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했던 초록 - 3
비 오는 날엔 이상하게 마음이 조용해진다.
도서관 창 너머로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속 무언가가 살짝 열리는 느낌이랄까.
그날도 그랬다.
유독 소나무 한 그루가 눈에 띄었다.
비를 맞고도 꿋꿋하게 서 있는 그 나무.
그리고 그 아래를 기어 다니던 송충이.
잊고 지냈던 기억 하나가 스멀대듯 떠오른다.
내가 여덟 살이던 해. 초등학교 1학년.
그땐 국민학교라고 불렀다.
"야, 너 국민학교 나왔냐?"
요즘 누가 그렇게 묻기라도 하면 나도 모르게 "아, 나도 이제 나이깨나 먹었구나" 싶다.
그 해 여름날, 비가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퍼부었다.
꽤 오랫동안 많은 양의 비가 내린 듯싶었다.
엄마는 어디 중요한 일이라도 있었는지 나가봐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아랫동네가 물에 잠겼다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나는 속으로 ‘오늘은 학교 안 가도 되겠다~’ 슬쩍 기대했다.
그렇지만 우리 엄마는 그런 분이 아니셨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학교는 가야지!”
엄마 말대로라면 태풍이 와도 가야 했다.
그날은 오후반 등교 날이었다.
요즘 아이들은 ‘오후반’이 뭔지 모를 거다.
그땐 애들은 많고 교실은 부족해서 반을 나눠 오전반, 오후반으로 다녔다.
입학식 날 첫날은 오전, 오후반 모두 120명이 넘는 아이들이 하나의 교실에 옹기종기 앉아 선생님 말씀을 들었던 기억이 있다.
세상에, 1학년이 120명이라니.
학교는 집에서 꽤 멀었다.
비탈길을 한참 내려가야 했고, 걸어서 3~40분쯤 걸렸다.
그 빗길을 어찌 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작은 아버지가
"oo아, 내가 업어줄게. 가자"
하고 나타나셨다.
영웅처럼.
학교에 가기 싫은 마음과는 달리 업어준다는 말이 날 들뜨게 했다.
억수 같은 비를 맞으며 작은 아버지 등에 업혀 학교로 향했다.
그때의 느낌이 아직도 또렷하다.
등은 단단하고 따뜻했고, 비는 점점 거세졌다.
운동장에 도착했을 땐, 물이 허리까지 차올라 있었다.
“우와... 작은 아버지, 바다가 됐어요.”
“괜찮다. 네 발은 안 젖게 할게.”
그런데 그 물 위에 둥둥 떠 있는 것들.
잊을 수 없다.
송충이였다.
나뭇잎보다 많았다.
시커먼 흙탕물 위에 끔찍한 그 벌레들이 꿈틀거리며 떠다니고 있었다.
“으악! 작은 아버지! 발 안 내려놓을래요! 송충이 올라올 거 같아요!”
나는 발끝을 최대한 물 위로 들어 올렸다.
작은 아버지는 그런 나를 꼭 붙잡고 물살을 헤쳐나가셨다.
작은 아버지의 등이 그날따라 세상에서 가장 든든하였다.
지금 작은 아버지는 여든이 넘으셨다.
작아지고, 약해지셨지만
그날의 그 등은 내 마음에 아직 그대로다.
요즘은 송충이를 보기 힘들다.
어릴 땐 나무 밑을 지나가다 어깨에 뭔가 툭 떨어지면 십중팔구 송충이었다.
이젠 농약 때문인지, 도시화 때문인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얼마 전엔 프랑스 파리에서 송충이가 대량 발생해 아이들과 반려동물이 피해를 봤다는 기사를 봤다.
그런 걸 보면 여전히 불편한 존재긴 하다.
그래도 나에겐
송충이조차 하나의 추억이 되어버렸다.
징그럽고 무섭기만 했던 그 벌레가
이제는 한 사람의 따뜻한 등을 떠올리게 해 주는 고마운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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