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당신의 기분은 몇 대 몇인가요?

마음의 온도를 바꾸는 단 하나의 선, 비율

by Itz토퍼

혼자 여행을 떠나면, 제 곁에는 항상 세 무리의 대화 상대가 있습니다. 여행 중 길 위에서 스쳐 가는 낯선 사람들, 그리고 하루의 끝에 스스로에게 건네는 글무리가 있으며, 마지막으로 말없이 시선을 주고받는 사진들입니다. 하루 여정을 마치고 노트북 앞에 앉아 그날의 감상과 이야기를 천천히 풀어내는 시간은, 한 번의 여행을 두 배로 느낄 수 있는 묘한 설렘을 안겨줍니다.


오늘은 그 마지막 대상, 사진과의 대화를 나누어 보도록 합니다. 저는 여정의 모든 풍경과 순간을 사진이라는 언어로 조심스럽게 기록합니다. 그래서 저는 짐이 조금 무거워지더라도, 홀로 여행을 떠날 때는 DSLR 카메라와 광각부터 망원까지 두루 커버하는 다용도 줌 렌즈, 그리고 우리의 시선을 닮은 35~50mm 단렌즈를 꼭 챙깁니다. 물론 가장 편리한 스마트폰도 한 몫을 합니다.


그런데 사진을 찍고 나서 제가 마주한 실제 모습과는 또 다른, 특별한 감흥을 끌어내는 저만의 비밀이 하나 있습니다. 저는 이를 ‘크롭(Crop) 작업’이라 부릅니다. 단순히 사진의 일부를 잘라내는 기술적 과정을 넘어, 저는 이 과정을 사진의 '비율'을 재구성함으로써 새로운 심리적 인상을 부여하는 소박한 예술적 선택이라고 믿습니다.


비율을 바꾼다는 것은 단순히 테두리를 깎아내는 작업이 아닙니다. 그것은 평범한 풍경에 어떤 감정의 색채를 입힐지, 관찰자의 시선을 어느 초점 어느 깊이에 머물게 할지를 결정하는 '프레임의 마법'과도 같습니다. 요즘은 AI 기술로 풍경을 완전히 창조할 수도 있지만, 가로와 세로의 관계를 미묘하게 조절하는 것만으로도 그 장면이 품은 분위기와 서사가 완전히 달라지는 묘미를 맛볼 수 있습니다. 이제 그 비밀스러운 시선의 틀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사진을 볼 때 단순히 그 안에 담긴 사물이나 풍경만을 목격하지 않습니다. 뷰파인더를 통해 정성스럽게 잘려 나간 세상의 단면은 그 자체로 하나의 심리적 언어가 되어 우리에게 전달되기 때문입니다. 사진의 가로와 세로가 맺고 있는 관계, 즉 ‘비율’은 우리가 사진을 통해 얻는 시각적 경험뿐만 아니라 깊은 내면의 반응과도 긴밀하게 맞닿아 있습니다. 어떤 비율은 우리를 안심시키고, 어떤 비율은 긴장하게 만들며, 또 어떤 비율은 우리를 아득한 동화 속으로 안내하기도 합니다.

fc7f56b4-4da0-418f-9c72-2c27403a7a10.png by ChatGPT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며 가장 ‘자연스럽다’고 느끼는 시선은 대개 3:2와 4:3의 틀 안에 머물곤 합니다. 3:2 비율은 35mm 필름 시대부터 오늘날의 DSLR에 이르기까지 카메라의 표준으로 자리 잡았는데, 이는 인간의 양안 시야(Binocular Vision)와 가장 유사한 구조를 띠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고개를 돌려 무언가를 가만히 응시할 때 느껴지는 그 익숙한 너비는, 심리적으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고 있다’는 현장감은 물론 편안한 안정감을 줍니다.


한편, 초기 TV나 태블릿 PC에서 흔히 볼 수 있는 4:3 비율은 보다 견고하고 균형 잡힌 인상을 남깁니다. 시선을 분산시키지 않고 피사체에 오롯이 집중하게 만드는 이 비율은 다큐멘터리나 기록 사진에서 신뢰감을 형성하는 훌륭한 도구가 됩니다. 이 두 비율은 과장이나 연출을 걷어내고,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마주하고 싶어 하는 우리의 본능을 충실히 충족시켜 줍니다.


현대에 들어 우리가 가장 사랑하게 된 16:9 비율은 참 흥미로운 심리적 지점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 비율은 우리의 실제 시야보다 약 15~20% 정도 넓은데, 우리 뇌는 이 미묘한 확장을 불편함이 아닌 기분 좋은 ‘해방감’으로 받아들입니다. 본래 우리의 시각 피질은 수평적 정보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기 마련입니다. 16:9는 현실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시각적 정보를 넉넉하게 제공함으로써, 우리가 사진 속 감정에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도록 돕습니다.


영화 예고편이나 유튜브 영상에서 이 비율이 많이 활용되는 이유는, 사람들이 이를 보며 ‘조금 더 멋진 현실’ 혹은 ‘아름답게 정돈된 일상’으로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자연스러움 속에 ‘비율’이라는 기교를 살짝 더해 영화적 감성을 입히고 싶을 때, 16:9는 가장 편안하면서도 드라마틱한 몰입을 끌어내는 최적의 구간이 되어줍니다.


반면, 우리의 생물학적 시야를 완전히 벗어난 비율들은 우리에게 강력한 ‘상징성’과 ‘과장’의 언어를 건넵니다. 21:9 시네마스코프 비율은 마치 한 편의 장대한 대서사시를 읽어 내려가는 듯한 심리적 압도감을 선사합니다. 양옆으로 길게 펼쳐진 화면은 관찰자로 하여금 광활한 공간 속에 서 있는 듯한 고독이나 장엄함을 느끼게 하며, 현실을 초월한 서사적 감흥을 불러일으킵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1:1 정사각형 비율은 인공적인 구조의 정점을 보여줍니다. 자연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이 완벽한 대칭의 틀은 현실을 왜곡하는 대신, 대상을 하나의 소중한 기호나 상징처럼 보이게 만듭니다. 인스타그램 초기에 이 비율이 그토록 인기를 끌었던 것도, 어쩌면 평범한 일상을 특별한 예술적 파편으로 간직하고 싶었던 우리의 미학적 욕구 때문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마지막으로 스마트폰 시대의 상징인 9:16 세로 비율은 우리의 시야와 가장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강력한 심리적 압박과 집중을 유도합니다. 시선이 양옆으로 분산될 여지를 과감히 차단하고 수직으로 긴 정보를 쏟아붓는 이 구조는, 우리 뇌가 정보를 처리하는 속도를 가속화하며 강렬한 도파민적 몰입을 만들어냅니다.


결국 어떤 비율로 세상을 도려내어 우리 시야에 통과시키느냐에 따라, 사진은 전혀 다른 생명력을 얻게 됩니다. 사진의 비율을 결정하는 일은 단순히 기술적인 선택을 넘어, 타인의 감정을 어디로 이끌 것인지 설계하는 전략적이고도 다정한 '시각적 배려'입니다.


생각해보면 우리네 사고방식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단 하나의 고집스러운 비율로만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스스로를 보이지 않는 벽 안에 가두는 것과 같습니다. 때로는 3:2의 담백함으로 타인의 진실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고, 때로는 16:9의 여유로운 시선으로 경직된 일상을 유연하게 품어낼 줄 알아야 합니다. 극적인 서사가 필요한 순간에는 21:9의 장엄함을, 본질에 집중해야 할 때는 1:1의 정갈함을 꺼내 드는 처신이 우리에게는 필요합니다.


우리가 선택한 그 사각형의 틀은 세상을 가두는 벽이 아니라, 우리가 세상을 얼마나 넓고 깊게 이해하는지를 증명하는 지혜의 창입니다.


다양한 비율을 가지고 세상을 대할 줄 아는 유연함이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타인의 마음과 온전히 공명할 수 있습니다. 사진의 비율이 맞을 때 마음도 함께 하듯, 삶의 비율을 맞추는 법을 익히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프레임 너머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가장 아름다운 지혜가 아닐까 싶습니다.



※ 라오스 비엔티안 중심부에 자리한 ‘빠뚜사이(Patuxai)’를 평범하게 스마트폰으로 찍은 후, 비율을 3:2와 16:9로 크롭 한 후, 다시 보정한 결과물입니다.

3:2 비율 ⓒ 2024 Itz토퍼 Photography


16:9 비율 ⓒ 2024 Itz토퍼 Phot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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