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인생: 여름을 보내는 중입니다.

by 달빛기차

나는 숲길을 걷는 것을 좋아한다.

무더운 여름날, 바람에 나뭇잎이 ‘스스스’ 흔들리고, 싱그럽게 지저귀는 산새소리가 들리는 숲길을 걷다 보면 더위조차 달갑게 느껴진다. 오늘도 예고 없이 맹렬히 타오르는 태양을 피해 숲길로 들어갔다. 나뭇잎에 가려 빛도 힘을 내지 못하는 숲 속에서, 문득 이 길이 내 인생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계와 닮은 우리의 인생은 봄에 태어나, 여름에 열정의 삶을 일구고, 가을에 노력을 수확하고, 추운 겨울에 동면을 준비한다. 그렇게 우리의 삶은 사계처럼 흘러간다.


내 인생을 사계에 비유하면, ‘여름’이다. 인생이란 밭을 일구는 농부의 여름.

가을 수확만을 바라보며, 뜨거운 태양 아래 열이 오르는 것도 모르고 농사일만 하던 농부, 그게 나다. 온전히 키워내려고 매일 같이 시간의 낫으로 풀을 베고, ‘쩍쩍’ 갈라지는 땅을 마음으로 적시고, 비료로 온전한 나를 내어주었다.


그런데 나는, 우리는 이 여름에 무엇을 키우고 있을까.

무엇을 키워내기 위해 경주마처럼, 이 여름 농부의 눈을 가렸을까.

어떤 씨앗을 뿌렸는지.

지금 무엇이 자라고 있는지.

가끔 불어오는 바람에 가을의 꽁무니라도 본 듯,

생각할 시간도 주지 않는 여름에 쫓기며,

오늘도 농부의 일에만 매진했다. 열사병이 오는지도 모르고.


여름의 푸르름도 모른 체 땅만 바라보던 내가, 창공을 가르는 새소리에 고개를 들었을 때.

‘피-잉’ 하고 나의 세상이 빙글빙글 돌았다.

농사를 망칠까 쫓으려던 파랑새도 위험을 경고하듯 머리 위를 맴돌았다. 새도 돌고, 세상도 돌고, 그러다 세상에 쓰러질 듯하여 시원한 그늘을 찾아 숲으로 들어왔다.


jimeng-2025-06-28-281-녹음이 짙은 소나무 숲길을 걷는 지친 단발머리 여성의 뒷모습. 좌우로 소나무가 서있고, 가운데를 걷는 고개를 숙인 여성(농부복장)이 터벅터벅....jpeg @CapCut생성

‘… 좀 쉬자. 휴-우. ‘

잠시 숨을 돌리자, 내가 들어온 숲길이 보였다. 잠깐의 휴식을 위해 찾아온 그늘은, 여름을 오롯이 보낸 웅장한 나무들이 내가 쫓는 여름의 태양을 숨겨버렸다. 열정을 태우던 열기가 사라져 시원하다 못해 서늘한 숲의 한기에 몸이 가볍게 떨려왔다. 그리고 그 떨림만큼의 두려움이, 벌레가 스멀스멀 기어가 듯 발끝부터 온몸으로 서서히 퍼져 갔다.


‘다시… 나갈까?’

들어온 곳을 돌아봤지만, 찌는 듯한 태양은 작은 틈도 주지 않았다. 데일 것 같은 열기에 땅은 참지 못하고 ‘쩌-억’ 갈라지며 화염을 토해냈다. 땅의 열기에 힘들여 키운 작물들은 속절없이 타들어 갔다. 그곳은 더 이상 농지가 아니었다.

나는 사라져 가는 ‘노력’의 여름을 속절없이 바라봤다. 돌아갈 용기가 흩어지며, 마음도 접혔다. 가을을 기다리는 마음보다 더 천천히 숲길을 바라봤다. 이제 이 길만 남았다.


‘… 하-아, 끝이 있긴 한 거야…?’

어두운 숲이 미래 같아서, 깊은 한숨을 토해낸다. 막막한 '어둠'의 공포를 이겨내려 접힌 마음을 재촉했지만, 오히려 더욱 구겨졌다.

구겨진 마음은 망설이는 나를 한심하다 재촉했고, 든든한 나무를 붙잡고 한 발을 내디뎠다. 떠밀린 한 걸음은 뻘을 걷는 것처럼 무거웠다. 숨을 돌리려 들어온 숲에 잡아먹히는 것만 같다.

‘… 또 이렇게 얼마나 가야 하지… ’

바닥에 주저앉아 울고 싶어졌다.


어른이 되면서 배운 말

“울면 안 돼, 힘들어도 참아. 버티는 자가 이기는 거야.”

따뜻한 용기를 건네며, 나를 다그쳤다. 그 말로 여름을 버텨왔다.


‘버팀’의 결과로 찾아온 열사병에 소중한 휴식을 건넸지만,

‘쉼’보다 이 여름이 끝날까 봐,

다시 수확의 기회를 얻지 못할까 봐,

작은 여유조차 두려워하는 내가 안쓰럽고,

쉬는 법을 잊을 만큼 앞만 보고 달려온 내게 미안했다.


울고 싶을 때는 울어야 한다. 힘들면 버티지 않아도 된다.

그래도 될 만큼, 그래야 할 만큼, 우리는 치열하게 살아내지 않았는가.

좀 쉬자. 그래도 된다. 아니 그래야 한다.

차곡차곡 쌓아온 나의 인생은 ‘쉼’으로 무너지지 않는다.

인생을 무너트리는 건, 흔들리는 나와 지쳐버린 나다.


한숨 자고 일어나면 이 숲의 시원함에 뼛속까지 스며든 열기는 식을 것이다.

그러면 다시 일어나 걸으면 된다. 모든 길에는 끝이 있으므로, 그리고 모든 길은 하나로 통하므로. 그러니 언젠가 다시 밝은 빛을 만날 것이다.

그러니 지금은 쉬어도 된다. 내일을 위해 내게 휴식을 허락하자.


아-쪼-옴!!! 숨 좀 쉬고 살아. 이 열정쟁이야.

내 인생은 여전히 여름이다.

선선한 가을을 만나기 전까지 조금은 천천히 가자.

그래도 여름은 기다려 줄 테니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