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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사기 피해자 장마철의 생존일기-1

계약서에 스며든 비

by 장마철

※ 이 콘텐츠는 창작된 픽션이며 법률·부동산 정보는 참고용입니다.

작품에 포함된 내용은 실제와 다를 수 있으며 정확한 판단은 반드시 전문가의 조언을 통해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특정 인물, 단체, 기관과는 무관하며, 법적 효력은 없는 창작 서사임을 명확히 밝힙니다.



계약서에 스며든 비


“이 건물 시세가 19억이에요.”

“전세 물건은 얼마 없어요. 좋은 기회죠.”

“보증금은 4억 정도 잡혀 있다네요.”

“한 층에 전세가 1~2세대 밖에 안 두는 집이에요.”

사장님의 말은 단호했고 어딘가 익숙했다.



그 말에 속지 않았다면

아니 그 말만 믿지 않았다면


마철이의 인생은 조금 덜 젖었을지도 모른다.


그 해 초여름 서울의 대학원을 막 졸업한 마철은 프리랜서 강의를 막 시작한 참이었다. 꾸준한 수입은 없었지만 기회는 많았다. 단기 계약이 이어졌고 마철은 언젠가

자리가 생길 거라 믿었다.


서울에 집을 구해볼까 했지만

서울은 비쌌고 부모님의 조언은 늘 같았다.


“빚내지 마라.

처음엔 돈 모을 수 있는 곳에서 살아야지.

집은 나중에 형편에 맞춰 사는 거야.”


부모님의 말은 평생 들어온 신념이었다.

대출은 죄악처럼 여겨졌고

마철 역시 그 말이 틀리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마철은 경기도 외곽의 한 동네로

발걸음을 옮겼다.

서울까지 왕복 세 시간.

전세로 살며 돈을 모은다면

언젠간 중계동 24평 아파트를 살 수 있겠지.

인터넷으로 부동산 매물을 구경하며

중계동 매수는 3억이면 충분하다고 그는 생각했다.


몇 주 동안 전세를 계약하기 위해

부동산을 전전하던 마철이는

마음에 드는 집이 나타나면 그날 안에 사라지는

전세 시장의 속도에 조급함을 느꼈다.


그러던 어느 날 부동산 사장님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인상이 좋고 마철이 어머니 또래처럼

느껴지는 사장님이었다.

젊은 부동산 중개업자와는 다를 것 같아

마철이가 명함을 놓고 간 곳이다.


“좋은 매물 나왔어요. 오늘 오실 수 있어요?”


방은 괜찮았다. 햇살도 들었고

원룸이지만 아늑하고 마음에 들었다.

부동산 사장님은 말을 이어갔다.


“여기 1 층당 전세는 1~2세대밖에 없어요.

전세 자체가 잘 안 나오는 건물이에요.

정말 좋은 기회죠~”


그리고는 시세보다 싸고 보증금도 안정적이며

건물도 믿을 만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


마철이는 조심스러운 성격이었다.


믿고 계약하기엔 뭔가 찜찜했다.

오랜 연인인 우산이 계약을 앞 둔 마철에게 다양한

유튜브 영상을 보낸다.

나온지 얼마 안된 영상.


‘절대로 전세 살지 마라.’


‘뭐야 장우산 얘는 월세에 살라는거야 뭐야.

내가 그동안 얼마나 고생한지 알면서.‘


보낸 영상을 대충 보고 넘겨버린다.


다른 유튜브 영상도 찾아봤지만

조회수를 높이려 만든 정보들 일거라며 꺼림칙하게 넘겼다.


‘그 사람들이 뭘 알까 제목은 뭐 저렇게 자극적이야.

조회수 뽑아 먹으려고 하는 사람들뿐인데..’


그 순간 어린 시절 친구 순자의 어머니가 떠올랐다.

부동산중개업을 오래 해온 분이었다.

마철이는 등기부등본을 찍어 그녀에게 보냈다.


“문제없어 보이는데?”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그 한마디에 마음을 놓았다.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 실수였다.






계약 당일

이상한 점은 분명히 있었다.

등기부등본을 자세히 떼어보니

압류 기록과 소멸 기록이 같이 찍혀 있었다.

부동산 사장님이 준

등기부 등본과 다른 것이었다.


부동산에 마철이는 물어봤다.

“이거... 집주인이 예전에 세금이랑

이자를 못 내서 압류당한 거 아닌가요?”


마철이의 질문에 부동산 사장님은 웃으며 말했다.

“잠깐 그때 자금이 꼬였겠죠.

집주인은 원래 건물이 많고 부자야.

예전에 이 근방에서 부동산 중개업도 했고

지금은 건물관리사예요.

본인 건물 관리하며 있는 거지 뭐.

부동산 쪽은 잘 아는 사람이니까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원래 사업하면 그렇잖아.”


어린 마철이에게 부동산 사장님은

반말을 섞어가며 말을 빠르게 이어갔다.

그 말은 너무 매끄러웠고 익숙하게 들렸다.


건물 시세는 19억이라고 했지만

집주인의 얼굴은 계약 모든 과정에

단 한 번도 보이지 않았다.


계약서의 ‘비고’ 란에는 볼펜으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보증금 약 4억 있음-구두 확인.’


분명 대출이 9억 정도에 보증금 4억? 이상하다...

대출이 너무 많은 것 같다.


보증금도 말이 안 되게 높다.

보증금이 4억이라고?

그럼 19억 건물에 빚이 13억 아닌가


마철이는 다시 물었다.

“사장님이 지난번에 말씀하신 것처럼 건물 한 층에 전세가 1~2채 밖에 없는 거 맞죠?? “


그때 사장님이 단언하듯 말했다.

”소액 보증금은 최우선변제금으로 보호된다. “

라고 단언하며 보호받을 수 있는 금액을 알려줬다.

“현재 201x년 기준으로 봐요 다 받을 수 있지?

설령 문제가 생겨도 손해 볼 일은 없어요. “


마철이는 전문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사실 ‘이 선택이 맞다.’는 확신을

타인에게 받고 싶었던 마음의 고개였다.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통장 잔고의 대부분을 넘겼다.

이상한 건지 나만 그런 건지

그땐 판단이 잘 안 섰다



다음 날 전입신고와 확정일자를 받으러

동사무소에 갔다.


꺼림칙한 부분에 부동산 거래는 원래 이런 걸까

라는 생각이 들며 잠을 못 이뤘다.

전입신고 확정일자를 받고

한번 더 번호표를 뽑았다.

마철이는 전 날 불안감에 부동산 커뮤니티에서 전세계약 시 주의사항에 대해 찾아봤다.

‘전입세대 열람원’이라는 서류가 있다는 걸

부동산 커뮤니티에서 봤다.

그 문서를 발급받으면 건물 전체의 보증금 현황을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

근데 집주인이 잘 안 준다고 하니 부탁해서 이걸 요청을 꼭 하라는 글이 있었다.


동사무소 주무관에게 조심스레 말했다.


”전입세대 열람원 발급해 주세요."


그러나 돌아온 건 무관심한 대답뿐이었다.


”그런 서류는 없는데요 “


"별지 제15호라고 하던데요. 그런 서류가 없나요?"


”그게 뭐예요? “


"아... 여기.... 카페 글을 보면..."


”개인정보라서 안 됩니다. “



두 번, 세 번 요청했지만 결과는 같았다.


'내가 너무 유난인가?'


마철이는 자리를 떴다. 다시는 그 문서를 찾지 않았다.


마음 한구석이 계속해서 찝찝했지만 모든 절차는 끝난 듯 보였다.

그리고 몇 달 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아니 마철이의 삶 속으로

전세사기의 장마가 스며들고 있었다.





- 마철의 생존 팁: '전세 계약 전 꼭 확인할 것들'

✅ 등기부등본 (과거 소유이력 포함)

✅ 전입세대 열람원 (별지 제15호)

✅ 건축물대장 (주용도/불법 건축물 여부 확인)

✅ 실거래가 조회 (국토부, 부동산플랫폼 등 활용)

✅ 임대인의 국세·지방세 체납 확인서 (계약 전 요구 가능)

✅ 계약 상대가 본인인지 대리인인지, 신분 확인 필수

✅ 보증금 입금은 반드시 은행권 대출 + 본인 명의 이체내역 보존


부동산 말만 믿지 마세요.

‘좋은 기회’라는 말엔 반드시 ‘왜’라고 질문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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