챕터 28: 데자뷔
작은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나는 그 자리에 돌처럼 굳어 버렸다.
문에 달린 종이 '짤랑' 소리를 내며 우리의 등장을 알렸지만,
내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시야는 오직 카운터 너머에 서 있는 한 여자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시간은 멈추고, 주변의 모든 소음은 아득히 멀어졌다.
"야, 왜 그래? 이 자식이 갑자기 왜 멈춰?"
기철이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마치 물속에서 들리는 것처럼 웅웅 거릴 뿐이었다.
그는 내 팔을 잡아끌며 카운터로 향했다.
나는 발이 땅에 붙어버린 듯 움직이지 않았지만,
기철이의 힘에 이끌려 서서히 앞으로 나아갔다.
내 눈은 여전히 그녀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카페 카운터에 서 있는 여자.
그녀는 분명 젊은 시절의 한수련 부원장님이었다.
3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내 기억 속의 한수련이 마치 거울처럼 그녀에게 비치는 듯했다.
막 피어난 목련처럼, 순백의 도자기 같은 피부에 섬세하고 우아한 선,
맑고 깊은 눈매와 고요한 호수 같은 눈망울,
오뚝한 콧날 아래로 단정하게 다물린 입술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차분하게 묶어 올린 머리,
그리고 어딘가 모르게 쓸쓸해 보이는 표정까지.
모든 것이 데자뷔처럼 겹쳐지며,
나는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이 녀석이 갑자기 왜 이러나 모르겠네."
기철이는 멋쩍게 그녀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녀는 고개를 갸웃하며 내게 괜찮은지 물었다.
"손님, 괜찮으세요?"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나긋했지만,
내 귀에는 아득히 멀리서 들려오는 듯했다.
내가 지금 꿈을 꾸는 건가?
아니면 태경이에 대한 복수심에 미쳐버린 건가?
정신을 차리려 애쓰며 카운터로 다가갔지만,
내 시선은 여전히 그녀의 얼굴에 뚫어져라 박혀 있었다.
그녀는 잠시 당황한 듯했지만, 이내 직업적인 미소를 지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주문하시겠어요?"
"저는 아아 주시고요, 넌 뭐 마실래?"
기철이 내 옆구리를 쿡 찌르며 물었지만,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내 눈은 그녀의 가슴팍에 달린 명찰로 향했다.
점장 한초희.
한초희. 한수련이 아닌 한초희.
이름은 다르지만, 그 익숙한 성(姓)과 너무나도 닮은 얼굴.
머릿속에서 혼란스러운 질문들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혹시… 설마… 한수련 부원장님의 딸…
그게 아니고는 그녀의 젊은 시절과 이렇게나 똑 닮은 여자가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을까?
"주문해주시겠어요?"
그녀가 재차 물었다.
조금 전보다 목소리에 미묘한 짜증이 섞인 듯했다.
내 입에서는 뜬금없는 질문이 튀어나왔다.
마치 누군가 내 혀를 조종하는 것처럼.
"혹시… 어머니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요?"
"네?"
그녀가 당황한 듯 되물었다.
눈썹이 살짝 치켜 올라갔다.
기철이 옆에서 "야!" 하고 짧게 외쳤다.
그제야 나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지금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가.
"아, 아뇨. 같은 걸로 주세요."
기철이와 함께 카운터에서 멀지 않은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기철이는 몸을 내 쪽으로 기울이며 속삭였다.
"도대체 쪽팔리게 왜 이래? 갑자기 어머니는 왜 찾아?"
나는 여전히 시선을 그녀에게 향한 채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가 서 있는 카운터 쪽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저 여자 얼굴을 잘 봐. 누구 닮지 않았냐?"
기철이는 미간을 찌푸리며 그녀를 쳐다봤다.
그의 눈이 가늘어졌고, 이내 희미한 탄식이 터져 나왔다.
"한수련…."
그가 중얼거렸다.
그의 목소리에는 놀라움과 함께 알 수 없는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잠시 후, 우리가 주문한 커피가 나왔다.
나는 커피를 마시는 둥 마는 둥, 컵을 든 채 멍하니 카운터 쪽을 바라봤다.
기철이도 마찬가지였다.
우리의 머릿속은 각자 다른 생각들로 가득했다.
기철이는 지금 당장 그녀에게 유태경에 대해 물어봐야 할지 고민하는 듯했고,
내 안에서는 전혀 다른 종류의 질문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만약 저 여자가 정말 한수련 부원장님의 딸이라면?
그렇다면,
오랜 시간 마음 한구석을 맴돌던 그분을 다시 만날 수 있는,
가느다란 희망의 끈이 생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심장이 미세하게 떨렸다.
유태경을 쫓는 것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간절했던 염원이
현실로 다가올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벅차올랐다.
커피를 다 마신 트레이를 돌려주려 다시 카운터에 다가갔다.
그녀는 가볍게 고개를 숙여
"감사합니다. 또 오세요."
하고 인사를 건넸다.
그 순간,
나는 마치 입 속에 머금고 있던 무언가를 터뜨리 듯,
참을 수 없는 충동에 사로잡혀 말을 꺼냈다.
"혹시… 한수련 씨를 아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