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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서도 숨바꼭질하는 사람

by 재스비아

아무렇게나 의식의 흐름대로 내뱉은 글을 쓰긴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날 것의 감정과 나에 대한 정보를 무차별적으로 쓰게 되진 않는다. 물론, 가진 두뇌의 한계로 완벽한 방어는 못하지만, 뭐든 방어하고 싶은 쫄보의 마음을 달래주어야 하기 때문에 매사에 조심하려고 노력 중이다.

과감하게 본인들의 이야기를 흘려보내는 글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존경심이 든다. 하지만 감명받은 마음과 뭐든 감추고 싶은 본능은 별개인 것 같다. 무언가 확고한 철학이 있는 것도 아니고 꼭 의식적으로만 일정 정보를 제하고 글을 쓰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결과물은 그렇게 나오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물론 글과 달리 감정은 또 못 감추는 편(?), 안 감추는 편(?)이라서 밖에선 차라리 침묵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 오직 엄마 앞에서만 엄청난 수다쟁이가 되는 오래된 나만의 전통을 제외하곤 밖에선 무조건 얌전한 척하는 게 특기이다.
(특별히 엄마나 내가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을 빼고, 평상시 내 이야기를 제일 잘 들어주는 사람은 역시 엄마뿐이란 말이야! 엄마 고마워ㅎㅎ.)

이마저도 지라르드 풍자크씨의 정신적 대를 열심히 이어오고 있는 나에겐 쉬운 일은 아니지만 어쨌든 노력은 하고 있다. 뭐든 아는 게 1도 없는 게 나의 기본적인 상태이기 때문에 입이라도 좀 다물고 있으면 그나마 멀쩡해 보이기 때문이다.
상당히 수동적인 인간으로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또 그건 아니고 반... 반?.. 나도 나의 정체성의 갈피를 잘 못 잡겠다.

길을 잠깐 또 잃은 헛소리에서 돌아와 글의 시작을 알린 헛소리를 하자면, 뭐였지?
아, 그래 나는 글에서도 숨바꼭질하듯 개인적인 이야기를 꼭꼭 감추고만 싶어진다. 나와 주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포함해 특정되는 내용을 쓰기가 싫다. 사람에 대한 묘사 외에 특정 사건들, 이를테면 내가 자주 언급했던 분노의 감정과 관련된 일들에 관해서도 말이다. 이러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진짜 쫄보라서 항상 두려움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아래 예시와 같은 현실적인 두려움을 포함해서 말이다.

- 본인 이야기인 줄 알고 연락이 오면 어떻게 하지?
- 앞으로 얼굴을 어떻게 마주하지?
- 내 글이 마음에 안 들어서 모르는 사람들에게 비난받으면 어떻게 하지?
- 명예훼손이라고 법적철자를 밟게 되면 어쩌지?

- 앞으로 취업도 못하고 먹고 살길이 막막해지면 어쩌지?

사실 내 인생엔 명예훼손이 오갈 만큼의 사건은 없고, 주변인이라고 할 만한 인적네트워크도 없고, 모르는 사람들에게 받은 일반적인 댓글도 거의 없다시피 하다.

(감동실화)


저런 나름의 근거 있는(?) 이유뿐만 아니라 사실은 그냥 근거 없는 두려움도 큰데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 삶을 위태롭게 지탱하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겠지?
무슨 이유에서든 술래도 없는 혼자만의 재미없는 숨바꼭질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과감한 글도 많이 많이 쓸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

정말 걱정벌레가 뇌를 장악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요즘처럼 맑은 하늘의 햇빛에 타서 싹 퇴치 되어 버렸으면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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