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가기

정신건강병원 방문하기

by grassrain

“엄마가 병원 가는 데가 정신과야?”

“우울? 엄마가 우울증이야? 그거 학교에서 배웠는데, 엄마 전혀 안 그래 보이는데?”

“그 약은 왜 먹어? 뭐가 좋아지는 거래? 아픈 데가 없는데 의사 선생님한테 뭐라고 말해?”

초등학교를 다니는 둘째 딸아이는 내가 혼자 있는 시간을 무척 궁금해한다. 처음엔 쭈뼛쭈뼛 둘러댔다. 어린아이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머릿속으로 정리가 안되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병원에 자주 가게 되고, 장기적으로 가게 될 것 같아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말해주기로 했다.

”그때 엄마가 갑자기 바닥에 누워서 너네가 막 울었었지? 엄마의 뇌가 약하게 태어났나 봐. 그리고 어렸을 때 외할머니가 주는 초록색 야채도, 김치도 다 안 먹었거든. 그래서 뇌가 크다 말았나 봐. 너희들은 그러지 않을 거야. 이미 야채를 엄청 잘 먹고 있으니까~ 또 그러지 않으려고 병원에 다니는 거야. 뇌가 잘 돌게 해주는 약이야. 정신과에 계속 다녀야 하고 약도 꾸준히 먹어야 한대. ”


“그러면 정신과약을 먹는 거야? 그러면… 엄마… 정신병자야?”

“정신병자? 맞네~ 맞아. 정신병자. 그래도 친구들한테 엄마 정신병자라고 말하고 다니진 말아 줘. 엄마 부끄러워.”


우울이든, 불안이든, 공황이든, 살아가는데 큰 불편함은 없었다. 피곤하면 좀 쉬고, 지친 금요일 밤엔 닭똥집튀김과 함께 맥주도 한 캔 마시고, 명상도 하고, 계획표도 만들어보고, 일기도 쓰고, 월요일 아침마다 새로운 다짐도 하고, 자고, 울고, 뛰어다니고, 할 수 있는 일, 해야 하는 일들을 쫓아서 하면 된다. 큰 불편함은 없었다. 나뿐만 아니라, 모두들 힘든 삶을 살아간다 생각했다. 매일매일이 행복하고 즐거운 날만 있지 않다는 걸 알기에. 어른이라면 어느 정도의 힘듦은 꾹 참고 살아가야 하기에. 누군가 날 부러워할 만한 삶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큰 어려움이나 큰 부족함은 없이.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 상황과 조건들 속에서. 난 너무도 잘 살고 있다 생각했다. 그런 내가 난생처음 정신병원에 간 이유는 감당하기 살짝 힘들었던 공황 증상 딱 한번 때문이었다. 비슷한 공황증상은 지난번에도 몇 번 겪어봤고, 별일 없었다. 그리고 난 확실히 우울하지도, 불안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공황에 허우적거리는 나의 모습을 본 아이들에게 설명해 주긴 힘들었다. 들이닥친 문제를 세련되고 멋지게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엄마로서 아이들을 위해 용기 냈다. 나 자신을 설득하기 위해 최대한 간단하게 생각해 봤다.

만약 얼굴 한가운데에 큰 뾰루지가 났는데, 굳이 병원에 안 가도 되지만 동네 피부과에 가서 처방받으면 빨리 나을 수도 있고, 흉도 안 남게 해주는 약 또한 처방받을 수 있듯이 전문가가 나에게 생각보다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다. 나는 모르는 무언가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별 큰일 아니란 것만 확인하러 가자는 결론이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바꿔 들었다.


처음 병원 예약을 위해 직접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한번 가고 잠깐 적막이다. 순간 끊고 싶어졌다.

왠지 병원 가는 걸 좀 더 고민해 봐야 할 것 같았다.

‘내가 병원에 갈 만큼 심각하진 않은데… ’

한번 더 신호음이 가고, 딸깍 소리와 함께 밝고 청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강동원(가칭) 정신건강의학과입니다~”

형용할 수 없는 힘이 느껴지는 매력적인 목소리를 다시 한번 더 듣고 싶었다.

“안녕하세요. 저 방문하고 싶어서요...” 그 목소리는 내가 전화를 바로 끊지 않게 만들었다.

“네에~ 저희 병원에 첫 방문이신가요?”

명확한 발음과 익숙한 대사로 묻는 목소리의 질문에 하나씩 천천히 대답하며 약속 날짜를 잡았다.

그리고 그 명량한 목소리는 마지막을 강조하며 덧붙였다.

“저희 병원은 진료 전 예약 확인 문자가 따로 발송 안되니, 잘 참고하시고, 이 날 뵙겠습니다!”

‘진료 예약은 완료됐지만, 충분한 시간을 더 줄 테니 여태껏 고민한 그 이상으로 괴롭게 생각해 보아라. 그래도 여전히 오고 싶다면, 네가 알아서 오든지 말든지.’

라는 뜻으로 들렸다. 예약한 날짜까지 열흘 남짓되는 시간 동안 똑같은 망설임은 반복됐다. 때때로… 떠오르면… 고민했다…

이내, 고민하는 게 귀찮아졌고, 그 전화 속 목소리의 주인공을 직접 보고 싶어졌다.

뇌리에 박힌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어떤 인상과 분위기일지 점점 더 궁금해졌다.

가까이에서 실제 육성을 들어보고 싶어졌다.


동네 지하철 역 바로 앞, 눈에 띄는 제법 큰 건물이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십 층짜리 건물의 가게명들을 훑어본다. 정신과가 두 개나 더 있다. 내가 전에 제쳤던 병원명들이다. 생각했던 것보다 정신과에 대한 수요가 많은가 보다. 함께 탄 사람들의 눈치 보며… 조심스럽게… 오 층을… 느지막이 누른다. 같은 층엔 세무서도 있고, 관리형 독서실과 학원들이 있다. ‘내가 오 층의 정신병원에 가는 걸 눈치채진 못 하겠지?‘ 엘리베이터에서 내딛는 발이 병원 쪽으로 바로 향하지 않는다. 엘리베이터 안 사람들 중 누구 하나 관심 없을 텐데도 괜히 뒤통수가 어색하다.

병원의 자동문을 열고 들어서자, 초록초록한 크고 작은 화분들과 속 시원하게 뻥 뚫린 도시뷰가 정면에 보인다.

그 큰 창문을 향해 앉아있는 오른편 데스크에서 바로 그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녕하세요~”

“… 안녕하세요. 저… 푸. 울. 비.입니다.”

“네에~ 잠시만 앉아서 기다리세요.” 그토록 머릿속으로 되새기던 목소리의 주인공이었다.

목소리와 외모에서는 통하는 점이 없었다. 이목구비들 하나하나 찬찬히 살펴볼 순 없었지만, 아무 말 안 하는 지하철에서 만난다면, 절대 상상할 수 없는 목소리였다. 교차점이 전혀 없어 보인다. 속인 사람은 없는데, 왜인지 허무하고 속은 기분이다.

난생처음 와 본 정신과 병원도 여느 병원 대기실의 풍경과 흡사하다. 좀 다른 게 있다면 편안하고 푹신한 소파가 아닌 각 잡혀있고, 제법 딱딱한 소재의 의자들이 벽에 등을 지고 일렬로 줄지어 있다. 모양과 크기, 색은 다양했고, 의자끼리의 간격은 작은 테이블이나 큰 손잡이로 조금씩 떨어져 있다. 어느샌가 입구에서 떨어진 가장 깊숙한 구석, 창가 쪽 식물들 가까이에 까지 빨려 들어가 서 있었다. 앉아있는 사람들 앞을 지나 혼자 서 있는 게 문득 부끄러웠다. 식물들 바로 앞에 위치한 의자에 앉았다. 삐쭉 튀어나온 고무나무 가지뒤에 숨기라도 하듯 나뭇잎 사이로 어깨를 비집고 넣어 앉았다. 클래식이 스피커에서 잔잔하게 나오고 있었다. 대기실엔 나보다 앞서 두 명이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다. 나이도 성별도 달랐고, 너무나 보통 사람 같았다. 왜인지 병원에 온 이유도 다 다를 것 같았다. 짐작건대, 대기실의 사람들 모두 서로를 궁금해하고 있었을 것이다. 분명 눈엔 보이지 않는 더듬이를 바짝 세우고 서로를 탐색하고 있었다. 순간, 병원의 자동문이 열리고 또 새로운 누군가가 들어왔다. 나 또한 목이 빠져라 뽑아내고 모든 감각을 세워 놓은 경계 태세였지만, 목 뒤를 특히 더 의식해 움직이지 않았다. 출입구 쪽을 쳐다보지 않았다. 왠지 쳐다보면 안 될 것 같았다. 눈동자에 힘을 주고, 시야를 최대한으로 넓혔다. 다른 이들의 움직임이 느껴지진 않았지만, 우리의 보이지 않는 더듬이 끝은 서로를 향해 바삐 움직였다. 나만 그런 생각을 하는 걸까? 대기실 안 저 사람들의 존재를 더욱더 태연하게 넘기려 노력한다. 사람이 많은 지하철에 오밀조밀하고 빽빽하게 있을 때와의 느낌과는 확연히 다르다. 그들과 분명 널찍히 떨어져 앉아있지만, 나에게 말도 걸지 않고, 눈길도 주지 않았지만,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어느 누구든 옆사람에게 서슴없이 대화를 시도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완벽한 타인으로 느껴지진 않는다. 비슷한 질병을 가졌다는 동질감이 있어서일까? 우리들 얼굴 한가운데 난 큰 뾰루지가 우습게도 다 똑같은 위치에 있을 거 같은 기분? 그리고 그 뾰루지를 서로에겐 보일 것 같은 느낌? 아니면 현재 우리가 함께 하고 있는 장소로 나약한 정신상태를 증명하는 것 같아서? 미치도록 상대방을 관찰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건강정신의학과 병원 대기실에 앉아있는 사람들의 익명성을, 초상권을 지켜주고 싶다. 그들이 원하던, 원치 않던 내가 기꺼이 그러고 싶다.


초반엔 아니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병원 대기실에 앉아 있는 시간이 좋아졌다. 사시사철 싱그러운 식물들 사이에 들어가 식물들을 세세히 구경한다. 매번 외울 듯이 집중해서 들여다보지만, 갈 때마다 달라 보인다. 아무래도 이 식물들을 관리하는 분은 베테랑 식집사인 듯하다. 어느 식물 하나 빠짐없이 잘 지내 보인다. 또 한 가지, 병원의 전화벨 소리가 들리면 너무 반갑다. 처음 전화해서 들었던 그 문장을 완벽한 소리로 또 들을 수 있으니까! 그리고 말 끝맺음마다 들어가는 문장의 마침표 같은 소리. 신기하다. 추임새라 표현할 순 없겠고, 따라 할 수도 없는 독특한 마무리는 들을수록 또 듣고 싶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더듬이는 여전히 세우고있고, 대기실 안의 초상권들을 지키고자하는 마음은 여전히 굳건하다. 내 얼굴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 건지, 그들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 노력하는 건지, 둘 다인건지, 그 정확한 이유는 영영 알 수 없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테지만, 그들에 대한 나의 기사도 정신은 변함없다.




**** 작가의 말 ****

정신과를 가게 된 연유를 궁금해하는 것보다 병원이 어떤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 병원을 선택한 기준과 섭취하는 약의 종류나 용량, 그리고 담당의에 대한 의문들이 추가 질문이었다. 주변에 사십 대들이 많다 보니, 나이 앞 숫자가 ’ 죽을 사‘로 되면 정신과에 가볼까 하는 생각을 한 번쯤은 해보는 것 같다. 100회도 넘게 정신병원 대기실에 가면서도 아직도 놀라는 건 나잇대가 참 다양해서 놀랍다. 보통 내과와 별반 다를 게 없다. 겉으로 언뜻 보기에 보이지 않는 질병을 가진 환자들이다. 나의 글을 보고 정신과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내 안의 용기 한 숟갈을 떠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