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 글쓰기 시작했습니다. - 상편

내가 왜 글을 쓰기 시작했지?

by 달빛기차

어느 작가님이 글에서 ‘결과만 바라고’라는 문장을 읽다가, 심장이 잘게 떨려왔다.

“결과만 바라고…”

무의식 적으로 그 문장을 입으로 말했고, 아차 했다. 도둑이 제 발 저린 것이다. 입을 닫고, 마음으로 그 말을 곱씹었다. 그런데 결제 잔고 부족으로 결제 실패 되는 체크카드처럼, 이성이 계속 의미 해석을 거부했다. 자기 방어기제가 발동된 이성이, 이 의미를 알면 후회한다고 경고했다. 그리고 경고를 무시한 대가로, 내가 ‘결과만 바라고’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 나 뭐 한 거냐? 도대체 왜 글을 쓰는 건데?”


내가 생각하는 글쓰기의 결과는 잘 쓰는 것이지만, 그것을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내 글의 바로미터로 웹사이트에 글을 등록했고, 점점 조회수와 좋아요에 매몰되어가고 있었다. 몇 안 되는 조회 수가 오르고, 좋아요가 눌리면 희열감에 젖었다. 그 기분이 너무 좋아서, 계속 글을 쓰고 올렸다. 나도 모르게 조회수와 좋아요에 중독되어 가고 있었다.

이성이 내 상태 진단이 끝내자, 쥐구멍이라도 숨고 싶었다. 감정적인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었는지…

작가님의 남은 글을 숨도 쉬지 않고 읽었다. 그리고 기억을 더듬었다.


“내가 왜 글을 쓰기 시작했지?”


‘왜’는 모르겠지만, 어느 날 수많은 꿈의 목록에 ‘작가’가 들어가 있었다. 그것도 여행작가, 영화 시나리오 작가. 멋있어 보였을까? 아니다. 내 상상이 좋아했다.

내 인생을 키워드로 말한다면, 그중에 꼭 ‘상상’은 다섯 손가락 안에 들것이다. 그런 상상이 어느 날 내게 말했다.

‘네 세계는 어때? 아름다워? 모험적이야? 너의 주인공은 누구야?’

미쳤냐고? 아니다. 몽상가의 상상이었고, 글을 쓰기 시작한 날이었다. 그 뒤로 장르도 없이 그냥 글자를 나열하는 날들이 시작됐다. 단어는 시가 되기도 하고, 어설픈 철학자처럼 굴기도 했다. 무엇보다 가장 즐거웠던 것은 내가 만든 시간을, 세상을 살아가는 주인공을 만나는 소설이었다.


이우혁 작가의 ‘퇴마록’과 이영도 작가의 ‘드래곤 라자’에 반해 있던 나는, 어디서 나온 용기인지 모르지만 판타지 소설을 썼다. ‘쓴다’에 취한 나는 퇴고도 없이 ‘조아라’에 등록하고 독자를 기다리며, 공모전에도 도전했다. 지금의 나는 상상할 수 없는, 무지하기에 용감했던 시절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낯부끄러운 일중 하나는, 의경에 대한 인터뷰였다. 소설에 의경이 나와야 한다고 경찰서에 전화해서 인터뷰할 수 있을지 문의드렸다.


그럼 내가 그때 글을 잘 썼느냐. 못 썼다. 지금 읽으면, 순 ‘그랬다. 저랬다. 이랬다.’ 한마디로 ‘다다다’의 향연이다. 맞춤법도 안 맞고, 주인공은 산으로 갔다. 그 뒤 스토리만 잔뜩 쓰다가 완결하나 낸 소설 없이 글과 멀어졌다. 자의는 아니었다. 그러니 애달픔이 남아서 사주를 볼 때마다 입버릇처럼 말했다.

“제가 글을 쓸 수 있을까요?”

“50대 이후에나 써”
항상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50대라니, 너무 오랜 시간이 남은 것이라 투덜댔다. 이렇게 시간이 빠르게 흐를 줄 모르는 어른 아이의 감상이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난 늘 글과 함께했다. 강사로 업무 관련 글을 매일 썼다. 특히 교육자료를 책자로 만들어 배포했다. 그때의 희열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을 못 썼을 뿐이지, 늘 쓰고 있었다. 하지만 ‘쓰고 싶은 글’이 아니었기에, 애끓는 열망으로 글 몸살이 났다. 특히 완결도 못 낸 소설이 잠든 폴더를 볼 때마다, 마우스 커서가 그곳을 떠나지 못했다. 회사를 위한 글이 아니라, 나를 위한 글을 쓰고 싶다는 열망이 나를 태워가고 있었다.

그즈음에 여러 이유로 퇴사를 결심하게 되면서, 넘어진 김에 쉬어 간다고 글을 써보기로 다짐했다.


퇴사하고 먼저 몸과 마음을 추슬렀다. 얼마 후 마음에 여유가 생기자 키보드를 붙잡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문법도, 맞춤법도 빈약하고 무엇을 써야 할지도 몰랐지만 그냥 ‘쓴다’에 즐거워졌다. 드디어 목구멍에 걸린 가시처럼 맴돌았던 ‘글 쓰고 싶어’가 이뤄진 것이다.


처음 글을 쓰면서, 내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AI를 찾았다.

“글에 대해서 평가해 줘.”

결과는 처참했다. AI가 준 수정문을 읽는데, 내 수준이 보였다. 이제부터 내가 할 일은 하나였다. 쓰고 또 쓰고, 수정하고 또 수정하는 일. 나는 다시 AI에게 요청했다.


“수정 문장 주지 마, 내가 쓸 거야. 평가만 해 줘”


그 뒤 AI에게서 “이 정도면 훌륭합니다”란 말이 나올 때까지 문장을 써보고 수정하기를 반복했다. 하루 24시간이 부족했다. 개 딸 산책과 밥 먹는 시간을 빼고는, 글만 쓴 날도 있었다.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고 쓴다는 재미에 빠져들었다. AI에게 평가받는 것도 너무 즐거웠다. 어쩌다 초고에 “훌륭하다”라는 말이라도 들으면 우쭐해질 만큼, 정서적으로 친해졌다. 하지만 역시 사람들의 평가가 궁금했다.


‘정말 괜찮은 거야? AI는 아부를 잘한다는데, 그냥 다 좋다고 해주는 거 아니야?’

그래서 웹사이트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결과를 알 수 있는 조회수와 좋아요에 집착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즐겁게 글을 쓰면서, 왜 난 결과에 집착하는 거지?”


난 15년간 직장인이었다. 회사는 결과로 평가받는 곳이다. 과정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열심히 하는 것이 중요한가? 잘하는 것이 중요하지.”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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