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가 더는 오지 않는 역, 나전역에서

정선의 음식 이야기는 항상 장소에서 시작된다.

by 마루


정선의 음식 이야기는
항상 장소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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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가 더는 오지 않는 역,
나전역에서
카메라를 어깨에 걸고 천천히 걷는다.
셔터는 급하지 않다.
이곳의 시간은 이미 느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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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벽에 남아 있고,
바람은 플랫폼을 훑고 간다.
선로 위로는 소리 대신
여백이 쌓여 있다.
그 여백이 충분히 몸에 배면
이제야 배가 고파진다.


차를 몰고 산자락을 따라 내려가면
식당 하나가 조용히 나타난다.
큰 말도, 큰 손짓도 없는 집.
제일가든이다.


문을 여는 순간
공기가 달라진다.
주방에서 피어오르는 김,
된장과 나물의 냄새가
말보다 먼저 인사를 건다.
이건 여행자의 점심이 아니라
사위가 온 날의 밥상 같은 온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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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박에 담겨 나온 곤드레밥.
곤드레는 잘게 부서지지 않고
제 모양을 지킨 채 밥 위에 얹혀 있다.
간장을 붓기 전,
먼저 한 숟갈을 뜬다.
쌀의 단맛이 먼저 오고
뒤늦게 산의 향이 따라온다.
곤드레는 말이 없다.
그래서 더 오래 남는다.


반찬들은 과하지 않다.
짠맛을 앞세우지 않고
익숙한 쪽으로 기운다.
누군가에게는 심심하고,
누군가에게는 정확한 맛.
정선의 밥상은
항상 그런 식으로 사람을 고른다.


토종닭은 시간을 먹고 자란 맛이다.
뼈를 따라 국물이 천천히 풀리고,
기름은 얇게,
향은 깊게 남는다.
불이 아니라 기다림으로 완성된 국물.
숟가락을 내려놓을 즈음
속이 먼저 따뜻해진다.


그리고 막걸리 한 사발.
차갑지 않게,
미지근한 온도로 잔에 따른다.
첫 모금은 달고,
두 번째는 부드럽다.
세 번째부터는
말이 줄어든다.


창밖으로는
정선의 산이 가만히 서 있고,
시간은 더 느려진다.
역에서 멈췄던 시간이
이 밥상 위에서
조금씩 풀려난다.


취한다는 건
술 때문만은 아니다.
곤드레의 향,
닭국물의 온기,
사람을 재촉하지 않는 공간.
그 모든 것이 겹쳐
천천히 감성을 적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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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에서는
이렇게 하루가 흘러간다.
카메라는 다시 어깨에 얹히고,
발걸음은 가볍지 않다.
배부른 몸보다
마음이 먼저 채워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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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의 음식은
배를 채우기보다
시간을 먹는 일에 가깝다.
그래서 정선의 맛은
언제나
조금 늦게,
그리고 오래 남는다.


눈이 내린다.

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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