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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속 0.1km 구간입니다.

전방에 초고가 다짐 터널을 통과합니다.

by 달빛기차


오늘 마을버스를 타고 가다가 교통사고가 날 뻔했다.


내가 사는 곳은 골목길이 개미굴처럼 복잡하게 설계되어 있고, 일방통행 길도 많아서 운전하기 힘든 곳이다. 거기다 높은 지대에 위치해 있어서, 심한 경우 경사가 70도 이상이다. 마음의 체감은 90도? 베테랑 택시 기사분도 참을 수 없는 한숨을 내뱉는 구간이다. 거친 언사가 안 나오면 다행일 정도라, 늦은 밤 택시 탈 때는 미리 길을 알려드렸다. 나의 안전한 귀가와 우리의 편안한 정신 건강을 위해.


길이 이렇게 야생적이다 보니, 사람들이 걷기 힘든 구간을 다니는 마을버스의 운전 난이도는, 최상이다. 기사분들이 아무리 조심히 운전해 주셔도, 녹록지 않은 길과 오랜 세월에 힘이 빠진 낡은 버스는 늘 덜컹거린다. 그러니 의자에 앉는 건 행운이요, 손잡이를 잡는 건 필수다.

난 비 오는 날과 동네를 벗어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마을버스를 잘 이용하지 않는다. 덜컹거림보다는 두 다리로 걷는 것을 훨씬 좋아하고, 절약되니까. 동네가 워낙 산이라 마을버스를 타지 않으면 등산 수준이지만, 나는 어쩐지 버스비가 아까운 생각에 걷는 편이다.


오늘은 동네를 벗어날 일이 있어서 마을버스 탔고, 우둘투둘한 아스팔트 노면과 만나 덜컹거리는 버스에 내 몸을 맡겼다. 몸의 흔들림을 막겠다는 저항은 근육통만 불러온다. 그러니 회식으로 어려운 상사랑 노래방 왔다고 생각하고 음률을 타면 된다. 흔들흔들, 내 몸에 대한 통제권을 내려놓으려는 순간.

“빠-앙”

시끄러운 경적소리가 울리더니 버스가 ‘주춤’ 거리며 속도를 줄였고, 내 몸이 미세하게 앞으로 튕겨졌다.

‘뭐야?’

놀라서 앞을 바라보니, 골목에서 승용차가 비행기보다 빠른 속도로 달려왔다. 비행기보다 빠를 순 없겠으나, 그리 보인 것은 어쩔 수 없다.

우리는 직진, 비행기를 모방한 차는 골목을 우회전해서 우리를 앞지르려 했다. 나는 수면 부족으로 침침해진 눈을 순간적으로 부릅뜨고, 우회전 중인 차량의 움직임을 초 단위 프레임으로 담았다. 증언이 필요할지 모르니까.

예측대로 흘러가면 인생이 아니라고,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그러니 항상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사고는 방심할 때 찾아오니까.

“빠-앙”

다시 울리는 경적소리와 함께 우회전 차량이 추월에 성공했다. 나의 ‘사고’ 상상력이 합당할 만큼, 마음으로 보면 두 차 사이의 거리는 1mm 차이밖에 되지 않았다. 심장이 쫄깃하게 쪼그라들 만큼 아슬아슬했다.


내가 증언할 일은 사라졌지만, 승리는 공정해야 하니 냉정하게 분석해 보자.

사실 기사분이 ‘주춤’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면, 추월 성공은 없었다. 우리 모두 경찰서나 병원에 있지 않았을까? 승용차 입장에서야 ‘추월’ 아니라고 말하겠지만.

버스 안은 익숙한 듯 작은 놀람 뒤에 일상으로 돌아갔고, 기사님도 조용히 출발하셨다.


'오, 기사님 승!'

사고가 나서 병원에 입원했는데, 경찰서에서 증언하라고 연락이 오는 완벽한 시나리오를 상상하던 내 사고를 멈추고 기사님을 바라봤다. 생각해 보면, 기사님은 승용차를 발견하고 할 수 있는 모든 대응을 하여 승객을 지켜 내셨다. 그럼 승자는 버스기사님이 아닐까?

그분의 빠른 판단과 양보가 아니었다면, 나의 상상은 현실이 되어 오늘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을 것이다. 어쩌면 일상에서 매일 같이 만날 수 있는 작은 해프닝일 수도 있지만, 상상력이 ‘발달’한 나는 잠시 아주 먼 미래까지 다녀왔다. 그리고 쫄깃해진 심장이 소금에 절여지듯 끔찍했다.

병원생활에 진실공방, 몇 달 혹은 몇 년이 걸릴지 모르는 법정 싸움까지 될 수도 있다. 버스기사님의 생계가 흔들리고 안전벨트도 할 수 없었던 버스 안의 손님들은, 긴 시간 후유증에 시달릴지도.

이러니 안 끔찍하고 배길 재간이 없다.


기사님의 더 멋진 점은, 화를 내지 않으신 점이다.

운전하는 사람들 중 ‘화’가 많은 사람은 이런 상황에, 사고를 잊게 만드는 속 불편한 이야기를 내지르신다. 특히 다수의 위험이 있는 경우라면, 그 화가 더해져 분노를 일으키며 동승자의 존재를 잊게 한다. 가끔은 동승자가 운전자의 화에 편승해서 같이 분노 표출을 하는 사람도 있다. 나처럼.


"뭔데? 뭐가 저리 급해?"

점진적 분노 상승자인 나는 속으로 온갖 생각을 하다, 순간 얼굴이 붉어져서 슬며시 머릿속 뚜껑을 닫았다.

성격 급하기로 치면 날 따라올 사람이 있을까.

걷기도 전에 언제 날 수 있을지를 묻는 사람이, 비행기 차량이 속도 좀 냈다고 나무라다니. 내 얼굴에 “퉤” 하고 침 뱉는 짓 하고 뭐가 다른 가.

안 그래도 매운 음식들만 들어있는 쓰린 속이 따끔해지기까지 했다.


@CapCut생성_상상도

나는 최근에 20년 넘게 잠들었던 꿈 하나를 흔들어 깨웠다.

이제 막 알에서 깨어나서 눈도 못 뜨고 휘청이는 녀석에게, 아직도 축축하게 젖은 여린 날개를 붙잡고 날아오르라고 재촉한다. 날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며.

그러니 내가 지금 비행기 차량보다 더 양보 없는 과속 중이 아닐까?

역사는 하루아침에 이뤄진다지만, 인생의 길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제 막 글을 쓰기 시작하고는, 날아오르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그럼에도 마음에서 계속 다른 작가들처럼 ‘잘’ 쓰라고 말한다. 그래야 한다고 따뜻한 마음인 척 다독인다.

그런 마음을 위해 허리가 굽어질 때까지 의자에 앉아서 수천 자에서 수만 자를 두드린다. 썼다가 수정하기를 여러 번, 그러면서 새로 만들어지는 문장이 즐겁기만 하다.


하지만 글을 다 쓴 순간부터, 그때부터 초조해진다.


‘잘’ 썼는지 끊임없이 검열한다. 이제 겨우 한 달짜리 글쓴이가 잘 써봐야 얼마나 잘 쓸 수 있겠는가? 그러니 결과에 낙담하고 다시 나를 재촉한다. ‘더, 더, 더’

왜 나는, 여전히 나의 ‘잘’을 버리지 못하는지. 잘하지 못하는 것은 의미 없다는 듯이 완벽한 모습만 보이려 한다.

그래서 내 글을 아는 사람에게 보여주지 않았다. 모르는 사람보다 아는 사람의 말이 더 아플 것 같아서. 그 평가가 더 냉정하게 들려서.

“그냥 그렇네.”라고 말할 사람은 없겠지만 “응. 괜찮네.”라는 위로형 모범 답변을 듣고 싶지 않아서. 완벽하기 전에는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왜 완벽해야 하지? 세상에 누가 완벽할 수 있을까? 세상에 완벽은 없다.

내가 원하는 완벽이란 세상 모든 사람이 ‘그렇다’라고 인정하는 것이다. 그건 불가능하다. 생각이 다르고, 가치가 다른데 어떻게 모두가 한마음이 될 수 있을까?

설사 그런 일이 생긴다고 해도 그건 ‘글’이 닿기에는 너무 힘든 영역이다.

지금 나는 그런 오만을 부리는 것이다.


불안해서. 잘하지 못하면 더 이상 꿈을 꾸면 안 될 것 같아서.

눈도 뜨지 못하고 이대로 다시 잠들어 버릴까 봐. 그래서 잘하는 것으로 나의 가능성을 인정받고, 계속 꿈꿔도 된다고 타인에게 듣고 싶어 하는 것이다. 내가 아니라. 내 안의 나는 여전히 작은 아이처럼 그렇게 자신을 믿지 못한다.


공자가 말씀하시길,

지지자 불여호지자 호지자 불여락지자

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고 하셨다.


고등학교 담임선생님이 알려주신 뒤, 마음 한 곁에 잠들어 있지만 평생 잊지 못할 말이다. 난 지금 저 문장의 중심에 서있다. 글 쓰는 것은 긴 세월의 ‘소망’이었으니 좋아하는 일이다. 회사에서 9시간이 숨 막히게 흘러갔다면, 글을 쓰는 순간은 24시간이 짧고 즐겁다. 그럼 된 거 아닐까? 그럼 꿈꿔도 된다. 나를, 내 꿈을 믿어도 된다.


난 부족한 사람이다. 그리고 영원히 부족할 것이다.

그래서 계속 불안할 것이고, 완벽하고 싶고, 잘한다고 인정받고 싶을 것이다. 너무 오랜 시간 그렇게 나를 길들였으니까.

아주 천천히 이렇게 되돌아볼 순간이 올 때마다 기억하면 되지 않을까.

천천히 가자고. 잘할 필요 없다고. 지금도 잘하고 있다고.

그날에 나에게, 그 순간의 나의 일상에 계속 말하다 보면 언젠가 오늘보다는 더 편안한 내가 되어있을 거라고 믿는다.

그러니 오늘은 조금만 ‘완벽’과 ‘잘’의 뿌리 같은 ‘불안’을 내려놓고, 꿈에만 집중한다.

버스기사님의 여유를 배워본다.


그러니, 이 글도 더는 수정하지 않으리…!

만족하는 법도, 내 수준을 아는 법도 배워야 하니까.


시간이 아깝지 않으셨나요?

그럼 됐습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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