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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펀트

챕터 30: 미키 마우스

by BumBoo

카페 문이 닫힌 지 벌써 나흘째였다.


매일 기철이와 나는 승합차를 몰고 카페 앞 골목을 서성였다.


처음에는 희미한 기대감이라도 있었지만,


이제는 그저 습관처럼, 혹은 혹시나 하는 미련처럼 발길을 옮길 뿐이었다.


굳게 닫힌 문, 불 꺼진 간판은 마치 우리를 비웃는 듯했다.


손님이 없어서 일찍 문을 닫은 것이 아니라,


아예 문을 열지 않는다는 사실이 명확해질수록 초조함은 깊어졌다.


유일한 단서인 한초희마저 사라져 버린다면,


유태경의 행방은 다시 안갯속으로 사라질 터였다.


"젠장, 이대로 끝인가."



다섯째 날 밤,


기철이는 운전대 위로 고개를 파묻은 채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의 목소리에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나는 대답 없이 카페 유리창을 응시했다.


어둠 속에 잠긴 카페 내부는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


창문 가까이 다가가 내부를 샅샅이 훑어보기 시작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주 작은 단서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집착에 가까운 시선이었다.


아예 처음부터 희망이란 것이 없었더라면,


기대란 것이 없었더라면 이렇게 절망적이지는 않았을 것 같았다.


마치 희망이라는 고무줄을 끝까지 당겼다가 놓쳐버린 것처럼,


그 고통은 쓰라렸다.



한초희를 기다리는 일은 이제 체념의 영역에 들어섰다.


마지막으로 오늘 밤만 더,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카페를 찾았다.


며칠 밤낮으로 맴돈 탓에,


이 골목과 카페의 모든 모서리는 눈감고도 그릴 수 있을 만큼 익숙해져 있었다.


그러나 그 익숙한 풍경 속에,


오늘은 어딘가 모르게 설명할 수 없는 이질감이 희미하게 배어 나오고 있었다.


굳게 닫힌 문과 불 꺼진 간판은 어제와 같았지만,


공기 속에 감도는 미세한 변화가,


혹은 보이지 않는 무언가의 흔적이 '달라졌다'라고 속삭이는 듯했다.


분명, 밤사이 누군가 이곳에 다녀간 것이 분명했다.


우리는 카페 유리창에 바싹 얼굴을 대고, 단 하나의 단서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눈빛을 가늘게 뜨고 내부를 샅샅이 훑었다.


마치 틀린 그림 찾기를 하는 아이처럼.



그때,


어제까지는 말끔하게 정돈되어 있던 카운터 위에


컵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음을 발견했다.


분명 어제까지는 없었던 컵이었다.


그 컵은 독특한 그림을 가지고 있었는데,


검지를 위로 치켜든 미키 마우스가 선명하게 인쇄되어 있었다.


컵은 거꾸로 엎어져 있었고,


그로 인해 미키마우스의 치켜든 손가락은


마치 테이블 위 어딘가를 집요하게 지시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그 미키마우스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바로 그 지점,


컵과 테이블 사이의 좁은 틈새에


네모난 까만 카드 같은 것이 교묘하게 끼워져 있었다.


너무 멀어서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무언가 숨겨져 있다는 것은 분명했다.



카페 안으로 들어가려고 다시 한번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손바닥에 와닿았지만,


문은 굳게 잠긴 채 미동도 없었다.


요란한 종소리만이 정적을 깨고 길을 가던 행인들의 이목을 끌 뿐이었다.


기철이는 굳은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젠장, 이대로는 안 되겠어.


친구 중에 문 하나는 귀신같이 따는 놈이 있어. 밤에 조용히 들어가 보자."



우리는 주변에 인적이 없는 것을 몇 번이고 확인한 후,


친구의 도움으로 카페 안으로 들어섰다.


어둠 속, 손전등의 좁은 불빛만이 길게 그림자를 드리웠다.


침묵은 더욱 깊어졌고, 발소리조차 조심스러웠다.


우리는 마치 유령처럼, 조심스럽게 카운터로 다가갔다.


미키 마우스 컵을 조심스럽게 들어 올린 후,


그 아래 끼워져 있던 검은 종이를 집어 들었다.



손에 잡힌 것은 명함이었다.


칠흑 같은 바탕에 금빛 글씨가 새겨진, 익숙하리만큼 낯선 디자인.


그것은 분명 유태경의 명함과 같은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그 위에 새겨진 이름은…



柳 圭 Yanagi Kei



한자로 된 일본 이름.


그리고 그 아래에는 일본어로 된 주소와 전화번호가 인쇄되어 있었다.


명함을 든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이 전화번호는… 분명 태경이의 것이다.


유태경이 야나기 케이라고.


머릿속은 혼란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영어 이름을 쓰는 사람들은 흔했지만,


굳이 일본 이름을 내세우는 경우는 본 적이 없었다.


그 사실 자체가 유태경이라는 인물에 드리워진 또 하나의 깊은 장막 같았다.



야나기 케이… 야나기… 케이….


나는 몇 번이고 그의 일본 이름을 되뇌었다.


발음할수록 낯설면서도 어딘가 섬뜩한 기운이


손끝을 타고 전신으로 퍼져나가는 듯했다.



한초희는 우리에게 무엇을 알리고 싶었던 것일까.


야나기 케이,


그 이름 뒤에 감춰진 태경이의 실체는 또 어떤 어둠을 품고 있는 걸까.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


진실의 형체는 손에 잡힐 듯하면서도


더욱 깊은 미궁 속으로 가라앉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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