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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숭아털 같은 사랑

선풍기 뒤에 서서

by 달빛기차

요즘 복숭아가 참 달다.

어릴 때는 그렇게 물려서 먹기 싫어했는데, 지금은 없어서 못 먹는다. 백도와 황도, 말랑이와 딱딱이, 종류도 참 많다. 그런 복숭아는 내 인생에 아주 중요한 녀석이다. 어린 시절 복숭아 과수원에서 컸고, 태몽도 복사꽃이었다. 거기다 최근 검사한 8체질학에서 먹을 것이 없는 체질로 나와서 우울했는데, 복숭아는 먹을 수 있다. 이쯤 되면 녀석과 나는 운명이다.


오늘도 편의점에서 복숭아를 사서 먹다가 울뻔했다. 난 말랑이를 샀는데, 천도복숭아였다. 이건 반칙이다!! 같이 산 다른 녀석은 달콤했는데… 의미 없이 남은 복숭아를 노려보면서 문득 생각했다.

‘너도 비교받느라 슬프겠네. 그래서 천도가 된 거니?’


비교받는 사랑이라니… 사랑하고 사랑받는다는 것은 뭘까?


어릴 때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 조부모님이 키워 주셨다.

당시 좋은 기억도 많았지만, 딸이라서 겪는 서러움도 있었다. 남아 선호사상이 팽배하던 시절, 6남매 장남인 아버지의 무남독녀 외동딸. 알만하지 않은가. 하지만 드라마나 소설 같은 격정의 서러움은 없었다. 아이이기에 느끼는 작은 말과 미묘한 태도가 설움이 됐다.


그 설움의 한 페이지는, 한 겨울 맨발의 심부름이었다. 그날은 명절이었고, 사촌 오빠들도 많이 왔었다. 난 친손녀고 그들은 손님이라는 이유로 나는 일을 도와야 했다. 아직 어린애가 큰 대야 하나분의 동그랑땡을 빚었다. 그러다 재료가 떨어지자, 그 추운 날 외투도 안 입고,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심부름 다녀왔다. 추워서 시린 발보다 마음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당시 우리 부모님만 오지 않으셔서, 더 그랬을지도 몰랐다. 사촌 동생과 투닥거리다 “엄마한테 이를 거야!”라고 해서 일지도 모르겠다. 여러 가지 이유로 그날은 눈물이 얼어붙는 줄도 모르고 울면서 다녀왔다.


그렇다고 내가 서러울 만큼 구박받은 것은 아니다. 지금 생각하면 바쁜 날이었고, 부모님이 안 계셔서 챙겨줄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도 서러웠던 건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가족들은 오히려 부모와 떨어져 사는 조카가 안쓰러워, 시골집에 내려오실 때마다 선물을 바리바리 사가지고 오셨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그저 표현이 서툰 옛날분이셨을 뿐이다.


그럼에도 어린 난 늘 사랑이 고팠다. 사랑을 받아 본 적 없는 아이처럼.


그렇게 사랑에 목말라하던 나는 여름이면, 선풍기 뒤에 앉아있었다. 땀이 송골송골 맺혀도, 절대 선풍기 앞으로 가지 못했다. 무의식적으로 앞으로 살짝이라도 나갈라 치면, 할아버지께서 한마디 하셨다.

“어허! 뒤로 가. 앞으로 나오지 마.”

지금 기억해 보면 가장 슬프게 따가운 사랑이었다. 여름만 되면 찾아오는.


@CapCup생성

시골집은 여름이 오면, 복숭아 수확이 한창이다. 나도 고사리 손으로 복숭아 농사를 도왔다.

복숭아 농사는 손이 많이 간다. 과실이 여물기 전 예쁘게 익으라고 종이옷을 입혀주는 것이 시작이다. 여름이 오면 무르기 전에, 우는 아기 달래 듯 조심스럽게 하나씩 따낸다. 따낸 여린 아이가 상처가 생기지 않도록 수확 상자에 살포시 담는다. 그리고 리어카에 실어, 울퉁불퉁한 땅에 흔들리지 않도록 살살 집으로 옮긴다.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우선 복숭아 살이 벗겨지지 않도록 감싸진 종이만 살살 달래어 벗긴다. 다음으로 새로운 그물망 옷을 입혀준다. 그럼 하나의 복숭아가 완성된다. 상품의 옷을 입은 아이들을 판매 상자에 칸칸이 담아, 하나의 상자를 만든다. 마지막으로 상자에 생산자 이름을 기재하고, 판매자에게 넘기면 끝이다.


대부분의 과정에 내가 참여했지만, 딱 하나 포장만은 참여할 수 없었다. 이때는 나는 복숭아 접근 금지령을 당한 채, 선풍기 뒤에 앉아서 구경만 해야 한다. 어린 마음에 포장일이 재미있어서 돕겠다고 나서면, 할머니도 한 말씀하셨다.

“까스럽다. 뒤로 가라.”

복숭아에 달린 털이 문제였다.

종이를 벗기는 순간부터 온 집안은 털이 날린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그 털이 손녀딸을 따갑게 할까 봐 선풍기 뒤에 앉혀 두고, 못 나오게 하신 거였다. 더우니 문 열었는데, 털은 날리니 답은 선풍기 뒤였다. 두 분께서도 복숭아털이 까스러울텐데.

“우리는 괜찮다. 익숙하고 피부도 두꺼워서 괜찮다.”

그럴 리가. 이 나이가 됐지만, 난 아직도 복숭아털이 까스럽다. 피부에 닿으면 따갑고 간지러운 것이다. 괜찮았을 리가 없다. 버티시기 위해 그 더위에 긴 팔에 긴 바지 팔 토시까지 하시면서, 괜찮다고 하시는 거다. 그게 두 분이 내게 준 사랑이 아니었을까?


화려한 사랑을 받은 기억은 없다.

“아이고, 우리 새끼!! 할미가 사랑해”

이런 우쭈쭈 하는 사랑을 받은 기억도 없다.

대신 그 시대의 어르신들이 하실 법한 소소한 마음을 받았다. 그때는 그것을 몰라서 서럽다 했는데, 나도 사랑을 주고 보니 알겠다. 나도 하늘에 뜬 별을 따주겠다는 말을 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소소하게 챙겨주고 지켜보는 사랑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렇게 스며드는 사랑이 내 스타일이고, 그것은 아주 어린 시절 배웠다는 것을.


내가 좀 더 일찍 어른이 되었다면.

아니 아주 조금만 일찍 그 사랑을 알았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은 선풍기 뒤 따뜻하던 사랑이, 복숭아의 달큼함만큼 그립다.


오늘도 사랑을 하셨나요?

그럼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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