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호르몬 세로토닌, 꿀 수면 멜라토닌, 뼈건강 비타민 D
햇빛은 단순히 세상을 밝히는 빛이 아니다.
아침에 떠오르는 햇살은 우리 몸의 시계를 맞추고, 저녁의 어둠은 깊은 잠을 부른다.
태양은 매일 같은 자리에서 떠오르고 지지만, 인간의 몸은 그 빛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를 겪는다.
아침에 눈을 뜨고 커튼을 걷으면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
우리는 그저 따뜻하고 환하다고 느낄 뿐이지만, 사실 그 빛 속에는 우리 몸의 시계를 맞추고 마음을 안정시키는 특별한 힘이 숨어 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청색광(Blue light)이다.
햇빛에 포함된 청색광은 우리의 눈, 정확히는 망막 속의 특수 세포(ipRGC, 멜라놉신 세포)를 자극한다.
이 신호는 뇌 속 시계라 불리는 시교차상핵(SCN)에 전달되어, “지금은 낮이다”라는 메시지를 뇌 전체로 퍼뜨린다.
그 결과, 멜라토닌(수면 호르몬)의 분비는 억제되고, 대신 세로토닌(행복 호르몬)이 활성화된다.
세로토닌은 마음을 안정시키고 기분을 밝게 해주는 신경전달물질이다.
햇빛을 충분히 쬔 날은 왠지 모르게 활력이 돌고, 몸과 마음이 가볍게 느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하지만 세로토닌은 낮의 끝에서 또 다른 변신을 준비한다.
밤이 찾아오고 청색광이 사라지면, 세로토닌은 멜라토닌으로 전환된다.
트립토판 (단백질) + 햇빛 = > 세로토닌 => 밤 + 멜라토닌
멜라토닌은 뇌 속 송과체에서 분비되어, 우리 몸을 어둠과 휴식의 모드로 바꾸어준다.
졸음이 밀려오고, 깊은 잠으로 들어가는 과정은 낮 동안 쌓아둔 세로토닌의 덕분이다.
즉, 낮에 쬔 햇빛은 단순히 그 순간의 기분을 좋게 할 뿐 아니라, 밤의 깊은 숙면까지 연결해 주는 다리 역할을 하는 셈이다.
만약 햇빛, 특히 청색광이 부족하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북유럽의 긴 겨울처럼 어두운 계절에는 세로토닌이 잘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로 인해 기분이 가라앉고, 계절성 우울증(SAD)이라는 현상이 나타난다.
그래서 치료 방법으로 “광치료(light therapy)”가 쓰이는데, 인공적으로 강한 청색광 스펙트럼을 제공하여 세로토닌 활성을 돕는다.
아침 햇살을 받으면 하루 시작을 행복하게 할 수 있다. 특히 겨울에 모처럼 출근을 늦게 할 때 맑은 아침 햇빛으로 상쾌한 기분이 든다. 동시에 아침 햇살은 밤의 수면을 유도하는 멜라토닌의 분비를 억제한다. 낮에 멜라토닌이 나오면 졸음과 무기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낮 동안 햇빛을 충분히 받은 사람일수록 밤에는 더 쉽게 잠들고, 깊은 숙면을 취할 수 있다.
결국 좋은 수면은 저녁의 문제가 아니라 아침 햇살에서부터 준비되는 셈이다.
햇빛은 또 다른 방식으로 우리 몸을 움직인다. 자외선 B(UVB)는 피부에 닿으면, 7-디하이드로콜레스테롤이라는 물질을 비타민 D의 전구체로 바꾼다.
이 전구체는 간과 신장을 거쳐 활성형 비타민 D로 바뀌고, 이렇게 만들어진 비타민 D는 칼슘과 인의 흡수를 도와서, 뼈를 단단하게 하며 면역세포의 기능을 강화한다.
햇빛이 단순히 따스함을 넘어, 뼈와 면역의 건강을 지키는 의학적 처방인 셈이다.
종종 헷갈리는 두 단어가 있다.
멜라닌과 멜라토닌. 이름은 비슷하지만 성격은 전혀 다르다.
멜라닌은 피부와 눈동자, 머리카락에 존재하는 색소로 자외선을 흡수해 DNA 손상을 막아준다.
우리 피부가 그을리는 것은 멜라닌이 늘어나면서 몸을 보호하기 위해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반면 멜라토닌은 뇌 속 송과체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해가 지고 어둠이 찾아올 때 늘어나면서 체온을 낮추고 몸을 수면 모드로 전환시킨다.
멜라닌이 낮의 방패라면, 멜라토닌은 밤의 신호등이다.
눈동자 색 역시 햇빛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동양인의 검은 눈동자는 멜라닌이 풍부해 자외선을 더 많이 흡수하고 산란을 줄인다.
마치 자연이 준 선글라스를 낀 것처럼 강한 햇빛 속에서도 망막이 덜 손상되는 것이다.
반대로 푸른 눈을 가진 유럽인은 멜라닌이 적어 빛에 민감하고, 백내장이나 황반변성 같은 눈 질환에 더 취약하다. N피부색 역시 같은 원리로, 멜라닌이 많은 피부일수록 자외선에 강하고, 적을수록 약하다.
이런 차이는 문화에도 반영되었다.
한국이나 일본에서는 오랫동안 햇빛을 피하는 문화가 강했다.
하얀 피부가 미의 기준이었고, 양산과 모자는 햇빛을 차단하는 도구였다.
그러나 독일을 비롯한 북유럽은 정반대다. 긴 겨울과 흐린 날씨로 인해 햇빛 부족이 일상이었고, 비타민 D 결핍은 건강을 위협했다.
그래서 여름이면 사람들은 가능한 한 많은 피부를 드러내고 태양을 맞이했다. 독일 공원이나 호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체족(FKK) 문화는 단순한 자유의 상징이 아니라, 햇빛 부족을 보완하려는 생활 지혜였다.
( 공원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북 유럽인들 )
전신 피부가 햇빛을 받을 때 비타민 D 합성이 극대화된다는 점에서 과학적 근거도 있었다.
하지만, 햇빛은 축복이자 위험이다. 적당히 받으면 비타민 D 합성과 세로토닌 분비, 그리고 숙면으로 이어지는 멜라토닌 조절까지 수많은 혜택을 준다.
하지만, 지나치게 쬐면 피부 노화와 주름, 피부암 위험이 커지고, 눈 질환을 부른다.
의사들은 하루 15분에서 30분 정도 아침 햇빛을 받는 것을 권장한다.
나머지 시간에는 모자, 선글라스, 선크림으로 자신을 지켜야 한다.
수면을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핵심은 낮 동안의 햇빛이다. 아침에 햇살을 받으며 세로토닌을 충분히 생성해야 저녁에 멜라토닌이 원활히 분비된다.
낮에는 규칙적으로 활동하고 햇빛을 쬐어야 하고, 저녁이 되면 강한 조명과 스마트폰 화면을 피해야 한다.
방은 서늘하고 어두워야 멜라토닌이 잘 분비되어 깊은 수면으로 이어진다.
좋은 수면은 결코 밤의 문제가 아니라, 낮 동안 우리가 햇빛을 어떻게 맞이했는지에 달려 있는 것이다.
햇빛은 인류에게 두 얼굴을 보여준다. 동양인의 검은 눈, 유럽인의 푸른 눈, 독일인의 나체 문화는 모두 햇빛에 적응한 서로 다른 방식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균형이다. 아침 햇살은 기분을 밝히고, 저녁의 어둠은 숙면을 선물한다.
햇빛은 오늘도 우리에게 묻고 있다.
“너는 나를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