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직관·예술로 엮은 인류-견류 간 대화의 대전.17
거울이 아닌 ‘스멜 미러링’의 증거들
우리는 오래도록 이렇게 질문해왔다.
“거울 속의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다면, 자아는 없는 것일까?”
거울 자가인식 테스트는
인간과 몇몇 유인원, 돌고래, 코끼리에게만 통과를 허락했다.
그리고 개는 그 문 앞에서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우리는 너무 쉽게 결론을 내려버렸다.
“개는 자신을 인식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 결론에는
치명적인 전제가 숨어 있다.
그것은 바로 자아는 시각으로만 확인될 수 있다는 믿음이다.
거울 테스트는 중립적인 검사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감각 체계—
얼굴을 중심으로 한 시각적 정체성—를 기준으로 설계된 질문이다.
거울 앞에서 인간은 이렇게 묻는다.
“저게 나인가?”
그러나 개는 애초에
‘보이는 나’로 자신을 정의하지 않는다.
개에게 얼굴은 명함이 아니라 그림자에 가깝다.
자아의 핵심은 보이는 형상이 아니라
지속되는 감각의 흐름에 있다.
개의 세계에서
정체성은 고정된 이미지가 아니다.
그것은 냄새, 체온, 감정 상태가 겹겹이 쌓이며
시간 속에서 이어지는 연속성이다.
그래서 거울 속의 개는
낯설다.
움직이지만 냄새가 없고,
눈은 마주치지만 후각적 서명이 없다.
개는 그 앞에서 이렇게 판단한다.
“이것은 나의 연속성에 속하지 않는다.”
그것은 인식 실패가 아니라
인지적 정확성이다.
개가 거울에 반응하지 않는 이유는
자아가 없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개는 이미
자신을 알고 있기 때문에
거울이라는 보조 장치를 요구하지 않는다.
자신의 냄새가 어제와 다른지,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몸이 아픈지,
주인과 떨어진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이 모든 것을
개는 후각과 신체 감각으로 즉각 파악한다.
거울은
‘지금의 나’를 보여주지만,
냄새는
‘어제부터 지금까지의 나’를 증명한다.
따라서 올바른 질문은 이것이다.
“개는 거울 속의 자신을 아는가?”에서
“개는 자기 자신을 어떤 감각으로 아는가?”로
이 질문을 바꾸는 순간,
개는 시험에서 탈락한 존재가 아니라
다른 시험을 통과한 존재가 된다.
개는 거울을 통과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실패가 아니다.
그들은 애초에
거울을 통과할 필요가 없는 방식으로
자기 자신을 살아간다.
개는 거울 속의 나를 찾지 않는다.
그들은 냄새와 감각의 연속성 속에서
이미 자기 자신과 함께 있다.
이 장의 끝에서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자아는 하나의 형태가 아니다.
자아는 그 종이 세계와 만나는 방식이다.
개는 거울 앞에서 멈추지 않는다.
하지만 땅 위에 남은 냄새 앞에서는
발걸음을 늦추고, 고개를 숙이며, 시간을 쓴다.
그 시간은 망설임이 아니라 확인이다.
“이것은 나인가?”
그리고 곧이어 이어지는 두 번째 질문.
“나에게 무슨 변화가 있었는가?”
이 질문이 바로
후각적 자기 인식의 시작점이다.
행동학 실험들은 일관된 장면을 보여준다.
개는 자신의 냄새에는 오래 머물지 않는다.
너무 익숙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변형된 자신의 냄새—
다른 개의 체취가 섞였거나,
시간이 흐르며 성분이 바뀐 냄새—에는
눈에 띄게 오래 탐색한다.
이 행동은 호기심이 아니다.
그것은 비교다.
개는 이미
‘나의 냄새’에 대한 **기준값(baseline)**을 가지고 있고,
그 기준에서 벗어난 변화를
정확히 감지한다.
“개는 나를 찾지 않는다.
나의 변화를 찾는다.”
이 지점에서
거울 테스트와 다른 종류의 ‘거울’이 등장한다.
**스멜 미러링(Smell Mirroring)**이다.
시각적 거울이
지금의 얼굴을 되비춘다면,
후각적 거울은
시간을 포함한 나를 되비춘다.
어제의 나
방금 전의 나
스트레스를 겪은 이후의 나
회복 중인 나
개는 냄새를 통해
이 연속된 ‘나의 역사’를 확인한다.
그래서 변형된 자기 냄새 앞에서
개는 더 오래 머문다.
그것은 낯설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업데이트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때 개의 뇌에서는
여러 회로가 동시에 작동한다고 추정된다.
후각망울: 냄새의 패턴을 정밀하게 분해하고
해마: 과거의 ‘나의 냄새’와 현재를 대조하며
전전두엽: “같은가, 다른가”를 판단한다
이 과정은
자아 인식의 핵심 조건과 맞닿아 있다.
기억, 비교, 변화 감지.
즉, 개는
‘내가 누구인가’를
이미지 대신 후각적 연속성으로 계산한다.
중요한 사실은 이것이다.
개는 타인의 냄새보다
변형된 자신의 냄새에 더 많은 시간을 쓴다.
이것은 사회적 호기심을 넘어선 반응이다.
자기 참조(self-referential) 반응이다.
“이것은 남이 아니다.
그러나 예전의 나도 아니다.”
그 사이 어딘가에서
개는 자신을 다시 구성한다.
이때 개는
‘나를 인식한다’고 말하기보다,
**‘나를 갱신한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하다.
거울은
한 순간의 나를 비춘다.
그러나 냄새는
시간을 통과한 나를 보여준다.
그래서 개에게
자기 인식은
한 번의 깨달음이 아니라,
지속적인 감지의 과정이다.
개는 냄새로 자신을 본다.
그리고 그 냄새가 바뀔 때마다
다시, 조용히, 자기 자신을 만난다.
다음 장에서 우리는
이 후각적 자아가
어떤 윤리와 관계의 방식으로 이어지는지 보게 될 것이다.
개는 자신을 한 번에 알아차리지 않는다.
그들은 매 순간,
다시 자신이 된다.
냄새를 맡는다는 것은
정보를 수집하는 행위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현재형으로 갱신하는 의식에 가깝다.
그래서 개의 자아는
고정된 명사가 아니다.
그것은 흐르는 동사이며,
계속 이어지는 문장이다.
인간은 거울 앞에서
자아를 확인한다.
“그래, 저게 나야.”
그러나 개는
그렇게 자신을 고정하지 않는다.
개에게 ‘나’란
오늘 아침의 체취
방금 산책 후의 땀
긴장했을 때 변한 냄새
보호자와 떨어져 있던 시간의 흔적
이 모든 것이 겹쳐진
후각적 연속성이다.
그래서 개의 자아는
하나의 이미지가 아니라
시간이 쌓인 향의 층위로 존재한다.
“나는 이렇게 생겼다”가 아니라
“나는 이렇게 흘러왔다.”
이 문장이
개의 자아를 가장 정확하게 설명한다.
이 지점에서
후각은 단순한 감각이 아니라
윤리의 문제가 된다.
개의 냄새를
무시하거나,
과도하게 지우거나,
항상 ‘사람 기준의 향’으로 덮어버리는 행위는
단순한 미용이나 위생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개의 자기 연속성에 대한 개입이다.
물론 청결은 필요하다.
그러나 ‘완전히 지워진 냄새’는
개에게 이렇게 들릴 수 있다.
“너의 어제가 사라졌다.”
개가 목욕 후 불안해하거나
자기 몸을 과하게 핥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이 정체성의 공백 때문이다.
개는
자기 냄새를 통해 자신을 유지하지만,
동시에 보호자의 냄새를 통해
자기를 안정시킨다.
이때 보호자의 냄새는
개에게 ‘나를 삼키는 타자’가 아니라
‘나를 지켜주는 기준점’이 된다.
나의 냄새 + 당신의 냄새
나의 시간 + 당신과 함께한 시간
이 결합은
개에게 하나의 메시지를 남긴다.
“나는 나이면서,
동시에 너와 연결되어 있다.”
이것이
후각적 유대의 가장 깊은 형태다.
자아를 가진다는 것은
반드시 거울을 알아보는 일이 아니다.
자아란
자신의 연속성을 잃지 않는 능력이며,
그 연속성을 감지하고
다시 조율할 수 있는 힘이다.
개는
후각으로 그것을 해낸다.
개에게 냄새는 단서가 아니라 정체성이다.
그들은 냄새로 나를 기억하고,
냄새로 나를 잃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방식을 교정하는 것이 아니라,
존중하는 것이다.
개가 냄새로 자신을 살아간다면,
우리는 그 자아가
조용히 이어질 수 있도록
곁에 있어주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개는 자신을 냄새로 안다.
그 말은 곧, 몸의 변화가 가장 먼저 냄새로 말해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픔, 스트레스, 노화, 회복—
이 모든 것은
눈에 보이기 전에
향으로 먼저 흔적을 남긴다.
개에게 냄새는
자아의 연속성인 동시에
몸의 상태 보고서다.
우리는 종종 말한다.
“개는 암 냄새를 맡는다.”
“병을 알아챈다.”
하지만 더 정확한 표현은 이것이다.
개는 병을 ‘맞히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감지한다.
스트레스가 길어질 때 체취가 미세하게 변하고
염증이나 통증이 있을 때 호흡과 땀의 성분이 달라지며
회복의 국면에 접어들면 냄새의 긴장이 풀어진다
개는 이것을
이름 붙이지 않는다.
다만 자기 자신에게서 어긋남이 생겼다는 사실을 안다.
이 감지는
두려움이 아니라
조율의 시작이다.
변화된 자신의 냄새 앞에서
개가 보이는 행동은 종종 오해된다.
과도한 핥기
보호자에게 밀착
평소보다 잦은 응시
이유 없는 불안
그러나 이것은 문제 행동이 아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이 변했다는 사실을 보호자에게 전달하는 방식이다.
말 대신
행동으로 쓰는 문장이다.
“내가 조금 달라졌어.”
“나를 같이 확인해줄 수 있을까?”
여기서 윤리는 다시 등장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냄새를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해석하는 것이다.
무조건적인 탈취
향으로 덮기
불안을 ‘냄새 문제’로 치부하기
이것들은
개의 몸이 보내는 신호를
지워버리는 행위일 수 있다.
돌봄이란
완벽하게 만들려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함께 알아차리는 능력이다.
개는 냄새로 자신을 인식한다.
그러나 그 인식은
혼자만의 작업이 아니다.
자기 냄새가 바뀌었을 때
곁에 있는 존재가
그 변화를 존중해줄 때,
개는 다시 안정을 되찾는다.
자기 인식은 고립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완성된다.
개에게 보호자는
거울도, 의사도 아니다.
그는
함께 냄새를 읽어주는 존재다.
개는 자신을 안다.
그리고 그 앎은
언제나 관계를 향해 열린 채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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