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 한자어와 일본식 한자어: 일본식 한자어의 의미 분화 26
한국어에서 ‘보상하다’, ‘배상하다’, ‘변상하다’, ‘변제하다’는 모두 ‘갚다’라는 뜻을 가진 한자어이다. 그런데 한국어에서 이와 관련해 쓰이는 한자어 보상1(報償), 보상2(補償), 배상(賠償), 변상〚辨償〛, 변제〚辨濟〛는 서로 다른 역사적 배경과 뉘앙스를 지닌다. 이 단어들은 모두 ‘갚는 행위’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그 목적이 정당한 대가의 지급인지, 손해에 대한 책임의 환급인지, 잘못을 바로잡는 경제적 조치인지에 따라 사용 범위와 문맥적 쓰임이 분명하게 달라진다.
예컨대 ‘보상1(報償)’은 ‘희생이나 노력에 대한 대가’라는 의미로 쓰이고, ‘보상2(補償)’는 ‘손해나 피해를 보충하거나 메우는, 보전(補塡)의 의미가 강한 반면, ‘배상’은 손해의 원인을 제공한 자가 법적 책임을 지는 성격을 띤다. ‘변상’은 실수나 과실에 의한 손실 보전(補塡) 행위를 가리키며, ‘변제’는 채무를 갚아 의무를 다하는 행위를 지칭한다. 겉으로는 비슷해 보이는 이 용어들의 쓰임을 명확히 구분하는 일은 일상생활뿐만 아니라 법률을 이해할 때도 매우 중요하다.
보상2(補償)(-하다)는 한국의 고문헌에서도 쓰였지만, ‘어떤 것을 보충하거나 메우다, 보전하다(補塡―)’의 뜻으로 쓰였고, ‘법률·경제 용어’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일본의 근대(1900년대 전후) 이후이다. 일본이 독일법(BGB)의 Entschädigung(보충·보상) 개념을 보상(補償)이라고 번역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토지 보상(土地補償); 토지 수용에 대해 보상하다. 피해 보상(被害補償); 피해를 보상하다”처럼 ‘남에게 끼친 손해를 갚는 것’, 또는 법률적 의미로 ‘국가의 적법한 행위로 끼친 손해를 갚다; 보전하다(補塡―: 손해나 부족한 것을 보충하다)’라는 비슷한 의미로 쓰인다.
배상(賠償)은 본래 중국 송·원·명·청의 법률 문서나 행정 문서에도 쓰인 말이다. “令賠償其直”《대명률(大明律)》(1367)에서 ‘直(치)’는 물건의 가치·가격·값[時價]을 의미하므로, ‘그 가액을 배상하도록 명하다’의 뜻이다. 또 물건 파손·손실 시 “若故毀折器物者,令其賠償(고의로 기물을 파손한 자는 배상하게 한다)”, “令賠償其物(그 물건을 배상하게 하라)”, “毀損官物者,依例賠償(관청 재산을 훼손한 자는 규례에 따라 배상한다)”, “毀人器物,倍直賠償(남의 물건을 파괴하면 가격의 두 배를 배상한다)”처럼 도난·손괴 사건을 민사적으로 처분할 때 쓰던 말이다.
이처럼 배상(賠償)은 중국의 전통적 한자어인 것은 분명하지만 중국에서는 “(물건값/피해를) 보상하다/변상하다” 정도의 뜻으로 쓰던 말이다. 하지만 근대 이후, 청나라 말~민국 초에 일본의 법률 용어가 중국에 수용되면서 근대적 법률 개념으로 강화되어 쓰이기 시작했다. 실제로 1912년 《大清新刑律》(청 말기의 서구식 법전)에 현대적 의미의 ‘損害賠償(손해 배상)’ 항목이 등장하였고, 이후 중화민국(1912~)을 거쳐 현대 중국어(중화인민공화국) 민법전까지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즉 불법 행위로 발생한 손해에 대해 법적 책임을 지고 갚게 하는 것(법률적·공식적 보상)으로 지금은 ‘국가 배상(國家賠償), 전쟁 배상(戰爭賠償), 손해 배상(損害賠償), 배상 책임(賠償責任)’처럼 쓰인다.
한국어에서 변상〚辨償〛은 《경국대전》이나 《조선왕조실록》 등에서 매우 자주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조선 시대부터 행정 용어·일상어로 널리 쓰였음을 알 수 있다. “잃어버린 소를 변상하다”, “파손한 물건을 변상하게 하다”처럼 ‘실수·과실로 인해 생긴 손해를 갚다/ 물어주다’의 뜻이다. 변상〚辨償〛은 변제〚辨濟〛처럼 현대 중국어에서는 없어진 말이지만, 한국에서는 ‘손해를 보상하는 것’이라는 일상적 의미로 계속 쓰이고 있다.
변상〚辨償〛은 한국어와 일본어에서만 쓰는 말이다. 조선 시대 법률·문서에서 변(辨, 분별할 변)은 ‘辨濟(변제), 辨償(변상)’이라는 형태로 쓰였는데, 일본의 근세 문어에 弁償(べんしょう, 변상)(이)라는 말이 쓰인 것으로 보아 조선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말인 듯하다. 변상〚辨償〛(-하다)의 변(辨, 분별할 변)은 한국어에서 ‘분별하다/분별하여 처리하다’에서 ‘책임을 따지다/책임을 따져 갚게 하다’라는 뜻으로 확장되어 ‘償(갚을 상)/濟(건널/구제할/결제할 제)와 결합되어 쓰이지만, 중국어에서 辨[biàn]은 ‘가리다, 분별하다(辨別―)’의 뜻으로만 쓰고, 償(상)은 ‘갚다, 배상하다(償還·賠償)’ 계열로만 쓰기 때문에 중국어에서는 쓰지 않는 말이다.
한편, 변제〚辨濟〛(-하다)는 변상〚辨償〛과 비슷한 뜻으로 쓰이지만, 일반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진 빚을 갚다’라는 뜻으로 그 폭이 좁다. 변제〚辨濟〛도 현대 중국어에서는 쓰지 않는 말이지만 전통적 한자어이다. 한국 고문헌에서 “其未辨濟者,令所在官督責之(아직 변제하지 않은 자는 해당 고을 관원이 독촉하게 하라; 빚을 아직 갚지 않았다는 뜻)”《세종실록 18년(1436)》, “仍令責其所負,以期辨濟”(그가 진 것을 갚도록 독촉하여 변제하게 하라)《성종실록 9년(1478)》처럼 쓰인 전통적 한자어이다. 그런데 지금은 중국에서는 쓰지 않고 한국과 일본에서만 쓰고 있는 말이어서, 일본식 한자어(일본식 신조어, 和製漢語)가 아니지만, 한일 공용 한자어이다.
배상(賠償)은 본래는 중국의 전통적 한자어지만, 근대 이후 일본 법률 번역의 영향으로 한국과 중국에서도 법률 용어로 의미가 강화되어 쓰이고 있다. 보상(補償) 역시 한국 고전에서도 나오는 말이지만 경제·법률 용어로 쓰인 것은 일본의 근대 이후이다.
보상(報償)과 배상(賠償)과 변상〚辨償〛의 구별
합법적인 행위로 인한 손실에 대한 것은 보상(補償)이고, 불법 행위나 과실 책임에 대해서는 배상(賠償)을, 부주의·실수 등으로 파손된 물건이나 공공물 등의 원상회복을 위해 손실이나 손해에 대해 금전으로 갚는 것은 변상〚辨償〛이라고 구별한다. 그래서 “피해 보상(被害補償); 피해를 보상하다”, “손해 배상(損害賠償); 손해를 배상하다”, “손실·물건값을 변상하다〚辨償―〛”처럼 구별하여 쓴다.
중국어와 일본어에서는 어떻게 쓸까?
중국어에서 补偿(보상)은 “补偿损失。(손실을 보상하다)”처럼 쓰고, 赔偿(배상)은 “损害赔偿; 赔偿损失。(손해 배상; 손해를 배상하다)”처럼 쓰지만, 한국어와 일본어에서 쓰는 변상〚辨償〛, 변제〚辨濟〛는 쓰지 않고 상황에 따라 赔偿(배상), 抵偿; 还债(‘빚을 갚다’라는 중국어)를 쓴다.
일본어에서도 補償(보상)은 “損失(そんしつ)を全額(ぜんがく)補償(ほしょう)してくれた。(손실을 전액 보상해 주었다)”처럼 쓰고, 賠償(ばいしょう, 배상)은 한국어와 마찬가지로 법적 책임에 따른 손해 배상(損害賠償), 국가 배상(国家賠償) 등의 법률 용어로 쓰인다. 弁償(べんしょう, 변상)은 일상적인 물건·비용 등 ‘물건값·소액 변상(少額辨償); 소액을 변상하다’의 뜻으로 쓰여 ‘壊した物を弁償する。(망가진 물건을 변상하다)처럼 주로 일상어로 쓰이고, 변제〚辨濟〛도 한국어와 마찬가지로 “債務(さいむ)を弁済する。(채무를 변제하다)”처럼 쓰인다.
보상(補償)(-하다)[보ː‧] n. ① 남에게 끼친 손해를 갚음. ②(법률) 국가의 적법한 행위로 끼친 손해를 갚음.
㊥ 补偿[bǔcháng] ㊐ 補償(ほしょう); 償(つぐな)い.
예) 토지 보상(土地補償); 토지 수용에 대해 보상하다. 피해 보상(被害補償); 피해를 보상하다.
cf) <참> 보상(報償)(-하다)[보ː‧] n. ① 어떤 것에 대한 대가로 갚음. ② (남에게 진) 빚을 갚음. ㊥ 报偿[bàocháng] ㊐ 報償(ほうしょう). 예) 보상을 받다. 특별한 희생에는 특별한 보상이 있어야 한다. 고생한 일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 이루어지고 있는가? 국채 보상 운동(國債報償運動).
배상2(賠償)(-하다) (법률) n. 남에게 입힌 손해를 물어 줌.
㊥ 赔偿[péicháng] ㊐ 賠償(ばいしょう), Ⓔ compensation.
예) 손해 배상(損害賠償); 손해를 배상하다. 损害赔偿[sǔnhài péicháng]; 赔偿损失[péicháng sǔnshī], ㊐ 損害(そんがい)賠償(ばいしょう), compensation for damage. 배상을 요구하다. 배상금(賠償金) 赔偿金[péichángjīn]; 赔款[péikuǎn], ㊐ 賠償金(ばいしょうきん). <참> 변상금〔辨償金〕, (일) 弁償金(べんしょうきん); 弁償金額(べんしょうきんがく). 예) 변상금을 지불하다. 배상 책임(賠償責任)[‥채김] 赔偿责任[péicháng zérèn], ㊐ 賠償責任(ばいしょうせきにん).
배상하다(赔償―)(-에게 -을/로) ~배상하여/배상해 (법률) 赔偿[péicháng] ex) 손해를 배상하다. 赔偿损失。péicháng sǔnshī., ㊐ 損害(そんがい)を賠償する。 cf) ㊐ 賠償(ばいしょう)する. =물다2; 물어내다; 물어주다; 변상하다〔辨償―〕
변상〚辨償〛(-하다) [변ː‧] (경제) (부주의·실수 등으로 파손된 물건값 등) 손해를 돈으로 갚음.
㊥ 赔偿[péicháng] ㊐ 弁償(べんしょう).
예) 손해 변상(損害辨償); 손해를 변상하다.
변상하다〚辨償+ _하다〛(-을) [변ː…]~변상하여/변상해 vt. 还债[huán//zhài] ; 赔偿[péicháng] 예) 손해를 변상하다. cf) ㊐ 弁償(べんしょう)する. (물건값을) 물어주다. <참> 배상하다(賠償―), ㊐ 賠償(ばいしょう)する.
변제〚辨濟〛(-하다) [변ː‧] n. 남에게 빌린 돈을 갚음. 또는 빚을 갚음. ≒상환(償還)(-하다), ㊐ 償還(しょうかん).
㊥ 偿还[chánghuán], 抵偿[dǐcháng] ; 还债[huánzhài] ㊐ 弁済(べんさい).
예) 채무 변제(債務辨濟); 채무를 변제하다. 抵偿债务。dĭcháng zhàiwù. ㊐ 債務(さいむ)を弁済す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