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눈'의 사람들
자랑할 거리는 아니지만, 숨길 것도 없기에 요즘 정신과에 다니고 있고, 정신과 약을 먹고 있다고 말하게 될 때가 있다. 그러면 많은 사람들이 ‘착한 눈‘을 하고 나에게 얼굴을 들이민다. 그리고 나에게 하는 말은 가지각색이다.
“정신과? 왜에~? 정말 안 그래 보인다~ 필요하면 가야지. 근데 주부로 오래 있으면 그럴 수 있어~ 사십 대란 나이도 그럴 나이야.”
“나도 다닌 적 있었어요. 수면제도 먹어보고, 신경안정제도 먹고~ 지금은 괜찮아요. 아프면 좀 다닐 수도 있지요.”
나는 받고 싶지 않은 위로와 공감을 대뜸 해준다. 또는 해결해주려 하거나 더 좋은 해결 방법을 제시해주기도 한다.
그들의 ‘착한 눈’에서 다양한 마음들이 보인다. 뭐 그렇게 심각하지도 않은데 공통적으로 안타까워하고 놀라워한다. 나를 안쓰럽게 생각하기도 한다. 그리고 따뜻한 마음씨로 날 위해주고, 도와주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들 마음의 이유와 형태는 다 다른듯하다. 나에 대해 느끼는 감정들은 모두 그들의 자유다. 나에 대한 그들의 마음이나 말들이 나를 곤란하게 하거나 기분 나쁘진 않다. 그렇다고 마냥 좋은 것도 아니다.
“정신과 약 먹는다고?? 뇌에 빵꾸 나는 거야! 먹지 마! 신경안정제 먹는 거지? 정신과의사들 다 돌팔이야~ 아무 효과 없어!! 명상하고, 요가를 해봐~ 햇빛도 보며 나랑 공원 걷자~”
“풀비야~ 뭐가 그렇게 걱정이야? 불안해? 제일 큰 문제가 뭐야? 말해봐. 그걸 말해야 풀리지~ 그렇게 꽁꽁 담고 있으니까 병나지. 말해봐. 괜찮아. 말해봐~”
“우울해? 행복에 너무 집착하지 마~ 인스타 같은 거 많이 해? 완벽주의자구나? 마음을 비우고, 내려놔~ 물론 어렵지. 나도 어려워. 그래도 난 많이 내려놨어. 나이 들수록 더 연습해야지.”
“약 잠깐 먹어보는 것도 도움이 되지~ 그래도 결국엔 자신이 이겨내야지. 약도 그렇게 오래 먹고 의지하면 좋을 거 하나 없어. 강한 정신력으로 이겨내야지. 약 먹으면 나약해지는 거야. ”
나에 대한 그들의 생각과 말들 또한 몽땅 그들의 자유다. 살아온 그들의 경험으로, 그들의 뇌로 생각하고, 그들의 입으로 쏟아붓는 거니까. 그들의 반응이나 말들을 세세히 되새기고 내 마음속에 담아둘 필욘 없다. 나 또한 세세히 기억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그들이 만든 틀 안에서 벗어난 나를 판단하고 가름 짓는 것에서 더 나아가, 나에게 자신의 말이 옳음을 강조하며, 기나긴 고민 끝에 선택을 마친 나를 존중해주지 않는 사람들에겐 부화가 치민다.
그러면 난, ‘집에 와서 ‘ 돌이켜보고 떠올리며 매번 같은 생각의 지점에 서있게 된다.
‘나에 대해 얼마나 안다고 저런 말들을 지껄이는 거야? 자기들은 잘 살고 있나? 나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자신의 방식과 의견을 강요하고 내 안에 밀어 넣으려는 거지?‘ 거부감이라는 불씨와 함께 내 안의 무엇인가가 퍼진다.
타인이 나를 잘 모르는 게 지극히 당연한 거다. 오해를 하든 말든 정작 당사자는 몇 시간 후엔 기억 못 할 말들에, 사람들의 재채기 속 비말 같은 하찮은 말들에 왜 나는 평정심을 놓쳐버릴까? 힘들게 꼭 붙잡아 놓았었는데 사람들의 말에 사무치게 흔들린다. 사람들이 참으로 원망스러워진다. 그리고 왜 난 하고 싶은 말을 제때 표현하지 못하고 사고가 정지된 채, 미스코리아 미소만 띠며 앉아 있었을까? 어차피 그들은 나의 말은 안 들을 사람들이라서 일까? 특히, ‘날 잘 알지도 못한다 ‘는 부분에서 왜 내 안은 더 휘몰아칠까? 태연히 흘려보내기가 그렇게 어려울까? 왜 그럴까?
“내가 네 부모인데 널 모르겠니?”
“내가 너보다 너를 더 잘 알아.”
“내가 다 알아봤어~ 네 상황에선 이게 최선이야. 내 말이 맞아.”
“네가 뭘 해? 그냥 평범하게 살아. 사람들이 안 하려는 데는 이유가 있는 거야. 굳이 그걸 왜 하려고 해?”
“내가 더 오래 살았는데 내가 더 잘 알지~ 넌 잘 알지도 못하면서 왜 이렇게 엉뚱한 소리를 해?”
부모님에게도 성인이 된 나는 아직도 어리숙해 보이고 도와주고 싶은 어린아이로만 보이는 것 같다. 세상물정 모르고 뭘 하든 어설퍼 보여 아낌없이 충고를 해줘야 할 미약한 존재로만 비치나 보다. 우리가 어렸을 때는 물론 지금까지도 많은 아이들에게 ‘말 잘 듣는 아이‘ 혹은 ‘착한 아이‘가 되라고 말한다. 너무도 보편적이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부모 말을 안 듣는 시기가 왔다.’ 혹은 ‘세상에서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자식이다 ‘라는 말들을 스스럼없이 나누는 이 세상이 끔찍하게 무섭다. 세상을 아주 조금 더 오래 살았다는 대단한 이유로 어린아이들에게 자신의 말과 행동이 정답이라 말한다. 부모의 마음속엔 자식이 자신과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혹은 패배감이나 좌절감을 느끼지 않길 바라는 호의로 말하는 거라 주장할 테다. 하지만 그 말속 안에는 어른이 우월하다는 의미와 복종하고 따르라는 뜻이 숨겨져 있다 생각한다. 그리하여 당당하고 막힘없이 내뱉는 언어폭력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결혼한 나에게 더 추가된 영역이 있다. 십육 년 차 주부가 된 지금까지도 명절 잔소리 후렴구는 변함없다. “시댁 어르신들에게 사랑은 많이 받고 왔니?” “네가 일도 잘 못하고 할 줄 아는 것도 없는데, 시댁 가서 시어머니를 잘 도와드렸니?” “아고~ 여보, 얘가 눈치가 없고, 손이 야무지지 못해서 그렇지. 그래도 뭘 시키면 시키는 거는 하지.” 친정 부모님에게 나는 시댁에 가서 며느리로서 일을 훨씬 더 많이, 그리고 더 잘할 필요가 있다 하신다. 그리하여 난 딸 둘만 낳은 맏며느리지만, 시댁에서 이쁨만 받길 진심으로 기원하신다. 내 자식이 어디서든 이쁨 받길 원하는 부모의 마음을 나도 자식을 둘이나 낳았기에 모르는 건 아니다. 그런데 왜 이런 무차별적인 성차별과 삐뚤어진 유교적 사상이 틈틈이 박힌 폭력적인 말들을 아이들 앞에서 듣고도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할까? 저항의 표정은커녕, 웃으며 매년 듣고 있을까? 많은 예쁨과 사랑을 잘 받고 있다고 친절하게 대답할까? 나를 포함한 모두를 기분 나빠지게 만들기 싫어서? 잘못된 점을 지적하기에 단 한 단어도 맞는 게 없기에? 내 마음에 들게 변화시키기엔 불가능해서? 진짜 감정을 드러내기 두려워서?
만일 나의 의견을 무시하고, 대놓고 강력하게 부정하며 자신의 주장만 펼치는 ‘선 넘는 ‘ 사람들을 만난다면 자리를 피하거나, 상황이 된다면 그 사람을 다시는 안 보면 된다. 하지만, 어린아이에게 높디높은 부모가 한 말이라면 복음이 되고, 마음속 깊이 받들어야 하는 말씀이고, 반드시 따라야 하는 지시사항이 된다. 우리는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나보다 나이 많은 이들에게 순순히 따르는 사람으로 살아오고 있다. 그리고 더 슬픈 건 피하는 게 최고의 대처법인 채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나와 타인이 생각하는 나는 다르다. 느끼는 바도 다르고, 같은 입장일지라도 미세한 앞뒤 차이는 있을 수 있다. 유전자 안에 공통으로 겹치는 부분이 있다 하더라도 엄연히 다른 타인이다. 같은 사람일지라도 십 대의 자아와 사십 대의 자아는 엄연히 같지 않은 사람이다. 설마 그 사실을 나만 알고 있는 것인가? 알면서도 현실에 잘 반영하지 못하는 건가? 생각이 이쯤 닿아 마음이 답답해지기 시작할 때쯤, 멈추고 또 나를 성찰하고 들여다본다. 타인을 탓하고 비난하기 이전에 나나 잘하자. 나는 타인을 전적으로 인정하고 자잘한 실수도 용서해 주며 깔끔하게 잘 행동했나? 아이들에게 선생님 말씀에 잘 따르라 말한 적은 없는가? 말모양새만 다를 뿐, 똑같은 알맹이를 아이들에게 집어넣으려 하진 않았나? 다시 처음부터 차근히 생각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