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를 모른다.
요즘 만나는 남자가 있다. 열흘 혹은 보름 간격으로 만난다. 만나서 하는 이야기주제는 거의 비슷하다.
“지난 열흘은 어떻게 지냈나요? 잘 지냈나요?”
“…네… 잘 지냈어요.”
항상 그가 먼저 나의 안부를 물어봐주고, 나의 컨디션을 확인한다.
“기분은 어땠나요? 지난번 있었던 공황증상은 여전히 있었나요?”
“……괜찮아요. 증상이 살짝 있지만, 일상생활이 힘들 정도는 아니었어요. 기분도 괜찮아요. 근데 좀 피곤해요. ”
헤어질 땐 다음에 만날 시간을 약속하고 나의 편안함을 기원해 준다. 난 매번 감사하다 인사하고 나와서 소액을 지불한다. 커피 한잔 값으로 그와의 짧은 만남을 산다. 그래서일까? 그와 나누는 보통의 인사말부터 그에겐 나의 마음을 더 잘 알고자 하는 의도가 듬뿍 담겨있다. 난 그걸 알기에 더 골똘히 생각하고 정성스레 대답한다. 그의 앞에선 기분 좋을 필요가 없다. 대화의 빈틈에 웃을 필요도 없다. 같은 공간에 함께 있지만 내 자신에게만 집중해도 되는 점이 가장 좋고, 편하다. 만약 내가 잔뜩 가라앉은 기분이라면 울적한 느낌의 이유를 함께 찾아보기도 한다. 내 감정들을 소중히 봐주고, 나의 소소한 다짐들과 생각들을 기억하고 응원해 준다. 나라는 존재를 어느 누구보다 더 잘 인식하고, 자세하고 정확하게 다독여준다. 그렇지만 내 삶에서 특별한 사람이라고 소개할 순 없다. 그는 내가 삶을 건강히 살아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정신과 의사 선생님이다. 그는 이전에 저장해 두었던 기록들을 확인하고 나에게 질문한다. 나는 그저 수많은 환자들 중 한 명이고, 그의 직업은 나를 관찰해 꼼꼼하게 기록해 놓고, 내 상태의 변화를 비교하며 약 처방을 결정하는 것이다. 매번 짧은 만남이지만 소중하고, 난 그가 꼭 필요하다.
어느 날 갑작스러운 공황 발작 후, 주변의 설득으로 병원에 가보기로 마음먹었다. 걸어서 갈 수 있는 위치의 정신건강병원 목록들을 훑어보았다. 마음을 위로해 주고, 공감해 주고, 다 이해해 주겠다는 다짐이 느껴지는 이름의 병원들은 다 제쳤다. 내키지 않았다. 그랬더니 남은 병원은 하나였다. 강동원(가칭). 전문의 이름 세 글자가 병원 이름이다. 난 그 병원 이름이 마음에 쏙 들었다. 왜인지 병원간판에 자기 이름을 내건 이 전문의는 개개인의 구구절절한 신파극엔 그다지 관심 없을 것 같았다. 이성적이고 객관적으로 환자를 냉철히 판단하고, 자신의 이름을 걸고 사기를 치거나 돌팔이는 아닐 것 같았다. 혹시 나의 모난 성격과 약해빠진 정신 상태가 이유라면 잘 타일러 주며, 그냥 열심히 살아보라며 돌려보내 줄 것 같았다. 2023년 따뜻함과 시원함이 공존하는 계절에 그를 처음 만났다. 난생처음 가본 정신건강전문병원이었다. 기다리며 알게 된 건 병원 대기실에 걸려있는 그의 학력과 이력, 과거 근무지가 다였다. 내 이름이 불리면 천장까지 맞닿아있는 짙은 초록색의 커다란 문을 열고 들어간다. 그는 항상 같은 톤으로 인사해 준다. “안녕하세요~” 그는 나와 나이가 비슷해 보인다. 그리고 정말 의사같이 생겼다. 덧붙여 내가 추측으로 알아낸 게 있다면, 왼쪽 네 번째 손가락에 유일한 액세서리는 결혼반지일 테고, 큰 변화 없이 항상 단정하고 깔끔한 머리와 옷 차림새다. 병원 휴가가 끝나면 원래 밝은 톤의 피부가 많이 어두워진다. 왠지 여행을 좋아할 것 같다.
처음 몇 달은 뻘쭘하고 낯설었다. 하고 싶은 말도 없었고, 억지로 일주일에 한 번씩 가서 만나는 게 버거웠다. 무례하다 싶을 정도로 직접적이었고,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예민할 수 있는 말들을 내가 직접 말하게 했다. 날 서럽게 울렸다. 좀 원망스럽기도 했다. 왜 굳이 곧게 잘 묻어둔 과거의 일들을 다 파헤쳐 놓고 들여다보게 해서 날 이렇게 괴롭힐까 성질나기도 했다. 병원에서 나와 약국으로 향하는 계단에서 울기도 많이 울었다. 하지만 이젠 안다. 그렇게 오랫동안 깊게 곪아 굳어버린 고름을 뾰족한 말로 터뜨려 빼내야 했다는 걸, 그리고 지금은 속 안에서부터 새 살이 잘 돋아나게 도와주고 있다는 걸 안다. 그래서 그의 존재가 든든하다.
난 그의 얼굴을 보지 않는다. 못 보겠다. 진료실 안에서 나의 눈은 내 오른편의 흰 벽이나 공기청정기, 혹은 정신분석학 책이 꽂혀있는 깔끔한 책장에 고정돼 있다. 보통 지인들과 대화할 땐 얼굴을 마주 보고, 눈을 응시하며 대화한다. 선생님 앞에선 부끄러운 것도 아닌데, 껄끄러웠다. 날 꿰뚫어 볼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일까? 내 자신이 쭈글시러울 만큼 오른쪽을 보고 있다. 아니면, 아주 간혹 책상 아래로 삐쭉 나온 그의 발을 본다. 언젠가부터 알게 된 사실이다. 그는 편안히 모니터에 집중할 때 버켄스탁 슬리퍼를 벗어 책상 밑 구석에 밀어놓고, 양말 신은 발을 신나게 흔들 때가 많다. 처음에 그 정신 사나운 발을 보고 살짝 당황했지만, 이젠 마치 신난 강아지의 꼬리 같아 보여 그 모습이 싫지 않다. 그리고 어떤 날은 내가 한참을 말할 때가 있다. 평소대로 오른쪽 하얀 벽에 머물러 있던 시선으로 잠시 그를 확인하면, 우아하게 턱을 괴고 날 응시하고 있다. 마치 유명한 예술 작품을 보는 듯하다. 낯설면서도 싫지만은 않은 그 시선이 무슨 의미인지 한참 동안 궁금해했다. 그리고 얼마 전 글쓰기를 시작한 나를 독려하고 그의 말에서 그 미묘한 시선의 뜻을 확신했다. ‘감상’이었다. 그만이 할 수 있는 뛰어난 의술의 힘으로 눈에 띄게 좋아진 환자를 보며 감탄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럴 때 난 마치 유명 미술관에 있는 멋진 조각상이 된 듯해서 우쭐해진다.
어쩔 땐 별다른 질문 없이 날 한번 슬쩍 보고는 열심히 타자를 친다. 반면 내가 말을 좀 길게 해도 자판을 몇 번 안 칠 때가 있다. 어떨 땐 ‘이 말은 중요한 말 같은데, 왜 안 적어놓지?‘ 란 생각에 섭섭하기도 하다. 내가 말한 단어의 수와 버튼 누르는 횟수는 전혀 비례하지 않다. 그가 무슨 기준으로 기록을 하는지, 마우스를 드래그하며 뭘 보는 건지 기회가 주어진다면 보고 싶다. 정신과 의사가 바라보는 나는 어떤 환자일지 알고 싶다. 매우 궁금하지만 보여달라고 말할 용기는 전혀 없다. 아무래도 평생 알지 못 한 채로 살 것 같다.
몇 번은 말하는 선생님의 얼굴을 본 적이 있다. 길어야 5초였지만 똑바로 응시했다. 상처받은 마음을 숨기고 스스로 덮어두려 할 때, 속상하고 화나지만 주저 없이 현실과 타협하려 할 때, 내 마음의 정의를 못 내려 혼란스러울 때이다. 선생님의 입을 통해 내 마음들을 세상에 풀어 줄 때이다. 내가 간절히 듣고 싶었던 말이라서, 너무 놀랍고 신기해서 뭘 참고하며 보는 건지, 진심이 담긴 건지 확인하고 싶어서 쳐다보았다. 그럴 때 오래전에 열쇠를 잃어버려 열 수 없었던 해어 진 자물쇠를 따주었다는 표현이 맞겠다. 선생님에 의해 내뱉어진 날카로운 문장들은 나를 파고 들어와 깊은 여운을 주었다.
“즐겁고 재미난 걸 더 많이 찾았으면 좋겠어요.”
“밖에 나가기 싫으면 나가지 않아도 돼요. 쉬고 싶을 땐 쉬어야죠.”
“부모 중에도 자식을 비난하고 싶어 하는 부모가 있어요.”
“힘들었고, 고생했다는 거를 다 위로받을 필요는 없더라도 가족에게 말해서 알릴 필요는 있어요.”
“생산적인 일이 아니고, 돈을 벌지 못하더라도, 그리고 설령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 같아도 했으면 좋겠어요. 하다 보면 생각지 못한 의미를 찾을 수도 있지요.”
“더 힘들게 느껴질 수 있어요.”
내 인생에 대해 조언을 해줄 수 있고, 나 스스로 생각해 볼 여지를 주고, 나를 남편보다 더 많이 알고, 나에 대한 대화만 하는 사람이다. 그를 너무 오랫동안 안 만나면 일상이 조마조마해진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내적 친밀감은 없다. 만약 밖에서 우연히 그를 만난다면 인사도 안 하고 스쳐 지나가고 싶다. 그에게 모든 걸 다 말할 생각도 없고, 대화 전 내용의 필요유무를 따지게 된다. 요즘에서야 종종 그에게 하고 싶은 말이 생긴다. 그러니 약처방이 필요 없게 되더라도 꾸준히 그를 방문하여, 처음 만났을 때 절대 하기 싫다 버럭 했던 심리상담도 해 보고 싶다. 표정변화도 거의 없고, 교과서 처럼 해주는 그의 말들이 나에겐 진하게 스며든다. 그를 만날 때, 그의 감정이나 상태를 배려하지 않아도 되고, 그의 이야기를 들어줄 필요도 없으며, 전문가라서 얻을 수 있는 신뢰 가는 정보도 있다. 그래서일까? 집으로 가는 내 뒷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조금씩 편해진다. 물론 지금도 한 번씩 병원에 너무 의지하게 된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고개를 든다. 하지만 선생님을 만나기 전과 후의 내가 달라졌듯이, 이 훌륭한 전문가를 굳게 믿는다. 그는 나를 더 튼튼하게 만들어 한층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도와줄 테다. 그로 인해 목적지도 모르는 나의 길을 끝까지 잘 걸어갈 수 있을 테다. 그는 지쳐서 주저앉은 나를 일으켜 세우고, 잠긴 문 앞에서 울고만 있을 나에게 열쇠를 내밀어 줄 존재다.
물론 제일 중요한 건, 내가 도와달라 해야 한다. 그에게 솔직한 방법으로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병원에서 내가 예약한 진료시간을 미리 알려주는 확인 문자가 오지 않지만, 나는 이번 진료약속도 잘 지킨다.
그를 만나러 간다.
*** 작가의 말 ***
사람이라는 주제에 글 쓰고 싶은 사람이 참 많았다. 어느 누구 하나 글을 끝까지 정리하지 못했다. 그나마 빠르게 글을 맺은 사람이 지금 만나고 있는 의사 선생님이었다. 나와 선생님 사이의 관계가 명확하게 정해져 있고, 개인적인 감정에 얽매여있지 않고, 의사와 환자로 건강하게 유지되고 있기에 빠르게 글을 써 내려갈 수 있었던 거 같다. 꼭 한번 써보고 싶었던 주제들을 이번에 정리해서 쓰고 나니 개운하다. 다음엔 나의 정신건강에 대한 주제로 내가 다니는 병원 이야기를 또 써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