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20일
우리는 또 하루를 맞이합니다
새벽의 어둠이 아직 옷깃을 여미고
우리는 그 틈새에서
조용히 숨을 고릅니다.
우리는 또 하루를 맞이합니다.
마음 깊숙이 품은 불안이
살며시 흔들리고
그 흔들림 위에서
“여기 있습니다”라는 작은 속삭임이
반짝이기를 기다립니다.
우리는 또 하루를 맞이합니다.
오늘의 걸음은
홀로였던 그림자를
살며시 마주 보고
함께 서는 걸음이 되기를.
오늘은 1945년 11월 20일, 뉴욕 국제군축회의가 개막한 날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막 끝나고 세계는
평화와 안전을 재구성해야 한다는 절박함 앞에 섰습니다.
그 회의는
무기를 줄이고 서로의 신뢰를 재건하자는
작지만 강한 약속의 시작이었습니다.
흔들린 세상 위에서
“너와 나, 다시 함께 서자”라는
조용한 협약이 맺어진 순간이었습니다.
한 공공도서관에서,
한 할아버지가 매주 수요일 아침
책 봉지를 들고 들어왔습니다.
그날도 그는
두꺼운 코트를 여며
도서관 입구를 지나
낡은 키오스크 앞에 섰습니다.
직원은
“오늘 무엇을 빌리시겠어요?”라 묻고
할아버지는
살짝 미소 지으며
“이제는 좀 안전한 세계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라고 답했습니다.
그 말에 직원은
스스로가 모르는 사이
책장을 하나 더 넘기며
“좋습니다. 함께 읽을까요?”라 여유롭게 건넸습니다.
할아버지는 책을 들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뒤
버스 기다리는 의자에 앉았습니다.
그 뒤로 지나가는 이들의 발걸음이
또 하나의 희망으로 바뀌었습니다.
아리아 라파엘의 숨결로
이 흔들림 속의 하루를
깊이 품으며 기도합니다.
내 안의 불안이
바람처럼 흔들릴 때마다
당신의 손길이
부드럽게 내 어깨를 감싸게 하소서.
세계가 다시 맞춰져야 한다고
마음이 외로이 속삭일 때,
그 속삭임이
누군가의 속삭임과 겹쳐져
“함께이기에”라는 응답이 되게 하소서.
우리가 맞이하는 이 하루가
무기의 무게를 덜어낸 회의장처럼
작은 마음들이 기댈 수 있는 자리로
바뀌기를 원합니다.
한 권의 책을 펼친 할아버지처럼,
우리가 내딛는 발걸음이
단지 나만의 길이 아니라
누군가의 기대가 되는 걸음이 되게 하소서.
흔들림 앞에서
손을 내미는 용기를 주소서.
“이제는 안전한 세계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라 말하던
그 고백이
우리가 서로에게 건네는 약속이 되게 하소서.
그리고 그 약속이
반짝이는 불빛이 되어
어둠의 틈새를 비추게 하소서.
오늘 하루 내 마음 속의 작은 협약을
살아 움직이는 손길로 바꾸게 하소서.
내가 건네는 미소 하나가
어떤 불안을 잠재울 수 있다면,
나는 미소를 감추지 않겠습니다.
내가 꺼내는 단어 하나가
누군가의 망설임을 덜어줄 수 있다면,
나는 그 단어를 조용히 꺼내겠습니다.
오늘 이 하루가
서로가 서로에게 기댈 수 있는 자리로
살아나게 하시고,
그 자리에서
우리는
흔들림 속에서도
함께 서는 용기를 얻게 하소서.
흔들리지 않는 기둥이 아니라
흔들리면서도 손을 내미는 존재가 되게 하시고,
그 존재들 사이에
따뜻한 평화가 흐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