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큐요리
사진사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오는 것은 색채의 충돌과 조화입니다.
슈리성의 붉은 단청을 닮은 주칠(朱漆) 그릇 위로, 오키나와의 강렬한 태양을 견뎌낸 식재료들이 올라와 있죠.
이 음식은 단순히 '맛'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당시 류큐 왕국이 지녔던 독자적인 자존감의 기록입니다.
클로즈업 샷으로 잡으면 가장 극적인 것은 역시 '라후테'입니다. 껍질부터 속살까지 배어든 짙은 갈색의 그라데이션은 수 시간의 졸임 과정을 증명합니다.
만드는 과정: 흑설탕과 거품술(아와모리)을 넣고 기름기를 걷어내며 천천히 삶아냅니다.
사진사의 시선: 젓가락이 닿는 순간 무너져 내릴 듯한 그 부드러운 '찰나의 질감'을 포착하고 싶어집니다. 이는 왕의 식탁에 오르기 전, 조리사가 불 앞에서 보낸 인내의 시간을 시각적으로 치환한 것이죠.
초록색 고야(여주)의 울퉁불퉁한 표면은 빛을 산란시켜 입체감을 줍니다.
만드는 과정: 소금으로 쓴맛을 조절하고, 두부와 달걀을 볶아 맛의 균형을 맞춥니다.
사진사의 시선: 한식의 정갈한 색동과는 또 다른, 거칠면서도 생명력 넘치는 오키나와 특유의 에너지가 느껴집니다.
'왕의 음식'임에도 불구하고 섬의 척박함을 이겨낸 식재료를 그대로 수용했다는 점에서 포용적인 왕실의 태도가 읽힙니다.
얇게 썰어낸 돼지 귀 무침은 역광에서 촬영하면 그 투명함이 돋보입니다.
만드는 과정: 잡내를 없애기 위해 여러 번 씻고 삶아낸 뒤 식초와 땅콩 소스 등에 버무립니다.
사진사의 시선: 한국의 편육과는 또 다른 질감입니다. 오독오독 씹히는 소리가 사진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청각적 시각화'**가 일어나는 지점이죠.
이 식탁은 일본, 중국, 그리고 동남아시아를 잇는 중계무역의 허브였던 류큐 왕국의 정체성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교류의 흔적: 아와모리 술을 사용하여 고기를 잡내 없이 조리하는 방식은 멀리 동남아시아와의 교류를 의미하고, 흑설탕의 진한 풍미는 섬의 토양을 의미합니다.
한국인 사진사가 본 지점: 우리네 종가집 내림음식이나 조선 궁중 요리가 '정성'과 '격식'의 결정체라면, 류큐의 음식은 '생존'을 '예술'로 승화시킨 느낌입니다.
척박한 섬 환경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외교를 통해 얻은 귀한 양념(설탕, 술)으로 감싸 안은 것이죠.
"뷰파인더로 본 슈리성의 식탁은 화려한 성찬이라기보다, 거친 파도를 잠재우고 평화를 유지하려 했던 왕실의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닮아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