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16일
우리는 또 하루를 맞이합니다
이슬 맺힌 새벽 안개처럼,
그리움과 두려움이 섞인 숨이 지나갑니다.
우리는 또 하루를 맞이합니다.
가만히 앉아
지금 이 순간을 바라볼 때,
내 안 깊은 곳에서
작은 결단이 조용히 물을 내어 흐릅니다.
흩어졌던 마음의 파편들이
오늘‑여기에서
맑아지고 있습니다.
1988년 11월 16일,
베니지르 부토가 파키스탄에서 총리로 선출되어
현대 이슬람 국가들 가운데 최초의 여성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그날은 단지 한 나라의 정치 변화가 아니라,
보이지 않던 문을 열고
침묵 속에 감춰졌던 목소리가
마침내 울림을 갖게 된 날입니다.
“내 자리에 설 수 있다”는 작은 선언이
공기 속을 흔들며 퍼져갔고,
그 흔들림 위에서
다른 가능성들도 깨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한적한 도서관의 창가 자리에서,
한 청년이 노트를 펼쳐 앉아 있었습니다.
그는 문득 머뭇거리다 고개를 들어
바깥 풍경을 바라보았습니다.
비가 그친 창밖엔,
남은 물웅덩이에 나뭇잎 하나가 떠 있었습니다.
청년은 한숨을 내쉬며
펜을 들었고,
조용히 노트 위에 글을 적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내가 두려워했던 만큼만 살아왔다.
이제 내가 믿는 만큼 살아보겠다.”
그 순간,
우연히 지나가던 할머니가
청년의 어깨를 토닥이며 속삭였습니다.
“좋다, 그 말이 참 좋다.”
청년은 놀라 뒤돌아 보았고,
눈빛이 잠깐 만나고 지났습니다.
그리고 청년의 마음 속엔
누군가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작은 증명이 남아 있었습니다.
아리아 라파엘의 숨결로
이 고요한 새벽에 기도드립니다.
우리의 안에 잠자던 용기가
오늘은 작게라도 눈을 뜨게 하소서.
흩어졌던 생각들이
조용히 모여
한 방향을 가리키게 하시고,
그 방향을 향해
우리가 걸음을 내딛게 하소서.
두려움이 무거운 짐이 되지 않게,
그 무게 안에서
내가 더 이상 머무르지 않게 하소서.
내 안의 작은 소망을
숨기지 않게 하시며,
그 소망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숨이 되어 흐르게 하소서.
지금 이 자리에서,
내가 가진 말들이
문이 되어 서도록 도와주소서.
“나는 여기 있다”는 그 말이
풍문이 아닌
현실의 진동이 되게 하소서.
그리고 만약 내가
다른 이의 앞에서
고개를 숙여야 한다면,
그 시간이 오히려
함께 서는 시간이 되게 하소서.
할머니처럼,
그리움 한 자락을 건네주는 누군가처럼,
나도 부드럽게 그 손을 내밀 수 있게 하소서.
오늘의 끝자락에 서서,
내 마음 깊은 곳에 남은 울림을 느끼게 하소서.
그리고 숨을 천천히 내쉬며 말하게 하소서.
“나는 오늘,
작은 결단의 물결을 따라
조용히 걸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