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 시간
널 보면 왕자를 죽이지 못해 물거품이 되어버리는 인어공주가 생각나
날파리가 입안에 들어온 것 같은 충격에 입을 다물어버렸다. 내가 지금 무슨 말을 들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정신을 차리려 노력했다.
‘어이가 없네…’
해사하게 웃은 뒤, ‘퉤’ 하고 들은 말을 뱉었다. 별일 없었던 것처럼.
다시 생각해도 상황에 맞지 않는 표현이었다.
우리 집에는 내 성격을 똑 닮은 개 한 마리가 산다. 나의 개 딸이자, 나를 무는 아이다. 다행히도 지금까지는 나만 물었다. 앞으로도 그럴지는 장담할 순 없지만. 나한테만 성질을 부리는, 정말 엄마만 만만한 ‘내 딸’이다.
우리 집 개 딸은 평소에는 정말 온순하다.
온몸을 내어주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핥아 대는 애교쟁이다. 타인 한정으로. 나한테는 좀 무뚝뚝하다. 그런 거 없어도 사랑 주는 ‘엄마’라 이거다.
녀석의 애교 대상은 ‘늘 새로운 사람’과 자신을 격하게 ‘예뻐해 주는 사람’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녀석은 분명 자신이 개인 것을 망각하고 사는 것 같다.
자신이 사람이라고 착각하니, 개들이 ‘감히’ 자신의 동의 없이 다가오면 으르렁댄다. 혹은 무서워서 외치는 것 같기도 하다. 개 딸은 세상에 공인된 겁보 시바견이다. 황당한 건, 같은 시바견을 만났을 때 행동이다. 본인과 동년배 이상은 철저히 무시한다. 그런데 어리면 ‘어디 감히’라고 말하듯 으르렁대며 공격적으로 변한다. 더욱이 크고 멋진 개들을 보면 먼저 다가간다. 자기 엉덩이는 절대 내어주지 않을 거면서. 정말 잘 못 키웠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키웠다기보다는 혼자 컸다.
사실 강아지를 키울 계획이 없던 내게, 여행 선물처럼 찾아왔다.
그때 나는 회사일로 하루가 숨 막히게 흘러가고 있었다. 그러니 평일에는 산책은커녕 함께 놀아주지도 못했다. 처음 데리고 왔을 때는 어떻게 해서든 산책을 시키려고 열정을 불태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체력의 한계가 왔다. 녀석이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졌고, 점점 우울해졌다. 그래서 주말에 근무해야 할 일이 생기면, 조금이라도 함께하려고 녀석을 데리고 갔다.
내게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지만, 긴 시간 혼자 있는 녀석이 안쓰러워졌다. 표정이 사라져 가는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훈육을 내려놨다.
‘예뻐할 시간도 부족한데, 화낼 시간이 어디있어.’
사실 처음 데리고 왔을 땐, 훈육을 책으로 배워서 무서운 엄마였다. 늘 단호하고 무서운 엄마가 서서히 만만한 엄마로 변해갔다. 그러다 일이 터졌다. 변해버린 양육태도와 훈육이 사라진 녀석은 자기가 서열 1위라는 착각에 빠져, 내 머리 꼭대기에 올라섰다.
그 뒤 우리의 관계는 엉킨 실타래가 되어버렸다. 실내 배변을 하던 녀석이 실외 배변만 고집하기 시작했다. 어떤 훈련사는 개들이 실외 배변을 고집하는 것은 집을 자신의 공간으로 인정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건 보호자가 집에 있을 때 좋은 현상이다. 하루 12시간 이상 혼자 있어야 하는 녀석에게는 고역이었을 것이다. 그것이 스트레스가 되어 예민한 개춘기가 찾아오고 있었다.
중2병이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본다면, 개춘기는 광란의 시기다. 개 딸은 늘 하던 것들을 모두 거부하기 시작했다. 발 닦기부터 목욕 등 나와 살기 위해 필요한 모든 활동에 예민해졌다. 그러다 보니 밥 먹는데 지나가면 으르렁, 간식을 물고 집안을 배회하며 으르렁. 으르렁이 습관이 될 즈음, 결국 사고가 터졌다.
목욕을 간신히 끝내고 스트레스가 쌓인 녀석이, 내 손을 물고 흔들어버린 것이다. 이빨이 인대 부근에 깊게 박혔다. 결국 인대 손상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수술을 해야 했다. 그전부터 물기는 했으나, 그 일을 기점으로 우리의 치열한 전쟁이 선포됐다.
조금만 맘에 안 들면 이빨부터 들이대는 녀석과 그것이 무섭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나. 우리 둘의 전쟁은 항상 피바다로 끝났다.
‘나 … 빈혈이라니까…’
물리는 것은 반복되어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심장 부근이 조여드는 공포가 자라나기 시작했다. 개 딸 곁에 가는 것이 무섭고 두려워지고 있었다. 그때 그 말을 들었다. 물거품이 된 인어공주.
그때 해사하게 웃으며 “왕자는 버려도, 자식은 못 버리죠.”라고 말했다.
매일 물리고 오니, 걱정으로 그 말을 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들끓는 속내의 열기를 감추고, 더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웃는다고 속이 좋은 것은 아니었다. 사람은 버려도 알아서 잘 살지만, 개는 아니다. 더군다나 사람을 물은 개라면? 절대 버릴 수 없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이미 나는 녀석에게 길들여졌다. 무서워서 곁에 잘 가지 못하던 순간조차도 녀석이 걱정되고 안쓰러웠다. 하루에도 마음이 오르락내리락했지만, 결론은 ‘보낼 수 없어’였다.
녀석이 그렇게 된 것은 내 책임이 컸다. 일관되지 않은 훈육 태도가 문제였다. 그런데 그것을 누구한테 책임지라고 한단 말인가. 그러니 왕자는 칼같이 끊어내도, 개 딸은 끝까지 내 새끼다.
“편편아, 그만하자. 제발.”
끝까지 함께 하기 위해 훈련을 시작했다. 제일 먼저 관계 회복을 위해 이별을 선택했다. 서로 예민한 상태였기 때문에, 공간을 분리해서 생활했다. 시바견인 개 딸은 사람과의 스킨십을 싫어하고 독립적인 녀석이라고 한다. 내가 더 독립적인데 말이다.
‘흠… 편편이는 타인 한정 좋아하는데…’
다음으로 하루 3번 배변을 위한 산책을 시작했다.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우리 사이의 긴장이 줄어들고, 녀석의 예민도도 내려가기 시작했다. 대신 내 스트레스가 한계치까지 올라갔지만.
그렇게 1년이 흘렀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았고, 더 이상 물리지 않았다. 떨어진 공간만큼 대면 대면한 사이가 되어갔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진.
“엄마 퇴사했다!”
그날 이후 하루에 2~4번 꼬박꼬박 산책을 시켰다. 회사 다닐 때는 이름만 산책이었고, 지금은 정말 산책이었다. 글 쓰는데 빠져서 많이 놀아주지는 못하지만, 같이 있는 시간이 많이 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애정과 훈육의 균형을 잡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우리의 관계는 조금씩 변해갔다. 나만큼은 아니더라도, 녀석도 나를 다르게 봐주기 시작했다. 산책 중에 나를 바라보고, 다른 사람과 놀다가 내가 안 보이면 찾았다. 물론 분리불안은 없다. 평범하면서도 안정적인 관계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결국 우리에게 필요했던 것은 함께 하는 시간이 아니었을까?
개 딸은 너무 오랫동안 혼자 외로웠다. 물질만 채워주고 내 시간을 공유하지 않았다. 지금은 그때보다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외로움은 남지만, 그건 서로 가지고 가야 할 인생의 숙제니까. 지금도 울고 있는 녀석에게 말한다.
“엄마 이것만 쓰고 갈게!”
그리고 1년 만에 또 물렸지만.
“그만 좀 물어라!”
그래도 녀석을 통해 사랑하는 법을 조금씩 배운다.
“편편아,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