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기억이 찾아옵니다.
난 지금 매우 곤란하다. 퇴사한 이래 가장 곤란한 상황이 아닐까 싶다.
잠시 이 상황이 되기 전으로 돌아가 본다면.
당신의 최초의 기억은 언제입니까?
언젠가 방송에서 이런 질문을 듣고, 기억을 더듬어본 적이 있었다. 그때는 왠지 기억나는 나이가 어리면 어릴수록 내가 똑똑한 것 같았다. 그래서 참기름 짜내듯 머리를 들들 볶아서 추억을 쥐어짜 냈는데, 얼마나 쥐어짰는지 단편적인 기억만 몇 장 떠올랐다.
처음 떠오른 기억은 꽃밭이었다. 초록의 계절 옷을 입은 푸르른 들판에, 형형색색의 꽃들이 아름답게 피어있고, 그 꽃밭 가운데 작은 아이 둘이 앉아있었다. 잘생긴 남자아이가 여자아이에게 손수 만든 화관을 씌어 주고 있었다. 현실감이 많이 부족한 장면이었다. 아무래도 어떤 영화에서 본 장면을 기억하는 듯했다. 그럼 몇 살 때 기억인지 알 수가 없으니, 의미 없는 기억이었다. 패스.
다음 떠오른 기억은 툇마루였다. 한옥은 아닌데, 툇마루가 있는 고즈넉한 집이었다. 동백기름을 바른 듯 윤이 나는 고동색 툇마루에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앉아있었다. 남자아이는 “아~”라고 말하며, 여자 아이이의 입에 음식을 넣어 주었고, 여자아이는 새 모이 받아먹듯 얌얌거렸다. 아주 잘생긴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는 한 폭의 그림 같았다. 마치 동화책에 나올 것 같은 모습에, 이것도 어디서 본 것이 기억난 것이 분명했다. 아니라고 하기에는 남자아이가 너무 잘 생겼다. 지금으로 비교한다면… 그냥 비교 없이 잘 생겼다. 잘 못 비교하면 뒤탈이 무서우니까. 패스.
그런데 두 아이가 앞선 기억의 아이들과 닮아 있었다. 그럼 둘 다 영화를 기억한 것인가? 아니면 정말 있었던 일인가? 스스로 던진 질문에 어이가 없어서 내 스스로 머리를 쥐어박았다.
“와- 엄마 이 기억이 말이 돼? 이럴 때 [어디서 약을 팔아?] 란 말을 하는 거지?”
내가 말하고 어이없어할 때, 담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걸 어떻게 기억하고 있어? 앞 집에 살던 아이가 널 그렇게 끼고 다녔잖아. 밥도 직접 떠먹여 준다고 난리였는데, 그게 기억나?”
‘헉-’
기억이 사실이란 것보다 수치스러움이 먼저 다가왔다. 화관이라니… 어려도 그렇지 꽃으로 만든 왕관이라니!!! 아기니까 밥이야 떠먹여 줄 수 있다지만, 화관은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물론, 다른 사람들은 해도 된다. 내가 아니니까. 이건 순전히 취향의 문제다. 난 그저 화관 취향이 아니다! 어린 나도 그럴 리가 없다는 확인이 들었다.
나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담담한 목소리의 어머니를 바라봤다. 게슴츠레한 눈을 정면으로 받으시고도, 여전히 담담히.
“그렇게 싫으니? 사실인데.”
‘사실이라서 싫은 거랍니다.’라고 말할 수 없으니, 머릿속에서 삭제하기로 했다. 그냥 기시감이다. 없는 기억이다라고 지우고 다시 기억의 시작을 더듬었다. 비슷한 기억들은 삭제하고. 삭제. Dilete키가 필요한 순간이다. 얼마나 삭제를 클릭했는지, 한참 후 한 장을 더 찾아냈다.
“우~~우~~우~~~담다디 담다디 담다디담”
흐릿하지 않은 진짜 내 기억의 시작을 찾았다. 제9회 강변가요제, 이상은 님의 ‘담다디’.
그날은 내게 특별한 날이었다. 어머니께서 만들어 주신 아끼는 프릴치마를 처음 입는 날이었다. 하늘색 프릴치마는, 빙그르 돌면 맑은 날 하늘처럼 푸르게 빛나는 것 같았다. 치마를 입자마자, 어머니께서 만들어 주신 예쁜 치마를 자랑하고 싶어서 발을 동동거렸다. 누구한테 자랑해야 이 가치를 알아줄까 고민하다가, 어머니 직장에 따라갔다. 어머니 동료분들은 날 예뻐하는 것을 보면 보는 눈이 좋으시니까!
당시 어머니의 직장 동료분들은 날 너무 예뻐해 주셨다. 어린애가 잘 웃고 사근거리 안 예쁠 수가 없었다. 나도 그럴수록 더 사근 사근 다가갔다. 마음을 주고받을 줄 아는 요망진 아이였다.
그날도 예쁜 옷을 자랑하고 싶어서 휴게실로 찾아갔었다. 휴게실은 늘 흥겨웠지만, 그날따라 즐거운 웃음소리가 문밖까지 들려왔다. 내가 열린 문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었을 때, 모여서 TV를 보는 모습이 보였다. TV 속에는 꺽다리처럼 키 큰 언니가 몸을 흔들며 ‘담다디’를 외치고 있었다.
“우와-”
어린 눈에 얼마나 신기하던지, 신세계였다. 이제 막 세상에 물들기 시작한 넋이 나가는 줄도 모르고 바라봤다. 그 뒤 한동안 그 노래가 귓가를 맴돌았다. 어린아이가 가사의 뜻도 모르면서, 담다디를 그렇게 외쳐댔었다.
그리고 몇십 년이 흐른 지금, 담다디의 가사를 잘 알아도 흥겹다. 멜로디와 이상은 님의 춤이 즐거운 것도 있지만, 그날의 기억이 덧대어져 마음부터 행복해지는 노래가 됐다.
기억이란 것이 그런 것 같다.
어떤 것은 아무리 기억하려 해도 기억되지 않는데, 어떤 기억은 노래 한 소절에도 소환된다.
열심히 감정을 끌어올려서 글을 쓰다가, 갑자기 들려온 “우~~우~~우~~~”에 의자에 앉아서 어깨를 들썩이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지금 노래를 들으면서 어깨가 어울리지도 않는 마케레나 춤을 추고 있는데, 멈춰지지 않는다. 어깨가 자꾸만 들썩여서 키보드를 칠 수가 없다. 그래서 멈춰야 하는데, 마치 노래에 중독된 사람처럼 이 더운 날 땀나게 어깨춤을 추고 있다.
곤란하게 말이다.
감성을 담은 글을 쓰려던 내 입장에서는 불행이고, 나의 오늘에게는 행운이다. 이 밤을 즐겁게 마무리하면 되니까. 내일 글은 … 내일의 내게 넘기고 말이다.
그런데 기억의 소환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
어떤 기억은 ‘불쾌함’을 가지고 나타나기도 하니까. 기억의 트리거가 노래일 수도 있고, 향기일 수도 있다. 어떤 것이 될지는 모르지만 한번 나타나면 사라지지 않고 숨통을 조일 때도 있다.
나는 그게 해킹이었던 것 같다. 게임 ID 해킹을 당해서 아이템을 모두 잃었던 적이 있었다. 몇 십만 원의 가치를 지니고 있던 아이템이 하루아침에 사라진 것이다. 바로 신고를 하고, 추적에 나섰다. 분명 현금화를 위해 팔아야 하니까. 그리고 범인을 찾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저 팔려가고 있는 내 추억을 바라볼 뿐. 그 뒤 게임 업체에서는 비밀번호를 자주 변경하지 않은 내 탓이지만, 안타까운 마음에 아이템은 복구해 준다고 했다. 나는 복구된 아이템을 유저들에게 나눠주고 게임을 접었다. 그때 한 유저가 질문했다.
“아깝게 왜 접어요? 아이템 돌려받았다면서요?”
내가 원한 건 복사한 아이템이 아니라, 내 아이템이었다. 추억은 복사될 수 없으니까. 그 후로 한동안 노이로제 걸릴 정도로 정보보안에 신경 썼었다. 그리고 지금도 게임 아이템 이야기만 들으면, 그날의 일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날의 무력함과 서글픔은 마음이 기억과 함께 나타난다.
어떤 기억이 나를 찾아오는지에 따라, 그 순간의 기분이, 마음이 달라진다.
지금 나처럼.
어떻게든 담다디의 흥겨움을 지우려고 이렇게 글까지 쓰지만, 내 어깨는 멈출 줄을 모른다. 반대로 해킹의 기억이 떠오르면 한없이 우울해진다. 기억이 감정을 지배해 버린 것이다. 이미 지나버린 시간에 속절없이 휩쓸리는 것이다.
그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우울할 때는 담다디를 들으면 되고, 기분이 너무 하이텐션이 되어 버리면… 다른 기억을 찾으면 된다. 다운시켜 줄 만한 다른 기억을 하나 찾아서 생각하면 진정시킬 수 있다. 물론 지금 나처럼 정도를 넘어버리면 소용이 없긴 하지만. 담다디가 해킹을 이겼다.
You Win!
중요한 것은 마냥 휩쓸리지 않으면 되는 것 같다. 그로 인해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만큼.
기억은 기억일 뿐이다. 지금 나를 흔들 수 있는 건 나밖에 없다.
내가 지금 곤란하다고 말하면서도 계속 담다디 노래를 듣고 있는 것처럼.
곤란해? 고만해!
P.S 결국 노래는 지금도 듣고 있다. 오늘은 이 노래의 행복으로 마무리하기로…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