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선도와 선물
'파생상품'이라고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제 경우에 파생상품을 공부하기 전에는 '위험한 것', 혹은 '복잡한 것'이라는 인식이 가장 컸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왠지 모를 거리감이 느껴졌죠. 아마 많은 분들이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계실 것 같은데, 엄밀히 따지면 두 인식 모두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입니다.
우선, 파생상품은 깊이 들어가기 시작하면 분명 한없이 복잡해집니다. 이전 글에서 다루었던 옵션의 가격 결정처럼 이론적으로 파고들 때나, 기본 형태의 파생상품을 이용해 구사할 수 있는 다양한 심화 전략들을 살펴볼 때는 말이죠. 그러나 기본적인 파생상품의 구조 자체는 사실 아주 단순하기 때문에, 일차함수와 max(최댓값)함수 정도만 해석할 수 있다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한, 파생상품은 투기 목적으로 이용하면 분명 일반적인 투자 방식인 주식, 채권 투자에 비해 훨씬 위험합니다. 그러나 파생상품은 사실 위험을 제거 혹은 완화(hedge)하기 위한 목적으로 탄생했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나요? 파생상품은 그 이용 목적에 따라 투자 위험을 극대화시키는 역할을 할 수도, 오히려 위험을 제거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습니다.
파생상품의 이론적 정의는, '주식과 채권 등 전통적인 금융상품을 기초자산으로 하여 기초자산의 가치변동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는 금융상품'입니다. 파생상품을 뜻하는 영어 단어 derivatives 역시 '유래하다, 끌어내다'라는 단어 derive에서 비롯되었죠.
개념 자체가 기초자산에서 무엇인가 끌어낸다는(derive한다는)의미인 만큼, 기초자산을 빼고는 파생상품을 논할 수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주식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파생상품의 경우 주가의 변동에 따라 파생상품의 가치가 결정됩니다.
오늘 알아볼 선도와 선물의 경우, 매입 시 주가가 오르면 파생상품 가치가 함께 오르고, 주가가 내리면 파생상품 가격이 함께 내리는 구조입니다. 반면, 파생상품의 한 종류인 풋옵션의 경우에는 매입 시 주가가 오르면 파생상품의 가치가 반대로 내려가는 양상을 띄기도 합니다.
그러나 두 경우 모두, 기초자산의 가치에 따라 파생상품의 가치가 결정된다는 점은 바뀌지 않죠. 이것이 파생상품의 정의이자, 기본이자, 핵심입니다.
파생상품의 주요 종류로는 선도(Forwards), 선물(Futures), 옵션(Option), 스왑(Swap)이 있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도, 가장 간단하고 기본적인 형태인 선도와 선물에 대해 알아보려고 합니다. 선도와 선물은 사실 같은 구조의 상품이지만, 선도의 결점을 보완한 것이 바로 선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본격적인 내용에 들어가기 앞서, 파생상품을 공부하기 전 꼭 정리해 두어야 할 개념들을 먼저 알아봅시다.
1) 포지션
특정 시점에 파생상품의 가치를 계산할 때, 이용한 파생상품의 종류 뿐 아니라 그 파생상품에 대해 어떤 포지션을 취했는지 역시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칩니다. 파생상품을 매입하는 것은 롱 포지션(long position)을 취한다고 표현하고, 파생상품을 매도하는 것은 숏 포지션(short position)을 취한다고 표현합니다.
같은 파생상품을 이용했다고 하더라도, 어떤 포지션을 취했는지에 따라 투자자의 손익은 정반대가 될 수 있습니다. 같은 주식을 이용하더라도, 미래에 주가가 오르는 상황을 가정해보면 이전에 주식을 샀던(long) 사람은 이익을, 주식을 팔았던(short) 사람은 손해을 보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2) 보수(payoff)과 손익(profit)
또한 파생상품의 만기 가치를 계산할 때, 보수(payoff)와 손익(profit)을 엄밀히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보수와 이익의 차이는 '최초의 비용을 포함하는지 여부'에 있습니다.
보수는 최초의 비용을 고려하지 않으며 오직 계약의 만기 시점에 기초자산 가격과 행사가격에 의해 결정되는 금액, 즉 만기에 발생하는 현금흐름을 뜻하는 반면, 손익은 보수에서 최초의 비용을 뺀 최종적인 금액을 뜻합니다.
예를 들어, 최초 시점 가격이 천 원인 어떠한 파생상품을 매입했다고 가정해봅시다. 만기 시점, 해당 파생상품을 통해 얻은 금액인 보수가 만 원이라면, 손익은 보수에서 최초 시점 지불한 가격 1,000원을 차감한 9,000원이 됩니다. 손익=보수-초기 비용이 되는 것이죠.
따라서 보수가 양수(+)라도, 비용이 보수보다 크다면 손익은 음수(-)가 될 수 있습니다. 한편, 초기 비용이 없다면 보수와 손익은 일치하게 됩니다. 선도와 선물은 초기 비용이 없기 때문에 보수와 손익이 일치하는 반면, 옵션의 경우 초기 프리미엄(최초 비용)이 존재하기 때문에 보수와 손익이 불일치합니다.
선도란, 특정 자산(기초자산, 현물, S)을 특정 시점(만기, T)에 특정 가격(선도가격, K)에 사고 팔기로 현재시점에서 맺은 계약입니다.
즉, 현재 시점에 ‘기초자산(무엇을), 만기(언제), 선도가격(얼마에)’ 세 요건을 미리 결정해놓는 거래라고 할 수 있죠.
이해를 돕기 위해 <토끼전>의 등장인물을 빌려 예를 들어봅시다.
용왕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토끼를 찾아간 자라는 간을 팔아달라고 부탁합니다.
토끼는 여분의 간(존재한다고 가정합시다.)을 바위 밑에 숨겨두었기 때문에 지금 당장은 줄 수 없지만, 용왕의 생일날(만기)에 간(기초자산)을 자라에게 만 원(선도가격)에 팔겠다고 약속합니다.
이 계약은 전형적인 선도계약이 됩니다. 토끼는 선도의 매도자(short position)가, 자라는 선도의 매입자(long position)가 되죠.
<선도 계약의 구조>
· 기초자산(S): 토끼의 간
· 만기(T): 용왕의 생일날
· 선도가격(K): 10,000원
· 포지션(Position)
-토끼: 선도의 매도자(short position)
-자라: 선도의 매수자(long position)
그렇다면 계약을 맺을 때(0시점), 이 계약은 토끼와 자라 중 누구에게 유리할까요? 바꾸어 말하면, 선도 계약 체결에 대해 누가 누구에게 비용을 지불해야할까요?
정답은, '둘 중 그 누구에도 유리하지 않다'입니다. 따라서 선도 계약시 매입자와 매도자는 선도가격 K만을 결정(선도가격이 결정되는 원리에 대해서는 추후 다룰 예정)할 뿐, 서로 현금을 지급하거나 받지 않습니다. 계약 체결 시점 선도 계약의 가격(최초 비용)은 0이 되겠죠. 앞서 언급했듯, 초기 비용이 없으므로 선도의 경우 보수와 손익이 일치하게 됩니다.
최초 비용이 0인 이유는, 미래에 기초자산의 가격이 어떻게 변동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만기 시점에 기초자산의 가격은 미리 결정해놓은 선도가격보다 높아질 수도, 낮아질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해당 계약이 토끼에게 유리할지, 자라에게 유리할지는 계약 체결시점에서 알 수 없으며, 만기가 되어서야 확정될 것입니다.
계약의 만기 시점(T시점)에는, 만기 시점의 현물가격 S_T(본래 S하첨자T로 나타내나, 수식 기능이 지원되지 않아 불가피하게 언더바로 하첨자를 표시합니다.)에 따라 토끼와 자라가 각각 얻을 보수(손익)가 결정됩니다. 파생상품의 정의인 '기초자산의 가치 변동에 따라 그 가치가 결정되는 금융상품'과 일맥상통하죠.
선도를 매입한 사람(long position)은, 만기 시점에 기초자산(현물)을 받고 정해진 돈(선도가격)을 줍니다. 반대로, 선도를 매도한 사람(short position)은, 만기 시점에 기초자산(현물)을 주고 정해진 돈(선도가격)을 받습니다.
1) 사례를 통해 알아보기
토끼와 자라의 사례를 이어, 만기 시점의 상황에 따라 두 포지션의 보수(손익)이 어떻게 바뀔지 알아봅시다.
<상황1> S_T=15,000원이 된 경우(만기 현물가격이 선도가격보다 높은 경우)
선도를 매도, 즉 만기 시점에 간을 주고 만 원을 받기로 한 토끼의 경우 보수(손익)는 +10,000(현금)-15,000(간)=-5,000원이 됩니다.
반면, 선도를 매입, 즉 만기 시점에 간을 받고 만 원을 주기로 한 자라의 경우 보수(손익)는 +15,000(간)-10,000(현금)=+5,000원이 됩니다.
<상황2> S_T=5,000원이 된 경우(만기 현물가격이 선도가격보다 낮은 경우)
토끼의 경우 보수(손익)는 +10,000(현금)-5,000(간)=+5,000원이 됩니다. 반면, 자라의 경우 보수(손익)는 +5,000(간)-10,000(현금)=-5,000원이 됩니다.
2) 수식으로 알아보기
위 내용을 일반화하여 수식으로 나타내면, 선도에 대해 long position을 취한 선도 매입자의 경우, 해당 계약의 만기시점의 가치는 S_T(만기 현물가격)-K(선도가격)가 됩니다. 만기에 현물을 받고 선도가격을 지불하기 때문이죠.
반면, 선도에 대해 short position을 취한 선도 매도자의 경우, 해당 계약의 만기시점의 가치는 K-S_T가 됩니다. 만기에 현물을 제공하고 선도가격을 받기 때문이죠.
파생상품의 정의에 부합하게, 보수(이익)를 결정하는 식에 S_T가 포함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S_T의 값이 바뀜에 따라, 즉 기초자산의 가치가 변동함에 따라 선도의 보수(이익)역시 그 값이 바뀌게 됩니다.
또한 선도 매입자와 매도자의 보수를 더해보면 0이 나온다는 사실을 확인해볼 수 있는데, 이는 선도계약이 결국 매입자와 매도자 간의 '제로섬 게임'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3) 그래프로 알아보기
그래프로 보면 더욱 직관적인 이해가 가능합니다. y축은 보수(이익), x축은 S_T(만기 현물가격)입니다.
<경우1>처럼 선도가격(K)를 기준으로 만기 현물가격(S_T)가 더 비싸지면(K를 기준으로 그래프 우측) long position을 취한 선도 매입자가 이득을 보는 반면 short position을 취한 선도 매도자는 손실을 봅니다.
한편, <경우2>처럼 선도가격(K)를 기준으로 만기 현물가격(S_T)이 더 싸지면(K를 기준으로 그래프 좌측) long position을 취한 선도 매입자가 손실을 보는 반면 short position을 취한 선도 매도자는 이득을 봅니다.
이렇듯 선도는 그 작동 원리가 아주 간단합니다. 현재 시점에 조건을 결정해 미래에 이루어질 계약을 체결하고, 미래에 기초자산의 가치가 변동함에 따라 만기 시점에 매수자와 매도자의 손익이 결정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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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말입니다, 현실적으로 이 선도 거래에는 아주 치명적인 결함이 있습니다. 만약 토끼의 간이 만병통치약이라는 소문이 동네방네 퍼져 만기 시점에 간의 가격이 50만원까지 폭등했다고 가정해봅시다.
토끼는 계약대로 순순히 만기 시점에 자라에게 간을 만 원에 넘겨줄까요? 글쎄요, 아마 계약을 어기고 도망가서 몰래 간을 더 비싸게 사겠다는 사람에게 50만원을 주고 팔지 않을까요?
이것이 바로 선도 계약의 문제점입니다. 선도 계약은 당사자 간의 개인적 거래이기 때문에, 거래 상대방이 계약을 이행하지 않을 가능성이 충분히 존재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결점을 보완하기 위해 만들어진 대안이 바로 선물입니다.
선도는 장외거래인 반면, 선물은 선도를 제도화시켜 거래소에서 거래가 이루어지도록 했습니다. 이에 따라 계약의 형태 역시 표준화되었고요. 예를 들면 '1계약당 원유 1,000배럴, 만기일은 매월 15일'의 형태로 조건이 정해져 있는 식입니다.
또한, 선물 계약의 경우 결제 불이행을 방지하기 위해 '일일정산제도'를 도입하고 있습니다. 선도처럼 만기에 한 번에 차액을 정산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의 시장 가격 변동에 따라 종가 기준으로 조금씩 일일정산을 하는 방식이죠.
이러한 이유로, 선도와 선물은 그 구조가 사실상 같음에도 선물의 경우 계약 불이행 위험이 없어 선도에 비해 안전성이 높다는 점이 두 계약 사이의 가장 큰 차이가 되겠습니다. 선도와 선물의 주요 차이점을 정리해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오늘은 파생상품의 기초와 함께 선도, 선물의 개념을 살펴보았습니다. 파생상품, 이름만 들으면 무시무시해보이지만 막상 하나씩 알아보니 의외로 간단하게 느껴지지 않으셨나요? 오늘의 이야기가 파생상품을 알아가는 성공적인 첫 걸음이 되었기를 바라며 글을 마칩니다.
<참고자료>
John.C.Hull - options, futures and other derivatives (금융공학과 파생상품의 바이블이라고 불리는 대표 교재입니다. 파생상품에 대해 보다 심도 깊은 이해를 원하신다면, 해당 책을 참고하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