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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와 이직, 준비와 결단 중 무엇이 먼저일까

3-5.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by 일이사구

퇴사와 이직.


준비가 끝나기를 기다렸지만

그 순간은 오지 않았다.


하루가 지나면 또 다른 이유가 생겼다.

언젠가, 올해 안엔, 이번 프로젝트만 끝나면...


그렇게 다음 시즌을 기약하는 일이 습관이 됐다.


하지만 그때마다

하나는 계획서에 적히고, 하나는 마음속에 쌓였다.


“이제는 정말 나가야 할 것 같은데”라는 감정이었다.


계획과 실행 사이에는 늘

이상하게도 감정 하나가 비어 있었다.


두려움이라고 불러도 좋고,

확신 없음이라 해도 좋다.


어쨌든, 나는 준비가 끝났다는 감정을

단 한 번도 느낀 적이 없었다.


사람들은 퇴사를 이야기할 때,

대개 준비라는 말을 꺼낸다.


“준비가 안 됐잖아.”

“지금 나가면 망해.”

“좀 더 다녀보자.”


그 말들은 한동안 가슴속 어딘가를 무겁게 눌렀다.

그리고 그 말에 스스로를 납득시켰다.


안전하다는 착각은 그렇게 깊어졌다.


“지금은 아니야.”

그 한마디가 나를 다시 회사로 돌려보냈다.


계산의 함정

늘 생계에 대한 준비가 걱정이었다.


소득 없이 3년을 버틸 수 있는 금액을 계산했고,

창업을 한다면 얼마가 필요할지 따져봤다.


시장조사도 했다.

이 아이템은 가능성이 있을까?


하지만 조사할수록 경쟁자가 있었고,

레드오션이거나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들이 대부분이었다.


문제는, 계산이 계획을 돕는 도구를 넘어

실행을 미루는 핑계가 될 때다.


재정 시뮬레이션은 늘

“조금만 더 모으면 안전하다”는 결론으로,


시장 조사는

“아직 경쟁이 치열하다"는 이유로 나를 붙잡았다.


계산은 길을 여는 도구가 아니라,

지금을 묶어두는 족쇄였다.


숫자는 차갑지만,

그 숫자를 바라보는 마음은 언제나 안전을 원했다.


그리고 그 안전이야말로,

결정을 늦추는 가장 완벽한 이유였다.


문제는,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너무 늦으면 시행착오조차 겪어볼 기회가 없다.


나는 확신했다.

지금 이 자리가 안전하다고.


“지금처럼 벌면 한 달에 얼마를 저금할 수 있고,

퇴직할 때쯤이면 준비돼 있을 거야.”


아니면 이직을 해볼까.

아직은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을 거야.


경력소개서를 열어두고,

더 좋은 자리가 있기를 기대하며 하루를 보냈다.


그런데 막상 제안이 와도,

“이게 지금과 뭐가 다른 거지?”


그 질문이 며칠간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고

결국은 거절했다.


생각해 보면, 계획은 늘 구체적이었다.

재정 시뮬레이션

이직 시장분석

사이드 프로젝트 구상

필요한 기술 리스트와 학습·실행 계획


하지만,

그 계획을 아무리 잘 세워도,

정작 중요한 감정은 설계되지 않았다.


나는 늘 준비만 했을 뿐,

결정을 밀어줄 감정은 없었다.


준비된 사람은 없었다.

다만 결정할 감정이 준비된 사람이 있었을 뿐이다.


기회는 이상하게도

시뮬레이션 끝에 오지 않았다.


오히려 결정한 이후에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엔 어설펐다.

불안했고, 후회도 했다.


밤마다 계산기를 두드리며

스스로를 달래야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움직이고 나서야,

이전에 보이지 않던 풍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상한 말이지만,

몸이 먼저 가고, 감정이 나중에 따라온다.

그때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결국, 퇴사나 이직은 정답을 찾는 일이 아니라,

선택과 감정의 합으로 만들어지는 행동이다.


기회는 준비 끝에 오지 않는다.

때때로 불완전한 결단 위에 놓인다.


그리고 그 불완전함을 감당하는 것이,

어쩌면 커리어 전환의 본질이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그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움직이기로 마음먹은 감정이 먼저였는가,

아니면

계획만 완벽히 해두고 감정을 눌러놨는가다.


감정이 준비됐을 때,

비로소 몸도 움직일 수 있다는 걸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구독이 먼저냐, 좋아요가 먼저냐. 둘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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