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모르는 나를 찾는 연습
난 장녀다.
가족들이 느끼기엔. 어쩌면 장녀보다는 실없는 나의 행동에 ‘막내에 가까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고는 한다.
하지만 이런 내 마음 한구석에도 항상 불편한 마음이 뒤따라왔다.
우리 집엔 아들도 없고 딸만 둘인데.
가끔 무의식적으로 ‘내가 아들 역할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란
생각이 무의식처럼 붙어 다녔다.
집에서 나는 항상 밝고, 목소리 크고, 장난을 많이 치는 그런 사람.
나의 어두운 모습을 보이면 안 될 거 같았고, 이 집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웃고 떠들며
장난쳐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우울하거나 쳐지는 날엔 더더욱 전화도 받기 싫고, 집에 가는 것도 멀리했다.
그래야 나도 엄마도 불편하지 않으니까. 걱정 끼치고 싶지 않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난 왜 이렇게 살아야 하지?’라는 질문이 올라왔다.
멍청하게 웃고 장난치는 내가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된 순간이었다.
가끔은 “이 모두가 가짜야!”라고 소리치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그러면 엄마는 어떡하나.
엄마가 속상해하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을까? 나까지 짐이 되는 건 아닐까?
그런 걱정들로 몇 년을 병원에 다니는 것도, 약 먹는 것도 말하지 못했다.
그저 난 모두가 행복하고 나만 숨기면 아무 일도 없을 거란 생각에 사로잡혀 살고 있었다.
나도 나를 돌보지 못하는데 누구한테 말해. 말을 한다고 달라질 게 있나?라는 생각으로.
동생과 나는 4살 차이. 남녀로 만났으면 궁합도 안 본다는 4살 차이지만,
가족 안에서 4살 차이는 애매하면서 은근히 차이가 크게 난다.
여동생이지만, 그녀는 누구보다 자기 일을 열심히 하고 있었다.
속은 어떨지 모르지만.. 나에겐 작지만 단단해 보였다.
그 작은 손으로 일을 하면서 거칠어진 손은 개의치 않게 여겼다.
자리를 잡기 위해 계속 움직이면서 끊이지 않고 일을 하는 모습도 대단해 보였다.
엄마가 싫어하는 염색도 ‘내가 하고 싶은데 왜?’라며 했다.
나는 엄마가 싫어하는 일은 웬만하면 하지 않으려 했다.
그게 신경을 덜 쓰이게 하는 방법이니까.
그녀와 비교하면
나는 하는 것 없이 늘 고민만 쌓아놓는 사람이었다.
일단 엄마가 싫어하는 건 최대한 하지 않는 방식으로.
신경을 덜 쓰이게 하고 싶었다.
결혼하고 나서 억눌려있던 욕구가 폭발했다.
엄마와 떨어져 살게 되자, 1년 동안 미친 듯이 야식을 시켜 먹어댔고, 살이 10kg가 쪘다.
그러다가 다시 나는 또 아파졌고 약을 먹으면서 10Kg가 더 쪘다.
거울 앞에 선 나는 낯설었다.
살이 많이 불고 지친 얼굴 속에, 그동안 꼭꼭 숨겨두었던 내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밝은 척’도, ‘장난치는 나’도 아닌, 그저 힘들고 지쳐있는 진짜 나.
나는 그 모습을 마주하는 게 두려우면서도, 동시에 놓치고 싶지 않았다.
처음으로, 아무도 아닌 나 자신에게 시간을 주었다.
말하지 않아도 괜찮고, 웃지 않아도 괜찮고, 그냥 존재하는 나 자신을 느끼는 시간.
작은 선택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나를 위한 작은 규칙을 정했다.
‘오늘부터 무조건 나를 먼저 생각하기.’
그렇게 조금씩, 나는 숨 쉴 공간을 되찾았다.
다른 사람이 원하는 내가 아니라, 나 자신이 원하는 내가 되어가는 순간이었다.
무겁게 억눌려있던 마음이 조금씩 풀리면서,
나는 비로소 내가 누구인지 조금 더 알게 되었다.
아프면 쉬고,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해보았다.
누군가의 기대나 시선에 맞추기보다, 나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하루를 채우는 일이 생소하면서도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가끔은 실수도 하고, 예전처럼 걱정과 후회가 밀려올 때도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누구의 딸도, 누구의 와이프도 아닌 나 자신이다’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나는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솔직해졌다.
그 솔직함 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자유를 느낄 수 있었다.
매일 작은 선택을 반복하며, 나는 나만의 삶의 리듬을 찾아갔다.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웃음이 아니라, 스스로를 위해 웃을 수 있는 시간.
누군가를 만족시키기 위해 움직이는 내가 아니라, 나를 만족시키기 위해 움직이는 나.
그렇게 나는, 오랜 시간 숨겨왔던 진짜 나와 조금씩, 그러나 분명히 만나고 있었다.
그래서 요즘은 그나마 행복하다.
하늘을 바라보는 시간이 많아졌고, 사진도 찍으며
주위를 여유롭게 탐색할 수 있는 작은 여유도 생겼다.
이제 나는 예전처럼 숨지 않고, 조금은 담담하게 나 자신으로,
있는 그대로 표현하며 살아갈 수 있게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