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부 희망을 그리다 - 사람과 사회를 위한 경제
한국은 전쟁의 폐허 속에서 산업화를 이룩한 나라다. 짧은 시간에 달성한 경제성장은 세계가 놀라워한 기적이었지만, 그 기적의 이면에는 수많은 이름 없는 희생이 있었다. 중학교를 갓 졸업한 여공들이 하루 열다섯 시간씩 기계 앞에 앉아 유독가스에 노출되고, 손가락이 잘려도 다시 생산라인으로 돌아가야 했다.
산업재해는 은폐되었고, 해고된 노동자들은 가족의 생계를 위해 막노동판으로 내몰렸다. 경제는 성장했지만, 그 경제는 인간의 존엄을 희생시키며 작동했다. 사람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 되었고, 인간의 삶은 효율의 도구로 환원되었다.
오늘날의 한국 경제는 다른 형태의 불안을 안고 있다. 수출과 수입이 GDP의 절반을 넘는 세계적 개방경제 속에서 한국은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거대한 시장 사이에서 끊임없이 방향을 조정하고 있다. 두 나라의 패권 경쟁이 심화되면서 한국 산업은 점점 더 불안한 균형 위에 서게 되었다. 세계의 공급망과 환율, 기술 동맹의 변동이 한 개인의 일자리와 생계를 뒤흔드는 구조다. 기업은 사람보다 주가를 먼저 보고, 사람은 일터에서 안정감을 잃어가고 있다. 경제는 거대해졌지만, 인간은 점점 작아지고 있다.
문제는 성장만으로는 행복을 보장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도시의 편리함 속에서 인간은 서로를 모르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아파트라는 효율적 공간은 삶의 질을 높였지만, 동시에 관계의 여백을 없앴다. 이웃과의 정서적 연결이 사라지고, 사회적 대화의 장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경쟁이 일상의 구조가 되면서 사람은 서로에게 협력의 대상이 아니라 비교의 대상이 되었다.
과거 농촌 공동체가 지녔던 상호 돌봄의 정신은 사라지고, 경제의 언어는 완전히 ‘돈의 언어’로 바뀌었다. 돈이 인격을 대신하고, 돈이 없는 삶은 부끄러움으로 여겨진다. 인간의 가치가 소유의 크기로 측정되는 사회는 결국 불안정하다.
이러한 불안은 단지 물질적 문제가 아니라 문명의 방향성의 문제다. 효율과 속도, 경쟁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는 사회에서는 인간이 피로해질 수밖에 없다. 경제적 성공이 곧 인생의 성공과 동일시되는 구조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을 끊임없이 시장의 기준으로 평가받는다.
한국 사회는 물질적으로는 선진국이 되었지만, 정신적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피로한 나라가 되었다. 경제는 돌아가지만, 의미는 사라졌다.
사람 중심 경제의 반대편에는 비인간적 경제가 있다. 산업재해가 매일 발생하고, 기업은 은폐한다. 노동자는 교체 가능한 부품이 되고, 임산부는 배려받지 못하며, 해고된 가장은 생계를 잃고 절망한다. 기업 오너는 수백억의 배당금을 챙기지만, 직원의 임금은 거의 오르지 않는다. 사회적 약자는 경쟁에서 밀려나고, 그들의 고통은 ‘비효율’로 치부된다. 경제는 발전하지만, 공동체는 병들어간다.
이러한 현실은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일본 또한 정체된 풍요 속에서 청년들이 희망을 잃고, 노인들은 고립 속에서 살아간다. 미국과 유럽 역시 성장의 이면에 심각한 불평등이 자리한다. 세계 자본주의는 인간의 내면적 결핍을 보상하지 못하고, 사회적 신뢰를 무너뜨렸다. 이윤 중심의 시스템이 인간을 소모시키는 구조로 작동하는 한, 사람 중심 경제는 실현될 수 없다.
사람 중심 경제를 다시 세우려면 철학으로 돌아가야 한다. 존 롤스는 사회의 불평등은 오직 가장 불리한 사람에게 이익이 될 때만 정당화된다고 했다. 공정한 기회와 정의의 회복이 사람 중심 경제의 출발점이다. 아마르티아 센은 경제 발전의 목적을 인간의 역량(capability) 확장에 두었다. 그는 성장이 아니라 인간의 자유와 자율성을 경제의 기준으로 제시했다. 마사 누스바움은 경제의 진정한 성공은 사람들이 서로 돌보는 능력, 즉 공감의 회복에 있다고 보았다. E. F. 슈마허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며 거대 산업문명이 인간을 소외시킨다고 경고했다.
몇 년 전 하바드 교수의 마이클 샌들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교보문고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전반적으로 정의라는 것이 쉽게 판단할 수 없는 복잡한 내용이라는 것을 논증하며 철학적 관점에서 세밀하게 들여다본 책이었다. 내용을 깊게 들여다보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책이었지만, 한국의 많은 독자들이 공감했다. 즉 아직 한국은 철학적 담론이 사회 저변에 내재되어 있을 정도로 성숙한 사람들이 주변에 많이 있다. 그래서 좀 더 발전된 사회를 향한 가능성이 있는 듯하다.
이 철학들이 공통으로 말하는 바는 분명하다. 경제는 사람을 위한 것이어야 하며, 사람은 돈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가 지금 필요한 것은 기술과 효율의 경쟁이 아니라, 경제 시스템의 인간화다. 노동이 단순한 비용이 아니라 존중받는 가치가 되어야 하고, 기술 발전이 인간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방향으로 작동해야 한다.
AI 시대는 효율의 정점이지만, 동시에 인간성의 시험대이기도 하다. 기계는 계산하지만, 인간은 공감한다. 기계는 예측하지만, 인간은 의미를 만든다. 따라서 사람 중심 경제란 인간이 기술을 넘어설 마지막 가치의 영역이다. 그것은 단순히 복지나 분배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경제의 주체로 존중받는 사회의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경제는 돈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얼마나 자유롭고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는가의 문제다. 우리가 그 방향을 향해 나아갈 때, 비로소 경제는 인간의 얼굴을 되찾을 수 있다. 그리고 그때야말로 한국 사회가 진정으로 선진국이 되는 길이 열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