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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사기 피해자 장마철의 생존일기-2

현관문에 붙은 종이 한 장

by 장마철

현관문에 붙은 종이 한 장




마철은 늘 믿었다.


‘나는 그들과는 다르다.’

압구정에서 자란 동기들,

방학마다 유럽으로 떠나는 친구들,


서울 한복판 경희궁자이 분양권을 부모님이 매수해 준 동기.

개포 래미안 포레스트가 신혼집인 후배


그들과 마철은 다르다고 생각했다.




마철이의 고향은 지방의 한 중소도시였다.

빈부격차가 심한 곳.

아파트 단지 하나만 건너면 세계가 달라지는 도시였다.


어릴 적 마철이는 신축 아파트에 살았다.

단지 내 놀이터, 아이들의 웃음소리

그리고 가끔씩 배달되는 피자.

아동용 의류 브랜드 옷

또래 친구들이 보기엔 마철이네는 ‘잘 사는 집’이었다.

부모님 수입은 그 동네 기준에선 괜찮은 편이었고

늦둥이인 마철이

원하는 장난감과 휴대용 게임기를 별말 없이 사주던 집.


하지만 그 평화로움엔 늘 물 밑의 파장이 있었다.

마철이가 예체능을 하겠다고 했을 때,

방학마다 서울로 올라가 특강을 들었다.

방값 35만원 방학특강 한 번이면 400만 원.

20년 전 물가로 치면 꽤 큰 금액이었다.


아버지는 월급의 많은 돈을 마철이에게 쏟아부었다.

말은 없었다.

‘아빠는 무슨 생각이었을까’

마철이는 지금도 그때를 떠올릴 때마다 막연한 먹먹함이 밀려온다.


그렇게 올라간 서울은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화려한 조명, 늦은 밤에도 환한 불빛,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모두가 달리는 거리.

마철이는 그 도시를 보며 생각했다.


‘아, 이곳이 내가 평생 살아야 할 곳이구나.’

순수하게 정말 그렇게 믿었다.

행복했다.


그러나 그 행복은 조금씩 결이 달랐다.


마철이의 옷에는 열심히 일한 흔적이 묻어 있었지만

서울 친구들의 옷엔 ‘가만히 있어도 채워지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들과 같은 옷을 입기 위해

마철이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따라잡고 싶었다.

겉모습이라도 비슷하다면

어쩌면 같은 세계에 있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격차는 더 분명해졌다.


자신이 ‘열심히’ 사서 입던 옷이

그들이 ‘검소하게’ 입던 옷이었다는 걸 알게 된 순간.

차이와 격차는 전혀 다른 문제라는 걸 깨닫게 된 순간.


입는 옷, 먹는 음식, 사는 집, 타는 차,

그리고 부모의 지원 수준.


그 차이는 20대를 넘어서며

기하급수적으로 벌어졌다.

마치 뒤집힌 시계의 태엽처럼.


그때 마철이는 생각했다.

‘아, 나는 그들과 다르다.’


동경하고, 따라가고 싶었지만,

결국 신포도처럼 스스로를 위로하며 흘려보냈다.


그리고 그렇게

‘나는 그들과는 다르다’는 믿음 하나를 붙잡고

서울살이를 견뎌냈다.



“난 그래도 나 자신에게 만족해. 월세도 아까워서 전세로 산 거야.”

그 믿음은 틀리지 않았다.

다만 완전하지 않았다.


첫 월급은 마법 같았다.

계좌에 처음으로 7자리 숫자가 찍히고

번 돈으로 누군가에게 마음 편히 밥을 산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다.


“전세니까 월세도 안 나가고 좋잖아?”


믿음은 소비로 이어졌다.

8평 남짓 원룸에 살던 마철은

가끔 떠나던 여행은 계절마다 떠나는 루틴이 되었고

망설이던 명품은 자기 보상이라는 이름으로 옷장에 들어왔다.

“다들 하잖아. 이 정도는 나도 괜찮아.”


그는 몰랐다.

소비가 문제가 아니었다.

애초에 그 믿음의 전제부터 틀렸다는 것을.



해외여행에서 돌아온 2월의 어느 월요일

공항을 나서자 따뜻한 나라에서의 열기는 이미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고 겨울의 끝자락이 피부를 스치며 낯선 현실을 깨웠다.


그러나 진짜 낯설었던 건 공기보다도 현관문 앞의 그 종이 한 장이었다.


"전세계약이 끝나가는데 집주인과 연락이 되지 않습니다. 계약자분들 아래 번호로 연락 주세요."

종이는 A4크기였고 테이프가 흐트러진 채 붙어 있었다.

등줄기를 타고 한기가 올라왔다.


”혹시 거기 사는 분이세요? “


처음 보는 남자의 얼굴.

그 뒤로 또 다를 누군가가 마철을 쳐다봤다.


”요즘 집주인이 연락이 전혀 안 돼서요.... 집을 빼야 하는데 곤란하네요. “


마철이는 온몸이 굳었다.


불길한 예감은 현실의 모습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마철이는 그때 계약을 맺었던 부동산으로 향했다.




마철의 생존 팁

전세는 단순한 주거 수단이 아니라

내 돈을 남에게 빌려주고 집을 빌리는 복잡한 계약 구조입니다.

‘안정된 자산’이라기보다

수많은 이해관계가 얽힌 법적 거래라는 점을 기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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