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함의 근원에 대해 거슬러 올라가면 끝 모를 분노의 늪을 헤쳐야 한다. 불가능하다. 차라리 거스름의 고리를 잘라야 한다.
커서 돌아보면 별 것 아닌 기억들도 많다.
남들과 비교해도 별 것 아닌 기억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괜찮진 않아. 괜찮아지지 않아.
언젠가 나이가 더 들어 불교사상의 말을 빌려 열반에 오른 듯이 되면 글로도 말로도 편히 털어놓을 수 있게 될까..
별일 없이 잘 지내다가도 문득, 몹시 뜬금없는 순간에도 살기 싫다는 마음의 소리가 검은 물길을 내어 자꾸만 올라와 결국엔 머릿속도 진흙탕으로 헤집어 놓는다.
아주 아주 오랫동안 지독하게 시끄러워 왔다.
받아들이면 안 되는데, 다른 것들보다 유독 그 충동질해 대는 소리에 약해진다.
긴 두통의 원인이 되어 오랫동안 머리를 짓눌러왔음에도 그 감정만큼은 쉬이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두통과 함께 찾아오는 단발성 기억들, 악몽의 기억들이 머릿속에서 터지듯 열과 함께 떠오른다. 아프기 시작하면 의지로만 통제할 수 없는 기억 강제시청이 시작된다. 너가 켜면 나는 잘라내고, 너가 화면을 띄우면 나는 TV를 끈다.
내 머리의 신경을 쥔 네가 조금 유리해 보이는 밤.
살기 싫은 세세한 근거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열거하며, 너는 나를 어딘가로 종용한다.
이 거지 같은 놈들은 잠도 들지 않고 부지런하다.
테니스로 공을 치듯 한 기억을 멀리 쳐내 버리면, 수십, 수백 개의 속공을 쳐서 보답한다.
너에게 남은 미련이 없구나.
너에겐 보이는 미래가 없구나.
너에겐 아무것도 남지 않았어.
도망가봤자 도망갈 곳이 없어.
가족들에게 없어져서 도움이 되자.
장례식은 하지 말아 줘.
가루로도 머물러 있고 싶지 않아.
저 멀리, 멀리 가고 싶을 뿐이야.
이런 소음과 멎지 않는 통증 속에서 잠을 청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약을 먹어도 소용이 없는 날이 많은 파이를 차지했다. 신경주사를 맞아도 길게는 소용이 없다.
약을 중첩되지 않는 선에서 종류별로 집어먹고선 적어도 굿판의 방울소리 같은 소음만이라도 차단하기 위해 CCM을 틀었다. 구마라도 당한 건지 다행히 어느새 잠이 든다.
또 인터넷에서 본 허튼소리가 기억이 난다.
기생충 약을 먹었는데 묘하게 힘이 없다며, 혹시..?...
기생충이 본인인 것이 아닐까 하는 자조적 개그를 담은 내용이었다. (인스타나 유튜브는 출처를 알기 어려운 온갖 웃긴 글들의 모음집으로 조회수를 늘린다. 나는 미끼를 얌체처럼 먹고 사라지는 물고기이고. 호호.)
뭐, 구마를 당했음 어떤가 잠을 잘 수 있음에 감사해야 한다. 그리고 특별히 스산한 기분이 들면서 엄마가 찾고 싶을 때는 꼭 더 틀어야 한다.
전에는 아주 작은 소음에도 잠드는 게 힘들어 클래식 음악이나 자연의 ASMR 소리조차 틀어놓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는데, 신기하게도 요즘에 는 CCM을 틀어놓으면 잠이 든다.
진짜로 문제는 나였던 거냐고....?
물론 CCM도 다른 음악과 마찬가지로 예외 없이 거슬리는 밤이 있기 때문에 알아서 잘 틀었다 껐다 해야 한다.(내가)
두통도 불면도 없는 날이 일상이면 좋겠다.
0~3시간 자기, 간헐적 잠자기 멍 싫고, 약도 안 듣는 두통은 멍멍 싫고, 통증의 틈을 타고 올라오는 못된 생각은 멍멍멍멍멍멍 왈왈왈왈와를르륽싫다.
글쓰기조차 이걸 이겨 낼 동기가 되지 않는다면, 어디를 향해 걸어가야 하는 걸까.
그러나 영혼의 숨을 내 손으로 끊을 순 없으니 육신의 머리채를 끌고 어디론가 가련다.
당신도 가는 거야 나랑 같이. 각자의 머리채 잘 잡아보자고!!!!
이겨 낼 동기를 찾아줄 순 없슨. 나도 찾고 있슨. 쏴리!
뭔 생각을 허니 걍 걷자.
쪼끄맣고 동그랗게 몸을 말고 응아 하는 강아지 엉덩이도 보고, 찌끄만게 살겠다고 하악질 하는 고양이 솜방망이도 보면서 가다 보면 네 어깨에도 보드랍고 하얀 솜털이 옮겨 붙어 자라 있지 않겠니.
숨어있는 파란 우울이 들아 어깨를 펴라.
피어날 네 날개를 기대해.
오글거림? 오글거리는 건 피어나려는 네 날개야.
2연타 어떰? 하하하하하하하
애리니까 청춘은 아니고
그냥 죽을 것 같은 게 너고, 나야!
하지만 안 죽죠? 죽지 않죠? 꼭 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