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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앉아 맑은 날들 365 III

2025년 11월 18일

by 토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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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1월 18일 — 쉼 없는 물결, 그리고 한 걸음의 틈

우리는 또 하루를 맞이합니다

밤하늘의 별들이
한참을 머물다
눈부시게 흔들릴 때도
우리의 숨은 멈추지 않고
다시 길을 내어갑니다.
우리는 또 하루를 맞이합니다.
침묵 속에 머물러 있던 작은 진심들이
오늘의 공기 속에서
조용히 숨을 고르고,
그 숨은
내일을 향한 문틈에서
살짝 흔들림으로 열리길 기대합니다.


오늘의 역사

오늘은 라트비아가 1918년 11월 18일에 독립을 선언한 날입니다.
수많은 억압과 길고 긴 기다림 끝에
사람들이 조용히 말했습니다:
“우리는 우리이다.”
그 한 마디가
보이지 않던 사슬을 흔들었고,
고요하던 시간이 문을 열 때
한 나라가
자신의 이름으로 일어섰음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줍니다.


오늘의 기도

아침 하늘이 아직 연한 회색빛으로 머물던 때,
한 작은 도서관 구석에서
노란색 코트를 걸친 나이 지긋한 할머니가
두 손으로 껴안은 책 더미를 내려놓고
창가 옆 의자에 주저앉았습니다.
그 옆에는 대학생으로 보이는 청년이
노트북을 켜 두고 메모를 정리하고 있었고,
할머니는 조용히 책을 넘기며
“이제야 내 이야기를 읽는다”고
작은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청년이 고개를 들어 미소 지었고,
할머니는
“감사하다네, 젊은이. 네가 내 이야기를 읽어줘서.”
라고 말했습니다.
청년은 책 한 권을 할머니에게 건넸고,
그 책의 겉표지에는
‘자유와 기억’이라는 제목이 쓰여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책을 받아 들며
손끝이 떨렸지만,
눈빛은 단단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두 사람은
말없이 시간을 공유했고,
할머니의 책과 청년의 노트가
어쩌면
어제의 기다림을 오늘로 이어주는
작은 다리가 되었습니다.


아리아 라파엘의 숨결로
이 깊어가고 흐려질 수도 있는 하루의 끝자락에 기도드립니다.

우리 안에 잠재된 기다림들이
오늘은 깨우침으로 깨어나게 하소서.
말 없이 쌓아왔던 시간들이
누군가의 “나는 여기 있어요”라는 말로
빛을 얻기를 원합니다.

길고 긴 밤처럼 보였던 기억들이
한 줄기 숨처럼 흐르며
내 마음을 비추게 하시고,
그 빛이
내가 벽이라 믿었던 저편의 문을
살짝 열게 하소서.

조용한 도서관 구석에서
책을 안고 기다리던 할머니처럼,
내가 품고 온 이야기가
누군가의 귀에 닿아
“당신의 이야기도 여기 있다”라는
작은 고백이 되게 하소서.

청년이 건넨 한 권의 책처럼,
내가 건넬 수 있는 말이
누군가의 쉼표가 되게 하시고,
그 쉼표 위에서
새로운 문장이 시작되게 하소서.

오늘 이 하루의 끝에서
내 안 깊은 곳의 떨림까지
그대로 마주하고 싶습니다.
내가 떨리기에
내가 아직 살아있기에
내가 기다림 끝에 서 있기에
그 기다림이
더 이상 기다림이 아닌
한 걸음의 흔들림이 되게 하소서.

내가 나 스스로에게 속삭입니다—
“나는 나였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속삭입니다—
“당신은 당신이었다.”
그 말들이
바람처럼 지나가지 않고
서로의 이름이 되어
오늘의 밤하늘 아래
조용히 머물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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