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함은 이길 수 있는데
오늘도 잠깐 다녀간 공황장애(추정)의 흔적을 지우고자 글을 작성한다.
연차로만 따지자면 사회에 발 디딘 지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인생 망한 것 같아 망한 대로 흘러가게 내버려 둔 죗값은 사회초년부터 지금까지 잘 받고 있다.
이력이 시궁창 같은 내가 갈만한 회사란 없었고, 스스로도 조금 좋아 보이는 회사엔 도전해 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소셜미디어에서 흔히 우스갯소리로 거론되는 ㅈ소기업스러운 곳들만 골라다니다 심적 괴로움을 느끼며 이리저리 옮겨 다녔고, 여전히 현재진행 중이다.
나이가 깡패라는 말이 있듯이 나이를 무기 삼아 조금 무리해서라도 도전해보았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남지만, 막상 그 시절로 돌아가면 같은 행로를 걸을 것 같다. 본인이 가지고 있는 두려움의 벽을 넘기가 생각처럼 수월하지 않은 탓이다.
"소리 지르는 니가 챔피언"이라고 했던가 지들이 챔피언인 줄 알고 생신입에게도 쓸데없이 큰 소리를 내던 상사들과 첫 입사일에 입사자 앞에서 대표욕을 쉬지 않고 하더니 막상 대표 앞에서 천사처럼 웃던 여시 같은 상사들을 피해 옮기고 옮겼지만 아직도 멀었다. 챔피언은 무슨 챙피한 줄 알아야지.
그곳 중 그나마 정상이라고 생각되는 한 회사에서 있었던 일화가 생각이 나는데, 그곳의 어떤 분은 "받는 임금의 5배 이상의 일을 하려는 마음으로 업무에 임해야 한다"라고 했고,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너무 배려하려는 태도는 정신병원에 가봐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당시 대화를 정확하게 옮겼는진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쨌든 키워드는 분명히 넣었다.
아마 일이 너무 많고, 사람 상대가 힘들다는 말을 꺼내며 면담을 하다가 생긴 일화일 것이다.
그분은 나름대로 사회초년생에게 진심으로 조언을 해주셨던 것 같다. 일을 주는 대로 미친 듯이 해냈던 나를 좋게 보시긴 하셨던 것 같으니까, 결국 발병하고 거기서도 버티진 못했지만.
기억에 미화가 일어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여전히 저 회사나 그분에 대한 마음이 나쁘진 않다. 하지만 저 대화에 대해선 몇 살 더 나이를 먹고 보니 다시 생각하게 된 것 같다.
병원을 가보라는 소리엔 조금 충격을 먹었지만,
사회경험이 부족하고, 남 눈치를 많이보고, 자존감이 지금보다 훨씬 더 바닥을 치던 때라 전적으로 그 말에 동의했었다.
이제는 저런 소리를 듣고 잠자코 있진 않을 것이다.
[저는 주는 만큼만 일할 거고요, 배려와 친절은 제 장점이지 정신병원 갈 일이 아니에요.
지금은 다른 일로 가게 되었습니다만.]
당시에도 나의 문제점에 대해 피드백을 받고자 주변 다른 사람들에게 말을 옮겼지만, 그때 받은 반응을 살피면, 저 말을 들을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지금보단 지나친 배려와 희생하려는 태도를 가지고 있긴 했었던 것 같지만 싫다는 사람에게 억지로 배려해 준 건 아니었고, 그런 비굴한 종류의 사회생활의 결과가 썩 나쁘지만도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나이 많은 어르신일 경우 그러한 배려 덕분에 나름대로 예쁨 받았다.
물론 지적당한 부분의 초점을 내가 잘못 기억하고 있거나, 실제로 남에게 비친 내가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 이후, 다른 곳에서의 회사생활을 하면서 나름대로 남에게 신경 쓰지 않는 연습을 하는 데는 저 말이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눈칫밥 먹기 톱클래스 인간이 갑자기 멍썅마이웨이 인생을 살게 되는 건 쉽지 않다. 하지만 연습에 의한 반응과 내재된 분노가 자동 표출되는 덕분에 이제 나도 누군가에겐 댕싸가지 없는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엌저라거여!(눈을 아래로 깔며..ㅎㄷㄷ 치켜뜨긴 어렵죠.)
그러나 싸가지가 커졌다고 정신적인 충격이 없는 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직장에서 스트레스 상황을 겪거나 수많은 인파들이 몰린 장소에 가면 식은땀이 나고 숨이 막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특히 매일 출퇴근을 함께하는 버스, 지하철만 가도 이러는 걸 보면 빨리 극복해 내야 하긴 할 것 같다.
("두통, 식은땀, 숨 막히는 듯한 느낌, 어지러움, 공포감, 현실감각 사라진 느낌" 공황장애증상 맞나요?)
나도 안다. 무슨 일이든 자리 잡고 성공하려면 기를 쓰고 버텨야 한다는 것을. 하지만 스트레스를 받으면 바로 몸에 나타나는 증상들을 나보고 어쩌란 말이야.
누군가 정신건강의학과에 가서 치료를 받아보라고 했다. 그리고 스스로도 가야 할 것 같다고 느낄 만큼 격정적인 감정이 생길 때, 우리 동네 가까운 정신건강의학과 검색을 해보긴 했다. 그러나 매번 예약전화로 이어지진 않았다.
육체의 건강이 실제로 나빠졌는데, 가서 무슨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그리고 약 먹어도 별로 도움 되지 않은 경험도 이미 있는 걸.
가봤자 의사 선생님께 구구절절하고 거지 같은 내면의 이야기를 또 하고 또 하고, 결국 질리게 만들어서 병원 경비원에게 잡히는 건 가능하겠다. 그런 류의 신선한 경험은 하고 싶지가 않으다.
나는 쫄보란 말이야.라고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는 가봐야 할 것 같다.
우울증은 이겨낼 수 있는데, 공황장애로 추정되는 신체적 증상은 못 이겨낼 것 같다.
이런 핫바리의 직무와 위치를 가진 나에게 맞지 않는 책임을 전가하려는 행위에 또한번 신체가 굴복했다. 샤우팅은 눈에 보이기라도 하지, 말하기 모호하고 교묘한 어떤 일들은 실제로도 말해봤자 소용이 없는 것이다. 할 수 있는 시도는 다 해봤고, 나는 이제 병원에 가야 할 것 같다.
책임져야 할 일은 당연히 책임을 져야지!
괴롭힘이 싫었던 거지 업무를 다 던져놓고 옮긴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어떻게든 해내는 게 K-직장인 아니겠나. 하지만 내가 해결할 수도 없고, 애초에 내 책임도 아닌 일들로 억울함을 견디는 건 참을 수가 없다. 못 참으면 어쩔 거냐고? 정병 생겼죠~.
나도! 정상적인 사회인의 범주에 들고 싶어.
인간성 좋은 사람들만 있는 곳에서, 보람 있고 즐거운 일 하면서 일하고 싶어. 정신적 고통을 즐기는 사람이 어디 있어.
8할의 좋은 사람들 덕분에 목숨줄 잡고 살고 있지만, 그렇다고 2할의 괴로움을 주는 영향력이 괜찮은 건 아닌 것 같다.
그 2할의 역할을 하는 사람들에겐 내가 빌런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난 정병을 얻어 병원으로 향하려 합니다.
나만 병원을 찾는 게 아닌 것 같다는 점을 위안 삼아 가보려고 합니다.
10월에 전화했는데, 11월 예약이 꽉 찼기 때문에 12월에 예약을 받을 수 있다고 하는 인기만점의 정신건강의학과. ㅎ...ㅎ..... 숨맥혀
스펙업을 해서 떠나라는 우리 집 강아지도 알법한 너무나 잘 알려진 조언이 내게 필요한 건 아니기 때문에,
혹시 그따위 조언을 해준다면 별은 5개 주겠지만 평은 구리게 쓸 것이다.
'도움 1도 안 되는 조언 해주심'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도 모르겠는데 뭘 어디로 도전하고 노력해야 하는 걸까.
불평쟁이의 현실이 녹록지 않은 걸 너무 잘 안다.
병원에서 공황장애 아니라고 하면 좋겠다.
하지만 우울증 약은 먹지 않을 것이야.
'행복하게' 살고 싶은 거지 죽고 싶은 게 아니라고.
11월 1일은 이 글을 미리 올리고 쉽니다...
기본적인 맞춤법도 오락가락 하네요. 죄송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아이디를 알려드리진 않았지만, 항상 절 위로해 주는 유니콘 같은 직장어른들께 감사와 사죄의 말씀을 올립니다. 제게 친절히 대해주셨던 것의 수억 배의 축복이 함께하길 간절히 기도드리겠습니다!!!!!!!
나쁜 인간들도 잊지 않지만, 착한 사람들은 더더욱 영원히 잊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