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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직의 기술, 면접은 실험실이다

3-6. 나를 설득하는 실험실

by 일이사구

민방위 훈련을 갔을 때였다.


군복을 풀세트로 입고 온 사람이 있었다.


너무 오래된 일이라 흐릿한 기억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선명하다.


“어디 작전에라도 나가는 줄 알았네…”


이상하게도 그 장면이,

회사에서 정장 차림이나 유난히 정돈된 모습의 동료를 볼 때마다 떠오른다.


면접 가는 거구나.


다들 안다.

말 안 해도 냄새가 난다.


공채나 영업직이 아니고서야,

양복 입고 면접 보러 가는 경우는 드물다.


그래서 더 티가 난다.


오전엔 양복 입고 출근했다가,

오후 반차 내고 조용히 사라진 사람.


그날 저녁, 장례식장 간다고 둘러댔지만,

그건 말 그대로 이직의 의지가 풍겨 나오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동료 중 누가 정장을 입고 오면,

농담 삼아 이렇게 묻곤 했다.


“오늘 면접이야?”


서로 웃고 넘기지만,

은근히 다들 진지하게 듣는다.


눈치는 또 내가 빠르다.


“팀장님, 저 말씀 좀…”

“어, 이직하니?”


지금 회사보다 좋은 곳이라면

말없이 보내준다.


“남은 기간 편하게 있다가 가.”


그 말 뒤엔 신뢰가 있다.


그간 쌓인 태도, 성실함, 소통의 흔적들.


잡고 싶은 사람이라면 붙잡는다.


예전엔 그런 친구를 붙잡느라,

집 앞에 세 번 찾아간 적도 있었다.


울먹이던 얼굴이 아직도 생생하다.


준비가 되면 이직하겠다? 그건 허상이다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이직은 준비가 되면 하면 된다고.

자소서, 경력기술서, 포트폴리오만 준비하면 된다고.


그 말이 틀린 건 아니다.


하지만 너무 늦게 시작하면, 준비조차 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이직을 준비하는 시점은

대부분 이미 지쳐 있거나, 조급할 때이기 때문이다.


몸과 마음이 무너진 상태에서,

무엇을 잘 준비한다는 건 쉽지 않다.


그래서 나는 말한다.


이직할 생각이 없어도,

면접은 꾸준히 보라.


감각을 키우는 연습,

그게 최고의 기술이다.


면접은 경쟁이 아니라, 감각이다

사람들은 면접을 경쟁이라고 생각한다.


누가 더 많은 프로젝트를 했느냐,

누가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느냐.


물론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실제로는 인상 싸움에 가깝다.

팀에 잘 섞일 것 같은가?

까다롭지 않고 유연한가?

설명을 명확히 할 수 있는가?

우리가 가진 문제를 해결할 만한 사람인가?


이건 연습 없이 되지 않는다.


결국, 이직의 기술은

회사를 옮기는 방법이 아니라,

나 자신을 증명하는 언어를 찾는 과정이다.


특히 '내가 어떤 사람인지' 말로 풀어내는 일은

실전 경험이 쌓여야만 익숙해진다.


면접은 평가가 아니라, 실험이다

예전엔 면접이 “판가름 나는 자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반복할수록 달랐다.


면접은 내가 통과하기 위한 테스트가 아니다.

오히려 실험실이자 거울방에 가깝다.


어떤 설명이 더 낫게 들릴까.

어떤 표정, 어떤 목소리로 말하는지가 그대로 비친다.


그 안에서만, 내가 가진 진짜 언어가 드러난다.

말이 막히는 순간

사례가 잘 정리되지 않는 순간

내가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질문들


이 모든 순간이

나를 더 잘 알게 해주는 데이터다.


사람들이 착각하는 게 있다.


회사만 나를 면접 보는 것이 아니다.

나도 회사를 면접 본다는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


특히 면접관 중에서

앞으로 당신의 상사가 될 사람을 잘 살펴봐라.


회사 생활은 엄밀히 말하면 계약,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괜히 주눅들 필요는 없다.

오히려 확인이 필요한 부분은 과감히 물어야 한다.


실패처럼 느껴진 면접조차,

다음 시도에 대한 힌트를 남긴다.


경력직 자소서와 헤드헌터 이야기

경력직에게 “자기소개 500자”를 요구하는 순간,

마음이 식는다.


경험과 기술을 말해야 할 자리에

글자 수 제한이라니.


지원자가 많다 해도,

모두에게 작문을 시키는 건

선발이 아니라 탈락 설계다.


사람은 서류가 아니라 대화에서 보인다.


인연이 되지 않을 곳이라면,

내 이야기를 굳이 들려줄 이유도 없다.


그 절차는

순응하는 사람만 고르려는 방식처럼 보였다.


헤드헌터를 통해서도 비슷한 일을 겪는다.


간혹 그들의 포맷에 맞춰

서류를 그대로 옮겨 적어 달라는 요청이 온다.


이직 경험이 적은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응하지만, 나는 하지 않는다.


지원자가 모든 자료를 준비해야 한다면,

헤드헌터의 실질적 기여는 무엇일까?


그럴 바엔 차라리 직접 지원하는 편이 낫다.


자소서가 아니라, 말의 기술이다

이직의 기술은 사실 문서보다 대화에서 갈린다.


자소서나 경력기술서는 어쩌면 형식일 뿐이다.


진짜 중요한 건,

면접장에서 누군가가 던지는 질문에

내가 어떤 표정으로, 어떤 속도로, 어떤 단어를 고르는가.


그리고 그건,

꾸준히 면접을 보지 않으면 생기지 않는다.


이직할 생각이 없어도, 나는 면접을 봤다

나는 회사를 다니는 동안에도,

이직을 준비하지 않아도 면접은 의도적으로 봤다.


마음에 들든 안 들든

제안이 오면 무조건 본다.


그건 너무 좋은 실습장이기 때문이다.

회사의 분위기를 공짜로 구경할 수 있다.

음료도, 주차권도, 심지어 면접비까지 주는 곳도 있다.

음료조차 안 준다면, 지원자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다.

사무실도 둘러보고, 사람들의 표정도 본다.

떨어져도 상관없다. 마음의 여유는 넘친다.


이 경험은 돈 주고도 못 배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감각을 유지해 준다.


면접은 나를 설득하는 훈련이다

이 경험은 업무에도 도움이 된다.


내가 나의 경험을 말하고,

상대의 표정을 보며

실시간으로 반응을 체크하는 훈련.


이보다 좋은 실습장이 없다.


자꾸 하면, 중독된다.

주의하길 바란다.


내가 나를 증명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은 단순히 스펙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다.


면접에서 실패했던 순간들을 돌아보면,

대부분은

왜 내가 여기에 맞는 사람인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명확히 말하지 못했을 때였다.


이직이 잦으면 불리하다는 통념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 경험 속에서 배운 것과 성과를 정리해

지금 회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방향으로 설득했다.


그 순간, 불리함은 오히려 강점이 됐다.


전략이 아니라 믿음에서

이직은 전략이 아니라,

결국 내 이유에 대한 믿음에서 출발한다.


전략은 머리로 세우지만,

믿음은 몸을 움직인다.


스펙을 나열하는 데서 멈추지 마라.

면접에서는 당신의 언어로,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줘라.


그래서 나는 이직을,

전략이 아니라 신념의 기술이라 부른다.


결국, 이직의 기술은

내가 나를 믿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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