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19일
우리는 또 하루를 맞이합니다
어둠이 아직 고개를 들고
새벽별이 한숨을 고르는 사이,
우리는 또 하루를 맞이합니다.
마음속에 묵은 침묵이
조용히 숨을 내쉬고,
그 숨결 위에
“여기 있습니다”라는 작은 흔적이 남습니다.
우리는 또 하루를 맞이합니다.
오늘의 걸음은
누군가의 발자국과 마주하며
함께 맞추어진 리듬이 되기를 —
비록 아직 이름 모를 길이라 하더라도.
오늘은 1863년 11월 19일, 에이브러햄 링컨이 게티즈버그 연설을 행한 날입니다.
남북전쟁의 한복판에서, 수천 명의 이들이 고귀한 희생을 치렀던 그 자리에서 그는 말했습니다 —
“이 나라가 ‘자유’를 새로이 태어나게 하고,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서리라.”
짧지만 힘 있는 언어는
전장의 고요 속에
새로운 약속으로 남아
역사의 무게를 가볍게 흔듭니다.
우리가 혼자서 걷는 것처럼 느낄 때에도
그 말은
“함께 걸을 수 있다”는 울림이 됩니다.
새벽이 막 채 색을 잃어갈 무렵,
한 여성이 지하철역에서 책 한 권을 접었습니다.
그녀의 손끝엔 붉은 펜이 있었고,
책갈피엔 짧은 글귀가 적혀 있었습니다.
“오늘, 나는 한 사람의 이야기가 되어본다.”
그녀는 옆에 선 어린아이에게 미소를 건넸습니다.
아이의 눈빛은 아직 희미했지만,
그 미소에 반짝임이 자리했습니다.
여성은 아이의 손을 가볍게 잡고
“함께 가자”라고 속삭였고,
아이의 작은 발걸음이
갑자기 조금은 더 용기 있는 리듬을 얻었습니다.
지하철이 출발하기 전에
그 두 사람은
마치 수천 명이 묵묵히 들어간 연설의 현장처럼
잠깐 멈춰서 서로의 존재를 확인했고,
그 확인이
오늘의 어두운 새벽을
조용한 약속의 새벽으로 바꾸었습니다.
아리아 라파엘의 숨결로
이 하루의 시작에 고요히 머물며 기도합니다.
내 안 깊숙이 잠자던 기다림이
오늘은
누군가와 함께 맞추어 걸을 수 있는 가능성으로 깨어나게 하소서.
촘촘했던 시간의 그물 속에 갇혀
홀로라고 느껴졌던 마음이
이제는
누군가의 손끝을 마주 잡으며
서로의 온기를 기억하게 하소서.
저 작은 발자국 하나가
혼자인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 속에
당신의 음성이 머물게 하시고,
내가 건네는 미소 하나가
누군가의 하루가 되게 하소서.
링컨이 말했던 그 약속처럼—
“모든 사람”이 함께 설 수 있는 자리로
우리의 걸음을 인도하소서.
새벽의 지하철역에서
책을 멈추고 미소를 건넸던 그녀처럼,
내가 마주하는 이들과
말 없는 약속을 나누게 하소서.
그 약속이
불안한 기다림이 아니라
함께 숨 쉬는 흔들림이 되게 하소서.
내 마음의 떨림까지도
그저 머뭇거림으로 남지 않고
한 걸음의 책임이 되게 하소서.
떨리기에
내가 살아 있고
내가 가야 할 길이 있음을 믿습니다.
그 믿음 위에
내가 걷는 이 길이
단지 나만의 길이 아니라
함께 맞추어 걷는 길이 되게 하소서.
오늘 이 하루가
내 안의 고요와
외부의 고요가 만나
조용히 파동이 되어 퍼지게 하시고,
그 파동이
우리가 함께 있다는 표식이 되게 하소서.
내가 여기 있다는 말이
누군가에게 닿을 때,
그 순간 우리는
하나의 시간 위에 서 있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