지센터에 가서 증명서를 발급받을 때면
지문 인식을 수 차례 시도해야 한다.
회사에선 야근 확인 절차로 지문 인식을 하는데
그때마다 번번이 멈춰 서야 한다.
손금을 볼 때도 사람들은 오른손을 내밀라 하지만
내 손은 울퉁불퉁하고 흐릿해 잘 보이지 않는다.
손바닥 윗부분과 손가락까지 형태가 자연스럽지 않다.
때로는 언니에 대한 원망도 들었다.
‘왜 나를 밀었을까?’ 하는 생각이 수없이 맴돌았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마음도 조금씩 변했다.
그래 언니도 그때는 초등학교도 가지 않은 겨우 몇 살짜리 아이였지.
그 또한 나처럼 어리기만 했을 뿐이란 것을.
오른손을 바라보면 그날의 겨울이 떠오른다.
화상보다 더 뜨거웠던 기억.
하지만 지금은 그 기억 속에서 나를 꺼내어 천천히 들여다보고 다시 걸어보려 한다.
그날의 나를 위로하고 그 상처를 껴안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