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없이 낳은 아이
숨겼다.
내 상처도, 눈물도.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없었던 일처럼
그렇게 숨기는 게 나을 거라 믿었다.
너무 아프면
소리조차 나오지 않던 그때처럼,
아무도 듣지 못하면
정말로 사라질 줄 알았다.
스물세 살, 아직은 꽃 같은 나이에
나는 결혼을 했다.
남들처럼 아름답지는 못했지만,
전쟁터로 나가는 장군처럼
비장하게 결혼을 택했다.
화려한 드레스도, 신혼여행도 없었다.
작고 조용하게,
사진 몇 장으로 결혼식을 마무리했다.
나는 너무 어렸고,
부모님께 또다시 짐이 되고 싶지 않았다.
“배불러서 부담스럽다”는 핑계로
조촐한 결혼식을 제안했다.
어떻게 허락이 되었냐고 묻는다면,
핏줄은 그렇게 쉽게 끊을 수 없다는 걸
나도, 그들도 알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물론, 시댁에서 반대했더라도
나는 아이를 지킬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
처음처럼 반겨주던 따뜻한 시선은 사라졌다.
“우리 아들이 좋다니까 어쩔 수 없지”
라는 표정과 눈빛이
내게 쏟아졌다.
그럴 수 있었다.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이건 내가 선택한 길이었고,
무엇보다 아이를 지켜내야 하는 일이었으니까.
확신 없는 시작, 상처로 얼룩진 첫걸음.
우리 둘에겐 벅찬 일들이
쉴 새 없이 이어졌다.
그사이,
남동생은 군 복무로 한국에 돌아갔고
나는 엄마와 단둘이 시드니에 남았다.
친정엄마를 혼자 둘 수 없었던 나는
남편에게 부탁을 했고, 그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 허락이 얼마나 힘든 일이었는지
허락을 해준 그에게 지금도 너무
미안하고 고맙다고 말해주고 싶다.
이다음에 내 친구는 내게 말했다.
“그건 아니었어.
결혼은 둘이서 풀어나가야 했던 문제야.”
그 말, 틀리지 않았다.
엄마가 아닌 그에게 도움을 구했더라면
우리는 조금 달라졌을까.
하지만 갑작스레 늘어난 가족.
그는 점점 지쳐가 보였다, 나는 최대한 배려하려 했다.
주말이든 평일이든
그의 시간을 방해하지 않으려 애썼다.
“뭘 하든, 이유는 묻지 않을게.”
그 말은 어쩌면 사랑보다,
방임에 가까웠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는 엄마와 대부분의 임신기간을 보냈다.
그와 보내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었다.
우리의 대화는 사라졌고, 함께하는 순간들은 멀어졌다.
다른 부부들은 함께 태교여행도 가고,
식사도 하고, 산책도 한다는데
우리는 늘 따로였다.
그는 친구들과의 술자리,
낚시, 게임, 사진기에 빠져 있었고
그의 주말은 나 없이도 바쁘게 흘러갔다.
나는 엄마와 둘이 남아
아기를 위해 감정을 꾹꾹 눌렀다.
“참아야지. 아기를 생각해야 해.”
엄마의 말처럼
내 감정을 지워내려 애썼다.
그게 최선이라 믿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그가 친구들과의 여행 중에
다른 여자와 술자리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참아왔던 마음을 조심스레 꺼내놓자
그가 내게 말했다.
“너도 아기 낳고 놀면 되잖아.”
그 말은 그냥 한 문장이 아니었다.
그건 나라는 사람을 무시한 말이었고,
내가 견뎌온 모든 시간들을 깎아내리는 말이었다.
그 안에는 얼마나 많은 고민이 있었고,
얼마나 많은 눈물이 있었는지…
그는 전혀 알지 못한 채,
너무도 쉽게 내 마음을 짓밟았다.
내가 얼마나 외로웠는지,
얼마나 무서웠는지,
몸은 부서질 듯 아팠고,
마음은 그보다 더 아팠는데
그걸 다 참고 견디며 버텨낸 나에게
그 말은 너무 잔인했다.
나를 이해하려는 마음도 없고,
함께 하려는 책임도 없고,
그저 ‘놀면 된다’는 가벼운 한마디로
내 모든 고통을 낭비로 만들어버렸다.
나는
그 순간 세상 누구보다도 외로웠다.
나는 지금 ‘놀고’ 있는 게 아니다.
나는 지금 생명을 지키고 있는 중이다.
누군가의 인생을 책임지기 위해
내 인생을 걸고 있는 중이었다.
그는 그걸 몰랐다. 아니, 모르는 척했다.
그래서 실망했고, 그래서 화가 났고,
무엇보다 서러웠다.
출산 당일.
밤새 진통을 참고,
아침이 되어 겨우 몸을 이끌고 병원에 갔다.
그는 배가 고프다며
맥도널드를 사 와 병실에서 먹기 시작했다.
냄새가 병실 가득 퍼졌고, 나는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 순간 생각했다.
‘차라리 네가 없는 게 낫겠다.’
아이는 순조롭게 태어났다.
그토록 원치 않던 아기였지만,
그래도 고생했다는 말 정도는
그에게서 들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하지만 내게 수고했다고 말해준 사람은
그가 아니라, 친정아빠였다.
그 순간,
참고 또 참았던 서러움이 폭포처럼 터져 나왔다.
그는 늘 그 자리.
흐느끼는 나를 외면한 채,
컴퓨터 앞에서 게임을 하고 있었다.
그날의 기억은 지워지지 않는다.
참았어야 했지만,
지워지지 않는 주홍글씨처럼
내 마음 어딘가에 깊이 새겨져
지금도 아프게 남아 있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
별일 아닐 거라,
나중엔 웃으며 돌아볼 수 있을 거라
스스로를 다독이며 지냈던 그날들.
그렇게 버텨왔다.
그리고 지금, 나는 믿는다.
그 끝엔 내가 웃는 날이 올 거라고.
난, 그와 헤어지길 잘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 해도
이제는 나를 버리지 않을 것이다.
절대, 다. 시. 는.
연애와 결혼은 다르다.
좋을 때만 함께 하는 게 아니라,
힘들고 지칠 때,
그 사람의 ‘배려심’이 진짜 모습을 드러낸다.
삶이 휘청이고, 마음이 무너질 때
당신의 안부를 묻는 사람이 있다면,
싸운 후 각자의 집에 돌아갔을 때
당신의 기분을 먼저 걱정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자신의 감정보다
당신의 마음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니까.
그건 말보다 행동으로,
타이밍보다 진심으로 증명되는 것.
사랑은 결국,
서로의 마음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는가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