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silla de las Mulas에서 Leon까지
꼭 이렇게 정리를 하려고 한다. 어쩔 수 없나 보다.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은…. 아니다. 괜히 호모 사피엔스 핑계를 대서 넘어가지 말고 그냥 내가 좀 그런 성향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남 탓 하지 마라!
일단 제목은 이렇게 적었지만 까미노길이 우리 동네 골목길과 다른 특징, 신촌이나 홍대입구 근처 길과 다른 점 또는 강남대로나 싱가포르 오쳐드로드와 다른 특징이 아니라 이곳이 일반적으로 트렁크를 들고 비행기 타고 가는 여행지와 다른 특징을 적어보려고 한다.
우선 여기에서의 모든 여행자들은 목적지가 같다. 그리고 매일 하는 일도 다 비슷하다. 그러니 당연히 생각하거나 행동하는 것도 고만고만 대동소이하다. 그러니 모두 각자 따로 온 여행이지만 서로 동질감을 많이 느끼고 서로 염려하고 잘 도와준다. 참 흔하지 않은 여행지이다. 요즘 까미노길은 자전거도 타고 버스도 택시도 타고 하지만 그래도 원래는 걷는 길이다. 그래서 걷다 보니 느낀 점 세 가지를 적어본다.
1. 회자정리, 거자필반 (會者定離, 去者必反)
어제는 알베르게에 그동안 우리에게 익숙한 얼굴이 한 명도 없었다. 다리가 아파서 며칠 동안 하루에 걷는 거리를 조금 줄여서 걸었더니 우리가 좀 뒤처진 모양이다. 까미노길은 순례자들이 매일 걷는 거리가 비슷하기 때문에 같은 날 출발한 사람들은 도중에 특별한 사유가 있지 않는 한 같은 도시, 같은 알베르게에 묵는 경우가 많다. 한동안 계속 같이 어울렸던 우리와 비슷한 시기에 출발했던 친구들이 이제 다 앞서 갔고 다시는 못 보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 섭섭한 마음이 든다. 그날은 이층 침대에 누워서 창문으로 지는 노을만 보면서 오후를 보낸 것 같다.
오늘은 레온에 도착해서 점심 후에 성당 근처를 산책하고 있는데 레온성당 앞의 바에서 반가운 얼굴들이 보인다. 이미 우리보다 한참은 앞서서 걷고 있겠구나 생각했던 친구들이 여기에서 맥주를 마시며 떠들고 있다. 알프스 아랫마을의 안드레와 브라질 우고가 보이더니 조금 후에는 프랑스어 선생님 피에르도 합류한다. 호주에서 온 아나톨리아도, 물론 새로운 친구들도 만난다. 다른 사람들 소식을 물어보니 벨로라도의 재즈싱어 움베르토 엘레나커플도 아직 레온에 있다고 한다. 반갑네…. ㅎ
다음날 아침 레온에서 하루 더 지내기 위해 다른 알베르게로 숙소를 옮기러 가는데 [1] 아나톨리아 남친인 패트릭이 체크인을 하려고 서있다. 둘이는 같이 출발했지만 각자의 속도에 맞추어 따로 걷는 중이고 레온 같은 대도시에서 만나는 모양이다. 이번에는 마트에 가려고 막 나오는데, 대만에서 온 마이크가 알베르게 쪽으로 천천히 걸어오고 있다. 또 반갑네. 내가 이렇게 정이 많은 사람이 아니었나? 아니면 늙었나? 아주 아주 오래전에 유명하신 분이 한 말씀 같은데, 적어도 까미노길에서는 어느 정도 맞는 말 같다.
‘만남에는 반드시 헤어짐이 있고 떠남이 있으면 반드시 돌아옴이 있다.’
2. 빨리 걷든지 느리게 걷든지
빨리 걷는 사람은 앞서 가는 것이 당연하게 생각되겠지만 딱히 그렇지도 않다. 빨리 걷는다는 이유로 중간 쉬는 시간에 더 여유 있게 쉬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우리처럼 느리게 걷는 사람은 아침에 더 일찍 출발하고 도중에 휴게소에서 쉴 때에도 서둘러 길을 나선다. 또 좀 늦었다고 생각되면 걸음을 보채서 걷기도 한다. 그래서 알베르게에는 모두 비슷한 시간에 도착을 하곤 한다. 매일 걷는 컨디션에 따라 걷는 구간의 난이도에 따라 오늘은 약간 느릴 수도 있고 내일은 약간 빠를 수도 있지만, 조금 더 매크로 한 관점, 그러니까 까미노길 전체 관점에서 보면 그 약간의 차이는 아주 약간의 차이로 줄어든다. 그리고 까미노길을 넘어 더욱더 매크로 하게, 더 길~~게 보면 그 차이는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줄어들 것 같다.
초반에 잠시 만났다가 먼저 떠난 피터아저씨는 부르고스에서 감기로 며칠 쉬면서 부르고스 넘어서 우리와 다시 만났고, 수비리에서 처음 만난 초고속 걸음의 안드레도 다시는 못 만날 줄 알았는데, 다리가 다쳐서 치료하느라 늦어졌단다. 그래서 또다시 만났다. 인생지사 ‘엎치락뒤치락, 왔다 갔다, 오락가락’이다.
가까이에서 보면 길가의 거친 잡초들이 제각기 기하학적인 독특한 모양을 하고 있지만 멀리서 보면 보송보송 아주 매끄러운 지평선으로 보이는 것처럼, 당장이라도 못하면 큰 일이라도 날 것 같은 하루하루의 차이가, 한 달이 지나면 작아지고 일 년이 지나고 십 년이 지나면 그 컸던 차이는 고만고만해지고 사실 잘 기억도 나지 않게 된다. ㅎ
3. 그래도 먼저 출발하고 열심히 걷는 사람은 먼저 도착한다.
그렇다고 빠르게 걷거나 느리게 걷거나 상관없이 모두 같은 시간에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은 아니다. 당연하지만 일찍 출발한 사람은 대부분 앞서 걷고, 빨리 걷고 덜 쉬면서 걷는 사람은 비교적 먼저 도착한다.
나보다 계속 몇 미터 앞서 걷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내가 조금만 걸음을 재촉하면 금방이라도 따라잡을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앞사람이 멈추거나 일부러 속도를 줄여주지 않는 한, 그 거리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다. 내가 지금 걷는 만큼 앞사람도 똑같이 열심히 걷기 때문이다. 내가 열심히 걸으면 남들도 열심히 걷고 있고, 내가 힘든 것을 참으면 남들도 꾹 참고 계속 걷는다. 특히나 모두가 진심으로 열심히 걷고 있는 까미노길에서는 앞사람과의 거리를 좁히려면 열심히 걷는 것에 ‘추가’의 노력이 있어야지 내가 늦게 출발한 만큼의 차이를 메꿀 수 있다.
물론 버스나 택시를 타면 몇십 킬로미터를 순간 이동할 수 있다고도 하지만, 그건 오로지 ‘목적지 도착’만을 기준으로 보는 관점이다. 까미노길의 여정을 거쳐왔다는 ‘경험적 관점’에서 본다면 그 사람들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했다’라고 말할 수는 있겠지만 ‘까미노길을 걸었다’라고 말하기에는 좀 부족한 부분이 있는 것 같다.
먼저 출발한 사람이 먼저 도착하는 것은 비교적 당연한 말인데, 요즘에는 ‘효율적, 혁신적, 창의적’이라는 단어를 써가면서 그 당연한 말이 당연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진다. 아니 당연한 말을 하면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 취급을 받는 경우도 있다. 버스나 택시가 혁신인가? 편법인가? 잘 모르겠다.
[1] 보통 공립 알베르게는 아프거나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하루 이상 머물 수가 없다. 그래서 한 도시에서 이틀 이상 지내려면 둘째 날은 사립 알베르게나 다른 공립 알베르게로 옮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