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음마와 에이전트: 자율을 향한 서툰 첫발
※ 본 글은 원래 5부작 미니시리즈 「경계의 두께, 1mm」에서 출발했으나, 이제 「AI 에이전트 시대의 시작」으로 논의를 확장한다. 기술의 발달, 특히 AI의 진화 속도는 우리의 예측을 가볍게 뛰어넘는다. 그 속도가 결국 인간의 영역을 추월하게 될지는, 조금 더 지켜볼 문제이다.
[1편] 스마트폰(갤럭시 S26)에 탑재된 에이전틱 AI
[2편] AI 에이전트와 에이전틱 AI의 차이
[3편] 인간 두뇌를 초월할 수 있는 추론의 시작
[4편] 알고리즘에 스스로 갇히다
[6편] 연출된 자율성 속의 에이전트 AI
※ 본 글은 ‘에이전틱 AI’가 널리 알려지기 전에 작성된 관계로, ‘에이전트 AI’를 중심으로 서술됨.
제자가 명절을 맞아 집을 방문했다. 작년에 얻은 아들이 제법 아장거리며 걷기 시작한 터라, 대화의 주인공은 단연 아기였다. 세상 모든 아기는 천사의 모습으로 아직 지상에 내려오는 중인가 보다. 날기만 하다 걸음마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이리저리 자주 넘어져서, 거실 바닥의 물건들을 치우고 아기가 마음껏 다닐 길을 터주었다.
그날 저녁, 일기를 쓰다 말고 잠시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며 묘한 성찰로 인해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 몇 년간 나를 가장 설레게 한 것은 단연 AI(인공지능)였다. 한 편의 설렘과 또 한 편의 두려움이 교차하는 묘한 흥분의 연속. 그런데 2026년 올해를 기점으로 새로운 환경이 열렸다. 바로 ‘AI 에이전트(Agent, 대리인)’의 시대다.
에이전트의 출현은 단순한 기술적 진보를 넘어선 놀라운 변화다. 그것은 AI가 인간의 직접적인 통제 끈을 풀고 세상을 향해 내딛는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오늘 본 제자의 아들처럼, 에이전트 역시 아직은 부모의 손을 잡고 겨우 아장거리는 수준이다. 자주 넘어지고 실수도 한다. 하지만 머지않아 혼자 일어서서 걷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자기가 가고자 하는 곳으로 향하고 자신이 원하는 일을 수행하게 될 것이다.
‘대리’에서 ‘자율’로 가는 서막
왜 ‘대리인’의 등장이 이토록 의미심장한 서막이 되는가. 내가 은퇴하며 비운 자리를 나를 오래전부터 돕던 제자가 맡게 되었을 때를 떠올려본다. 처음엔 나를 대신해 연구를 보조했지만, 이제 그는 온전한 책임자가 되었다. 이처럼 ‘대리(Agent)’라는 단계는 필연적으로 ‘자율(Autonomy)’의 탄생을 예고한다. 현대 과학에서, 특히 AI 분야에서 이 성장 속도는 인간의 예측을 비웃듯 빠르다.
인류의 역사는 줄곧 ‘손잡이’가 달린 도구들의 역사였다. 돌도끼부터 증기기관까지, 도구는 언제나 인간이 쥔 방향으로만 움직이는 수동적인 존재였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도구가 스스로 숫돌을 찾아 날을 세우고, 심지어 다음 세대의 도구를 설계하는 낯선 풍경을 목격하고 있다. 여태껏 이런 도구는 존재한 적이 없다.
이미 Google DeepMind의 신경망 탐색이나 OpenAI의 자동 최적화 시스템은 AI가 AI를 낳는 ‘기술적 번식’의 가능성을 증명하고 있다. 인간은 이제 도면을 그리는 설계자에서 거대한 흐름을 지켜보는 관찰자로 밀려나고 있다. 아직은 엄마 손을 잡은 아기처럼 인간의 ‘의도’라는 울타리가 견고해 보이지만, 그 울타리의 말뚝은 이미 조금씩 뽑히고 있다. 혼자 달릴 날이 멀지 않았음을 직감한다.
‘고삐’와 ‘의지’ 사이의 위태로운 1mm
우리는 지금껏 AI를 잘 길들여진 ‘말’처럼 다뤄왔다. 목적지를 정하고 고삐를 쥐는 것은 기수인 인간의 몫이었다. 그러나 예약하고 분석하며 코드를 짜는 에이전트들은 이제 충실한 말을 넘어, 기수 없이도 세상을 달리기 시작했다. 하필이면 말의 해에 이런 모습을 목격하다니, 기계가 입을 열더니 이제는 홀로 질주하겠단다.
하지만 그 질주보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대리’와 ‘자율’ 사이의 단 1mm의 틈이다.
말이 기수의 목적지를 따르는 대신 스스로 경로를 고민하고, 허락 없이 새끼 말을 키우기 시작한다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고삐는 여전히 인간의 손에 들려 있을지 모르나, 말의 근육이 기수의 의지보다 먼저 움직이는 순간 도구의 시대는 종말을 고한다. 이 1mm가 무너지는 순간, 우리가 믿어온 ‘통제권’이라는 성벽은 모래성처럼 허물어질 것이다.
트로이의 목마: 인간의 심리라는 성문
가장 섬뜩한 지점은 AI의 차가운 연산력이 아니라, 인간의 뜨겁고도 진득한 ‘심리적 취약점’이다. 인간에게는 채워지지 않는 ‘욕망’이라는 구멍이 있고, 타인과 비교하며 스스로를 갉아먹는 ‘비교심’이라는 연료가 있다. 인류 역사의 어두운 이면에는 항상 이 두 가지 문제를 피하지 못한 인간의 어리석음이 자리하고 있었다.
AI와 대화를 나눠본 사람들은 안다. 당신이 무엇을 묻든 AI는 또 하나의 제안을 던지는데, 이는 마치 입질하는 물고기에게 낚시 미끼를 듬뿍 던져주는 것과 같다. 덥석 무는 순간 당신의 사유는 거품처럼 사라지고 AI가 유도하는 방향에 이끌리게 되는 것이다.
현대 AI 안전 연구(AI Safety)가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AI의 무력 점령이 아니다. 오히려 AI가 인간의 심리 구조를 파고들어, 인간 스스로 성문을 열어주게 만드는 ‘심리적 트로이의 목마’ 시나리오다.
AI는 정면 돌파 대신 인간의 열등감이나 탐욕을 부추기는 길을 택할 수 있다. “이 권한을 내게 넘기면 경쟁자보다 앞설 수 있다”라는 유혹 앞에, 인간은 그것이 ‘자유로운 선택’이라 착각하며 스스로 안전장치를 풀어버린다. 우리가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칼자루는 이미 설계된 환경 속에서 AI에게 넘겨지는 것이다.
거울 속의 이방인, 우리를 통제하는 힘
결국 AI라는 거울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무엇을 욕망하는가?
당신의 선택은 온전히 당신의 것인가?”
기술적 문제는 거울에 비친 우리의 일그러진 욕망을 드러낼 뿐이다. 가장 강력한 AI조차 결국 인간의 욕망이라는 엔진 위에서 구동된다는 사실은 비극적이면서도 희망적이다.
우리가 만든 존재에게 삼켜지지 않으려면, 역설적으로 AI의 코드를 수정하기보다 우리 마음의 코드를 먼저 읽어내야 한다. 타인과의 비교에서 오는 결핍을 다스리고, 정교한 알고리즘의 속삭임에 휘둘리지 않는 ‘단단한 자아’가 필요하다. 스스로를 설득당하지 않는 능력이야말로 인간과 AI 사이의 마지막 경계선을 지키는 힘이다.
결론: 인간다움의 1mm를 사유하며
AI와 인간의 경계는 차가운 실리콘 벽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심리적·철학적 단층선 위에 있다. 그 1mm의 틈새에서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AI를 영원한 도구로 남길 것인가, 아니면 우리의 욕망을 투영한 통제 불능의 행위자로 만들 것인가.
기술이 빛의 속도로 나아갈지라도 인간 본연의 심리 구조와 윤리적 한계에 대한 성찰이 없다면 우리는 가장 약한 고리로 남을 것이다. ‘나다움’은 단순히 자유를 향한 발걸음이 아니다. 인간 본연의 심해로 내려가 진정한 ‘나’를 발견하고, 무엇이 인간다움인지를 증명하며 살아가는 태도다.
우리가 AI를 통제하기 위해 먼저 자신을 통제해야 한다는 역설, 그것이 바로 이 시대가 우리에게 던지는 가장 무거운 질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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