씻는 일이 싫어졌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씻는 걸 굉장히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벌거벗은 채 화장실에 들어가는 순간 다른 곳으로 이동하듯이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머리가 녹아 생각이 내 몸을 타고 흘러내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오늘도 역시 그랬다.
그러다가 문득 깨달았다.
‘내 불행의 시작은 허황된 꿈으로부터 시작된 것은 아닐까?
음. 그렇다면 나는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지?’
어렸을 때부터 차근차근 돌아가야 할까.
초등학교 시절의 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내가 뭐라도 된 줄 알았고 될 줄 알았던 것 같다.
내가 하고 싶으면 뭐든 할 수 있다고, 꼭 해야만 할 거라고 생각했던 거 같은데.
보이스카우트, 걸스카우트 같은 그런 것들이 학교에서 생겨났을 때.
나는 하고 싶어서 엄마에게 말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거절이었다.
그때부터였을까.
아니면 더 어렸을 때로 돌아가서
미술학원에 다니겠다고 붓을 사 갔던 날일까.
뭘 사 오라는 말이 없어서 넓적한 붓을 내밀던 어린 나에게 선생님은
“기본도 안된 너는 미술을 할 필요가 없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일까?
아니면 중학교 때 사귄 친구들이 나의 문제였던 걸까.
고등학교 때 학교를 잘못 선택한 나의 문제였던 걸까.
혹은 졸업 후 대학 대신 취업을 택했던 나의 문제였던 걸까.
아니면 지금, 작가가 되고 싶다며 글을 쓰고 있는 이 꿈.
이 허황된 꿈 그 자체가 문제일까.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도무지 답을 알 수 없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