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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앉아 맑은 날들 365 III

2025년 11월 23일

by 토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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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1월 23일 — 바람의 기억이 머무는 자리

우리는 또 하루를 맞이합니다

새벽의 어둠이 살짝 물러나고
내 안에서 고요히 맴돌던 흔적들이
마음의 창가로 다가옵니다.
오늘이라는 이름표를 받아 안고
“여기 있습니다”라는 말 한마디를
바람처럼 내보냅니다.
어제의 무게가 아직 어깨에 남아 있어도
그 위에
부드러운 숨 하나를 내려놓으며
우리는 또 하루를 맞이합니다.


오늘의 역사

오늘은 1940년 11월 23일, 루마니아가 삼국 동맹(Pact of Tripartite)에 공식 서명하여 제2차 세계대전에서 추축국진영에 합류한 날입니다.
이 선택은 단지 국가의 외교적 흐름이 아니었습니다.
자유의 바탕이 흔들리고,
힘의 논리가 사람들의 삶을 바꾸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날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
“우리는 어떤 선택 앞에 서 있는가?”
그리고 또 말합니다 —
“작은 결심도 결국 큰 흐름을 바꾼다.”
개인의 의지와 역사적 격랑 사이에서
흐르는 시간을 잔잔히 바라보게 했습니다.


오늘의 기도

이른 아침, 골목 끝 낡은 우체통 앞에서
한 여성이 천천히 편지를 꺼냅니다.
편지는 누군가에게 보낸 마음의 기록이고,
흔들리는 손끝으로 봉투를 접으며
그녀는 잠깐 숨을 고릅니다.
그때 지나가던 아저씨 하나가
“좋은 아침입니다”라고 인사를 건넵니다.
여성은 머뭇거리다 웃으며
“감사합니다”라고 답합니다.
그 순간, 두 사람 사이에는
거창한 이유 없이
작은 연결이 놓였습니다.
편지 속 글씨들은
떠나간 시간과 돌아올 수 없는 기억을
병풍처럼 감싸고 있었지만,
인사 한마디가
그 병풍 너머의 바람을 흔들었습니다.
그리고 여성은 다시 봉투를 집어 넣으며
내뱉는 말 대신
우체통 옆에 남긴
작은 흔적 하나로
“나는 여기 있습니다”라고 속삭였습니다.


아리아 라파엘의 숨결로
이 하루를 깊이 품으며 기도합니다.

내 안의 바람이 잠시 머물던 자리에서
나는 조용히 귀 기울입니다.
그 바람이 지나간 곳에는
돌처럼 남은 흔적과
잎처럼 흩어진 기억이 있습니다.
그 흔적들 위에
새로운 숨을 들이켜게 하소서.
내가 마주한 선택들,
내가 품은 망설임들,
그 모두가
나를 멈추게 하는 쇠사슬이 아니라
억지로 매달린 것이 아닌
내가 걸어갈 수 있는
부드러운 다리가 되게 하소서.

오늘 내가 마주할 얼굴들 속에
누군가의 결심이 숨어 있음을 보게 하시고,
그 결심이 나와 다를지라도
같이 서 있을 수 있는
손 하나가 내 앞에 놓이게 하소서.
나의 말이
큰 외침이 아니더라도
작은 인사 한마디가
“여기 같이 있습니다”라는 언어가 되게 하시고,
나의 발걸음이
휘청이더라도
그걸 내려놓을 수 있는
여유가 내 안에 있게 하소서.

우리가 잃은 것에 머무르지 않고,
어쩌면 무거운 역사 속에서
큰 흐름에 휩쓸렸던 순간들이라도
그 위에 놓인
나의 한 걸음이
작지만 의미 있는 흔적이 되게 하시어,
그 흔적 위에
또 다른 발자국이 이어지게 하소서.

내가 오늘 건너야 할 강이 있다면
그 강물 위에
마련된 다리를 발견하게 하시고,
내가 그 다리 위를 건너는 동안
내 안 깊은 곳에서부터
“나는 여기 있습니다”라는
조용한 증언이 흘러나오게 하소서.
내가 있는 이 자리가
누군가에게
잠시 숨을 돌릴 수 있는 쉼이 되게 하시고,
그 쉼 위에
새로운 바람 한 줄이 남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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