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n river, wider than a windown
“타닥-타닥-타닥-”
빗물이 창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언제부터 내렸는지 모를 비는 그렇게 하루 종일 노크했다. 자신이 여기 있다고 말하듯 존재감을 과시했던 빗물은, 무심한 주인의 응대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점점 거세지기 시작했다. 초대받지 못한 빗물은, 기어코 창문을 타고 흘러 창틀에 고였다.
“우르르-쾅-쾅-“
천둥까지 내리치는 하늘을 보며, 마음이 싱숭생숭해졌다. TV에서는 갑작스러운 폭우에 침수를 조심하라는 뉴스가 흘러나온다. ‘진작 알려줬어야지’란 마음은 들지만, 기상은 천심이다. 하늘의 마음을 어떻게 100% 예측할까. 그건 욕심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창틀을 흐르는 빗물처럼, 잔잔히 떠오르는 기억 때문일 것이다.
많은 사람이 그러하겠지만, 혼자 하는 서울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각박하고 야박스러운 내 통장은, 나를 여러 차례 이사 가게 만들었다. 통장에 맞는 집을 찾기 위해, 이 집, 저 집 하루 종일 발품을 팔아야 했다. 하지만 내 마음에 딱 드는 집을 찾는 것은, 좋은 회사 찾는 것만큼 어려웠다. 당시 내 통장에 맞는 집은 지상도 아니고 지하도 아닌 그 중간 어디쯤 있는 곳이었다. 그곳은 지하처럼 어둡지는 않지만, 다른 집처럼 밝지도 않았다. 한여름 열기보다 습기를 걱정해야 하는 곳. 내 통장이 권유한 집은 반지하였고, 나는 그곳에서 살았다.
처음 반지하에 살았을 때는, 늦은 밤 사람들 발소리에 놀라 잠에서 깨기도 했었다.
“딱-크…딱그-…딱-크…딱그-”
불규칙한 구두 소리가 어둠을 타고, 귀가를 어지럽힌다. 시계는 이미 새벽 2시를 넘어가고 있다. 아마도 취객이겠지만, 창문 앞에서 멈춘 소리에 숨을 숙이고 지나가길 기다렸다. 그림자가 달빛을 타고 슬며시 집 안으로 들어오면, 그림자보다 더 짙은 어둠의 공포가 심장을 짓눌렀다. 언제든 저 얇은 창문이 깨질 수도 있을 것 같은 상상력에, 두 손에 힘을 주어 이불을 꼭 쥔다. 한참 후 발걸음 소리가 다시 진행되면 그제야 손에 힘을 풀고 깊은숨과 함께 공포를 내뱉는다.
하필 창문이 쇠창살도 없이 길가와 마주해 있었다. 낮은 돌담만이 안전장치의 전부라, 한동안 밤마다 발걸음 소리에 증폭되는 두려움에 시달렸다. 낯섦이 사라지고, 무심해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나 또한 시간이 떠미는 힘에 의해, 반지하에 조금씩 적응해 가던 즈음 반갑지 않은 손님이 찾아왔다.
“타다닥타다닥”
빗물이 바닥을 치고 뛰어올라 창문을 두드린다. 두드리는 소리가 일정한 리듬을 타면, 낭만이 아니라 걱정이 먼저 찾아오는 곳이 반지하다. 집의 지대가 낮으면 비가 오는 날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그날 처음 알았다.
길가의 하수구가 갑작스러운 폭우로 쏟아지는 빗물을 다 받아내지 못했다. 쪼르르 틀어 놓은 걱정이 차오르는 내 마음처럼, 거리에서 넘실 대던 빗물이 갈 길을 잃은 불청객처럼 "콸콸콸" 집으로 밀고 들어왔다. 내 동의도 받지 않은 빗물이, 해일처럼 집안을 헤집으며 물바다가 되었다. 물 위를 떠다니는 물건들을 보며 원치 않는 ‘망연자실’의 의미를 배워야 했다.
지금 생각하면 내 기억이 맞을까 싶을 만큼 까마득하고 잊고 싶은 일이다. 당시에는 침수 대비도 없던 시절이었다. 나라에서는 그 사건 후 창문과 문에 끼울 수 있는 물막이판을 설치해 줬다. 참... 뒤늦은 고마움이다.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감사할 일이다.
안 그래도 빛 한 줌도 아쉬운 곳에 창문마다 물막이판까지 설치하니, 매일이 비 오는 날같이 우중충해졌다. 물막이판을 설치하면 빛과 사투를 벌이고, 판을 빼면 비와 사투를 벌어야 하는 진퇴양난의 시절이었다.
그래도 악몽 같았던 침수보다는 물막이와의 동거를 택했다.
그리고 반지하의 또 다른 동거인이 있는데, 바로 곰팡이다. 곰팡이는 지하의 습한 기운을 먹고 무럭무럭 자라났다. 아무리 환기를 잘해도, 빗물의 침수보다 빠르게 집안을 점령해 갔다. 녀석의 영역이 넓어지면서, 그만큼 쿰쿰한 곰팡내가 집안을 떠다녔다. 건강도 걱정이지만, 옷에 곰팡내가 밸까 봐 걱정하며, 방향제로 집안을 도배하곤 했다. 그때 제습기를 알았다면, 녀석들과의 싸움에서 승기를 잡았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어쩌면 그곳에서 가장 아쉬운 일이자, 향기로 남은 추억이다.
그 시절은 무거운 철근을 어깨에 짊어진 듯 고되었다. 그리고 그 철근을 녹여낼 만큼 열정적으로 살아 낸, 내 젊은 날이다. 그 시간의 반을 보낸 반지하는 그런 곳이었다.
기생충으로 유명해진 바로 그곳.
“그곳에서 어떻게 살아?”
누군가의 예의 없는 한마디가 유난히 기억에 남는다. 어디든 사람 사는 곳이다. 조금 더 불편하거나, 관리가 필요할 뿐이지. 그런데 그 말이 왜 그렇게 체기처럼 가슴에 맺힌 말이 됐을까.
그때의 나는 그래서 그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어중간한 위치에서 이도 저도 아닌 집이 아니라, 온전한 지상의 공간을 가지고 싶었다.
빛이 잘 들고, 비가 와도 걱정이 없는 집. 사람의 발소리가 더 이상 공포가 되지 않는 그런 집 말이다. 그런 집을 목표로 열심히 살아왔다. 그리고 몇 번의 반지하를 거치고 결국 원하던 집으로 이사했다.
집의 한 면이 통창이라 빛이 잘 들 것 같고, 높이가 7층이라 침수 걱정이 없는 오피스텔이었다.
이사 첫날 창밖을 바라보며, 왠지 모르게 ‘티파티에서 아침을’이 생각났다. Moon river를 부르고 싶을 만큼,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가사가 영어라 부르지 못한 것이 아쉬울 정도였다.
넓은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을 맞으며 아침 식사를 하고, 출근을 했다. 이제 내 앞에는 영화 같은 삶이 펼쳐질 것만 같았다. 밤에는 창가에 앉아서 와인 한잔하는 상상도 했다. 와인도 안 좋아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영화는 영화다. 현실은 영화와 다르다는 것을 깨닫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사하고 얼마 뒤, 처음 놀러 온 지인이 통찰력 좋게 말했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