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겐스부르크에서 도나우 강을 보며
정오가 지난 크리스마스 이브, 가게들이 하나 둘 문을 닫기 시작했다. 우리는 뉘른베르크 근교를 여행하기로 했다. 근교 여행할 후보지가 두세 군데쯤 있었는데 내가 안 가봤던 레겐스부르크라는 도시를 선택했다. (5년 전 혼자 왔을 때는 밤베르크를 다녀왔다.)
뉘른베르크 중앙역으로 가기 전 기차에서 먹을 점심을 사러 갔다. 독일 소시지를 케첩 소스에 버무려 카레가루를 뿌려주는 음식인 '커리부어스트' 전문 가게였다. 매장은 깨끗하고 젊은 사장님이 친절했다. 종류별로 소시지를 시키고 감자튀김 세트를 골랐는데 찍어먹는 소스가 다양했다. 뭘 골라야 할지 고민하다 사장님께 추천해 달라고 했더니 종류별로 듬뿍듬뿍 담아주셨다. 덕분에 소스 박스가 탄생했다. 기차를 타고 가면서 맛있게 먹었다. 부모님을 모시고 자유 여행할 때, 기차를 타면 여행의 낭만을 더 즐길 수 있어 좋은 거 같다.
레겐스부르크에 도착했다. 우선 멀리서도 보이는 대성당으로 향했다. 대성당 외관을 보며 크기에 감탄했다. 마침 우리가 도착했을 때 크리스마스 이브 미사 중이었다. 천정은 높고 내부는 외관으로 본 것처럼 커서 신부님들이 작아 보였다. 유럽 교회, 성당을 다니다 보면 이렇게 경이로운 건물을 지어내는 신앙심에 놀라게 된다.
한편, 성당 앞 동상은 바이에른 왕국의 루드비히 1세(Reiterstatue Ludwig I.) 기마상이었다. 아빠가 동상의 동작을 따라 하는데 재미를 붙였나 보다. 그래서 나는 아빠를 찍어주는 엄마를 찍었다.
대성당에서 이어진 길을 따라 걷다가 알록달록 페인트 칠해진 건물들 사이에 크리스마스 조명이 어우러진 골목에 들어섰다. 엄마 아빠의 인생 사진을 건지기 위해 우리 남매는 혼신의 힘을 다 하는 촬영 기사를 자처했다. 이번엔 아빠를 찍는 우리를 엄마가 찍어 주었다. 사진과 함께 추억도 쌓인다.
구 시청 건물 앞에 지붕 높이까지 뻗은 트리가 있었다. 은은한 조명만 설치한 듯 평범한 트리였지만 엄청난 크기였다. 엄마 아빠는 대체 어떻게 이걸 세웠는지 궁금해하며 가까이 가서 고정 장치를 살펴봤다.
레겐스부르크는 도나우강, 나아베강(Naab), 레게 강(Regen)이 만나는 지점에 자리한 도시라서 역사적으로 교통과 무역의 중심지였다고 한다. 우리는 도나우 강 건너편에서 대성당 쪽의 시가지를 바라보았다. 크리스마스 이브의 해 질 무렵이라 한적하고 여유로웠다.
한편 우리가 사진 구도를 잡은 곳은 아래가 바로 강이라 자리에 앉기까지 긴장되었다. 엄마는 도저히 못 가겠다고 했는데 나, 동생, 아빠 순으로 찍은 사진들이 너무 멋있게 나와서 결국 아빠 옆에 가서 앉았다. 용기를 낸 덕에 진짜 인생 사진을 건졌다.
레겐스부르크의 명소인 슈타이너네 브뤼케(Steinerne Brücke)로 이동했다. 이 다리는 1100년 경에 지어진 것으로 당시에는 유럽에서 가장 긴 석조 다리 중 하나였고, 북유럽 최초의 석조 아치 다리로 꼽힌다고 한다. 우리는 가스등 같이 생긴 가로등이 켜지는 시간을 기다렸다. 드디어 해가 넘어갔다. 가로등들이 켜지고, 레겐스부르크 대성당에도 황금빛 조명이 켜졌다.
밝을 때는 알록달록한 집들을 배경으로 찍고, 해 진 후는 따스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불빛들이 역할을 했다. 어느 때건 한 폭의 그림 같았다. 독일에서의 마지막 밤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리고 여행의 끝이 보여 이 거리의 풍경과 시간이 무척 여운을 남겼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기차 시간에 맞춰 다시 역으로 돌아왔다. 뉘른베르크로 가는 기차에서 그동안 찍은 사진들을 보며 좋았던 기억들을 회상했다. 다음날, 우리는 마지막 여행지 체코로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