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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는 왜 윤리를 묻는가? 기술과 공동체 새로운 조건

5부 희망을 그리다

by 신피질

AI 시대가 열리면서 기술은 인간이 상상했던 속도보다 훨씬 빠르게 일상을 재편하고 있다.

데이터와 알고리즘은 이제 기업의 전략을 넘어 사회의 기본 질서와 개인의 삶까지 결정하는 힘이 되었고, 기술이 인간을 돕는 존재인지, 아니면 인간을 압도하는 존재인지에 대한 질문이 우리 시대의 중심에 떠오르고 있다.


그리고 그 질문의 핵심에는 언제나 ‘윤리’가 있다. 윤리는 단순히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도덕적 기준이 아니라, 기술이 인간을 넘어설 때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사회적 기반이다.


기술이 강해질수록 윤리는 더 중요해진다.

그 이유는 기술이 인간의 욕망과 악의를 증폭시키기 때문이다. 현실 세계에서는 타인의 시선, 법과 제도, 관습, 물리적 제약이 인간의 행동을 통제하지만, 사이버 공간에서는 이러한 자연적 규칙이 거의 작동하지 않는다.

익명성과 무한 복제, 무제한 확산의 속성은 인간의 충동을 그대로 드러나게 하고, 작은 악의도 AI의 도움을 받아 대량으로 확대된다. 따라서 AI 시대의 윤리란 선택 사항이 아니라 공동체가 붕괴되지 않기 위한 필수 안전장치다.


이 지점에서 기업의 역할을 살펴보면, 윤리가 왜 미래 경쟁력인지 더욱 명확해진다.

NVIDIA와 TSMC는 기술 기업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이들을 세계 정상으로 만든 힘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기술을 지탱하는 ‘비기술적 요소’ 즉 윤리적 기반이다. 장기 리더십, 투명성과 책임, 숨기지 않는 조직문화, 전문성 중심 의사결정, 고객 신뢰를 최우선으로 두는 구조는 기술보다 더 강력한 경쟁력이다.


기술은 모방할 수 있지만 윤리 기반의 시스템은 쉽게 모방할 수 없다.

반면 한국 기업들은 오너 중심 구조, 단기 성과우선, 문제 은폐와 보고 문화 같은 한계를 아직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모리스 창이 15년 전 한국 기업의 윤리 기반을 비판했던 것도 이러한 구조적 차이를 예견한 것이다.


실제로 최근 한국 기업에서 발생한 고객 정보 유출 사건은 이러한 윤리적 취약성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준다. SK텔레콤과 KT 등 주요 통신사에서는 고객 정보와 연결 데이터가 외부로 유출되는 사건이 반복적으로 발생하며, 기업의 관리 부실과 책임 회피 문제가 크게 지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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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 데이터는 현대 기업의 핵심 자산이자 신뢰의 기반인데, 이러한 사건이 반복되면 기업은 기술적 경쟁력과 상관없이 치명적 타격을 받게 된다. 기술은 강하지만 윤리가 약하면 기업의 미래는 언제든 흔들릴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한국의 취약성은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역사적·문화적 배경과 연결되어 있다.


서구는 2천 년 동안 윤리적 담론을 쌓아온 사회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덕 윤리, 칸트의 인간 존엄, 밀의 공리주의, 루소·하버마스의 공론장 철학까지. 그들의 역사는 권력보다 윤리, 효율보다 원칙, 성과보다 책임을 먼저 고민한 역사의 축으로 구성돼 있다


막스 베버가 1900년대 초부터 이미 ‘기업가의 윤리’와 ‘직업윤리’를 강조해 왔다. 베버는 근대 사회에서 기술과 관료제, 도구적 합리성이 인간을 압도할 위험을 경고하면서, 기업가와 기술자가 반드시 윤리적 책임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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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의 시민사회는 이러한 윤리 전통을 제도, 교육, 기업 문화 속에 편입하며, 윤리를 공론장에서 논의하고 사회적 기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반면 한국은 윤리 → 제도 → 기술 → 경제의 순서가 아니라, 경제 → 기술 → 권력 → 윤리의 순서로 근대화가 진행되었다. 전쟁과 산업화, 빈곤과 생존을 기반으로 한 근대화는 윤리를 사고의 중심이 아니라 부차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교육에서는 윤리가 토론이나 사고 훈련이 아니라 암기 과목으로 변했고, 기업에서는 윤리가 의사결정의 기준이 아니라 홍보 문구에 머물렀다. 이로 인해 윤리는 개인의 양심에 맡겨졌고, 사회 전체가 공유하는 ‘윤리적 기준’은 약해졌다.


그러나 AI 시대는 이러한 구조적 취약성을 더 이상 용납하지 않는다. 사이버 공간은 자연적 규제가 사라진 공간이며, AI는 인간의 충동을 자동화하는 도구이다. 기술이 인간의 속도보다 훨씬 빠르게 움직일 때, 공동체를 지켜주는 것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윤리적 기준이다. 윤리가 없으면 기술은 폭주하고, 기술이 폭주하면 공동체는 붕괴한다. 따라서 윤리는 기술의 적이 아니라 기술의 기반이다.



AI 시대의 윤리는 개인의 도덕을 넘어서 사회적 제도와 구조의 문제로 확장된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 보다 더 중요한 질문은, “어떤 제도를 설계해야 기술이 인간과 공존할 수 있는가?”이다. 기업은 윤리를 의사결정의 중심에 두는 구조를 만들어야 하고, 정부는 규제를 넘어 윤리 생태계를 설계하는 역할을 해야 하며, 사회는 윤리를 공론장에서 논의하고 합의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야 한다. 윤리는 도덕이 아니라 제도이며, 제도는 공동체가 지속되기 위한 가장 중요한 기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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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기술을 가장 빠르게 만든 사회가 아니라, 기술을 인간과 함께 작동시키는 윤리를 구축한 사회가 이길 것이다. 한국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은 기술 강국을 넘어 윤리 강국이 되는 길이며, 그 변화는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제도적 기반을 다시 세우는 노력에서 시작된다. AI 시대에 윤리를 다시 묻는다는 것은 결국 “우리는 어떤 공동체를 만들 것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묻는 일이다. 그 질문에 답할 때 비로소 미래는 새로운 가능성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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