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때 우연히 지나가다 발견한 ‘세계 귀신 전(귀신의 집)’에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공포물을 좋아하던 친구와 나는 바로 입장권을 사서 줄을 섰다.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기대감으로 날뛰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뒤에 선 커플의 대화에 귀 기울였다. 한창 남의 연애가 궁금할 나이니까.
“무서워~”
“걱정 마, 내가 지켜줄게.”
친구와 나는 서로 마주 보며 ‘우엑’하는 표정을 지었다. 역시 남의 연애는 멀리서 봐야 로맨스다.
오랜 기다림 끝에 안으로 들어가자 서늘한 공기가 먼저 우리를 맞이했다. 여름이라 대기실의 온도가 더웠던 만큼 갑자기 변한 온도에 몸이 부르르 떨려왔다. 온도차다, 온도차. 그런 생각을 하며 날카로운 시선으로 귀신을 찾았다.
안쪽의 꼬불꼬불한 길은 코너마다 귀신들이 나타났는데, 그때마다 나는 ‘씨-익’ 웃거나, ‘꾸벅’ 인사를 했다. 더운 날씨에 귀신 분장하느라 고생이 많은 어른이다.
예의 바른 중학생은 이럴 때 인사하라고 배웠다. 관객 매너는 배우지 못한 허세 가득한 아이다.
내 인사에 뻘쭘해진 귀신은 어색하게 뒷걸음질 쳤고, 그 순간 책가방이 무거워졌다. 친구가 무서운지 내 가방을 잡아당기는 것 같았다. 이게 뭐가 무섭다는 건지. 나는 말없이 무거워진 가방에 힘줘서 친구를 끌어줬다. 10여 분의 어둠의 코스가 끝나고 드디어 빛의 세상으로 나왔다.
“야, 무거워 이제 놔”
나는 아직도 가방을 붙잡고 있는 친구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말을 건네다가 굳어버렸다.
친구는 내 옆에서 무슨 소리냐는 듯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한번 간담이 서늘해졌다.
‘내 가방을 잡고 있는 건?’
아직도 느껴지는 가방의 무게에 고개마저 뻣뻣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용기를 내어 좀 더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하-“
여자친구를 지켜주겠다고 호언장담한 대학생 오빠가 있었다. 그는 내 가방을 ‘꼬-옥’ 힘주어 잡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때 언니의 표정이란…
그 커플은 어떻게 됐을까?
그건 궁금할 일이 아니다. 다만, 이 일은 아주 오랫동안 나의 무용담이 되어 내 용기와 배짱을 증명해 줬다.
겁 없는 아이, 용감한 어른. 그런 타이틀이 마음에 들었다. 좀 멋있었다.
그래서 더 여고괴담은 심야에 혼자 봤고, 링은 보다 잤다고, 어떤 공포영화도 나의 비명을 듣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하고 다녔다. 거짓말은 아니지만, 작은 공포감들은 없었던 일로 치부해 버렸다.
나이가 들수록 내 안의 공포는 점점 커져서, 이제는 작은 것에도 잘 놀라게 됐지만. 나는 여전히 공포영화를 잘 보고 ‘심야괴담’을 즐기는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어느새 나는 내 진실된 감정은 무시하고, 남들에게 보이고 싶은 나만의 설정값을 연기하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내가 정해 놓은 틀 안에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중학교 때는 담력 시험 운영자로서 자정에 학교 곳곳을 돌아다녔고, 어른이 되고는 모든 무서운 일에 앞장섰다. 무서워도 참아야 하는 시기가 온 것이다.
그러다 사소한 일에 놀라서 비명을 질러버렸다.
내가 비웃은 대학생 오빠처럼 되어버린 것이다.
멋있어 보이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가지고 있고 잘 못된 것은 아니다.
문제는 숨이 차고 힘에 부쳐도 참는 것이다.
사람이라서 무섭지 않던 중학생 아이가, 사람이라서 무서워진 어른이 된 것처럼.
사람은 언제나 변한다.
어제까지는 나를 행복하게 하던 것들로 오늘은 울게 될 수 있다.
그것이 인생이다. 그래서 인생이 재미있는 것이 아닐까?
어제까지는 용감했던 내가 멋있었다면, 오늘부터는 용감하게 무섭다고 말하는 내가 멋있는 것이다.
나의 변화를 있는 그대로 마주 보고 인정하는 내가 필요하다.
그래야 설정값을 벗어나, 진정한 나로 살 수 있다.
그래야 ‘나의’ 인생이 살만해진다.
오늘은 어떻게 보내셨나요?
내가 있었나요?
그럼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