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당이라는 마라톤대회의 참가상
※ 이 콘텐츠는 창작된 픽션이며 법률·부동산 정보는 참고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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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인물, 단체, 기관과는 무관하며, 법적 효력은 없는 창작 서사임을 명확히 밝힙니다.
‘배당기일 통지서’
마철은 조용히 준비했다.
클리어 파일에 서류를 하나씩 넣었다.
주민등록등본, 초본
신분증 사본 2부
명도확인서
임대차계약서 원본
경매 낙찰자 인감증명서
지갑을 챙겼다. 검은 명품 반지갑.
그 안에는 신분증과 현금 5만 원이 꼬깃하게 들어가 있었다.
마철이 코로나 이후 강의를 다시 시작하며 처음 산 ‘좋은 것’이었다.
버스를 두 번 갈아탔다.
손에 들린 건 클리어파일과 지갑.
한 시간이 흘렀을 즈음 마철의 얼굴이 굳었다.
명품 지갑이 사라졌다.
손이 떨렸다.
마철의 머릿속엔 지갑의 가격이 떠올랐다.
꽤나 어렵게 구한 검은색이었다.
겨우 겨우 구매하며
잠시나마 그의 처참한 상황을 위로해 준 그의 지갑
명품을 산다는 건 그에게
너의 현실은 그렇게 참담하지 않다는 위안을 주는 것 같은
도피처였다.
지갑을 찾기 위해 버스회사에 전화했다.
바로 차고지에 들어온 차
찾아봐도 그의 명품 지갑은 없었다.
그 지갑은 마철의 마지막 명품지갑이 되었다.
“오만 원은 잃어도 돼. 하지만 신분증이 문제야.”
법원 입구
마철은 숨을 고르며 말했다.
"신분증 분실했는데, 사건관계자입니다."
다행히 확인 절차를 거쳐 입장했다.
법정 앞에는 배당표가 줄지어 있었다.
다양한 사건의 배당표 그중 마철은 본능처럼 자신의 사건의 배당표를 찾아냈다.
00 타경 0000 부동산 강매경제 00 타경 0001(중복)
매각대금 12억 5천만 원
배당할 금액 12억 6천만 원
5페이지에 달하는 배당표.
네모난 표로 가득가득한 그 종이의 네모칸 안에는 사람들의 이름과
그들이 받을 배당금이 적혀있었다.
그 네모 세상 안 들어있는 이름
'장마철 배당순위 1 임차인(소액보증금)'
그리고 근저당권자, 임차인까지 3순위까진 보증금 전액을 배당금을 받을 수 있었으나
그 외의 다른 사람들은 배당순위 1 임차인으로
최우선변제금만 받을 수 있었다.
배당이 시작됐다.
60여 명의 사람들이 빼곡하게 있었고 법원 안은 조용했다.
누구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첫 사건.
중년 남성이 일어났다. 남성은 카라티의 단추가 다 채워지지 않은 채 분노가 가득한 표정으로 서있었다.
"배당신청을 못했습니다. 서류가 온 줄도 몰랐습니다! 사느라 바쁜데 그걸 챙길 시간이 어딨 습니까?"
판사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기한 내 배당요구를 안 하셨으면 권리가 없습니다.”
그는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개진 채 욕설 한 마디 남기고 돌아섰다.
조용한 법정.
곧, 마철의 사건번호가 불렸다.
앞줄에서 일어난 사람.
익숙한 얼굴이다.
단톡방에서 전입신고를 못한다고 했던 사회초년생.
중복계약으로 임차권등기가 되어있는 집을 계약한 그 사회초년생이었다.
배당에서 밀린 얼굴.
집행관이 고개를 저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떠났다.
그렇게 몇 명이 이의신청을 했고 바로 법원을 나갔다.
그리고 긴 줄.
이전의 다른 사건들에 비해 엄청 길게 늘어선 줄은
이 사건이 얼마나 많은 이에게 큰 손실을 가져다줬는지 알 수 있었다.
마철은 서류를 제출했다.
“18번, 전입일 XX 년 X월 XX일. 확정일자 동일. 최우선변제금 인정.”
차가운 목소리.
그러나 마철에겐
닫혀있던 문이 ‘딸깍’ 열리는 소리로 들렸다.
"못 돌려받은 남은 보증금은 추심하세요.”
집주인을 가지고 추심할 수 있는 계약서를 돌려받았다.
돌려받은 계약서에는
부기문 당원 00 타경 000호 부동산 임의 경매사건에 기하여 202X.0.00 금 000원이 배당되었음. ㅇㅇ지방법원 법원주사보 ㅇㅇㅇ라고
도장으로 찍혀있었다.
큰돈을 받았지만 더 큰돈을 잃고
법정을 나온 마철
본인 확인을 위한 신분증을 다시 만들어야 했다.
검은색의 자신의 속과 달리
가장 밝은 배경으로 증명사진을 찍었다.
화사한 배경 속
자신도 모르게 억지로 웃고 있었다.
행정복지센터로 바로 가 임시신분증 발급했다.
그리고 경매 00계로 향했다.
법원 안 은행.
최우선변제금 입금 확인.
긴장이 풀렸다.
그는 법원의 로비 소파에 주저앉았다.
머릿속을 스쳐간 원룸의 시간,
단톡방의 이름들.
확정일자와 전입신고,
마철은 이 모든 일이 하나의 마라톤대회처럼 느껴졌다.
배당을 위한 마라톤참가.
순위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선순위인 소수의 3명은 메달을 받았고
후순위인 다수의 누군가는 메달을 받지 못했다.
마철과 많은 사람들은 참가상이 전부였다.
그러나,
참가하지도 못한 사람도 있었다.
전입신고를 못한 세입자처럼.
한 남자가 법정에서 얼굴을 붉히며 떠난 것처럼.
그날의 법정 풍경은 현실감이 없었다.
마철의 머릿속에 당장 오늘의 일이
뿌연 안갯속에 가린 슬로모션처럼 지나갔다.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하나의 연극 같았다.
조용한 무대.
무거운 침묵.
순간의 선택에 따라 달라지는 인생의 무대는
마철에게 참혹하고 냉철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