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기록은 나중이고, 행동은 지금이다
퇴사 이후 생계는 생각보다 빨리 현실로 다가온다.
요즘 나는 롯데리아에 자주 간다.
데리버거 세트를 시킨다. 작은 버거와 감자튀김, 탄산음료 한 잔.
계란 프라이를 하나 더하면 그게 한 끼가 된다.
요즘 같은 물가에 이 가격으로 한 끼를 해결하는 일은,
내게 작은 기적이다.
가까운 거리는 걷고, 날이 덥지 않으면 버스는 타지 않는다.
카페에서는 쿠폰으로 아메리카노를 사이즈 업한다.
사소한 선택이 고정비를 줄인다.
나름의 생존 전략이다.
누군가는 말할지도 모른다.
“그럴 거면 집에 있지 왜 나가냐?”
일리가 있다.
그래도 나는 아침에 꼭 밖으로 나온다.
책을 읽든, 글을 쓰든, 누구를 만나든,
오늘을 바깥의 시간으로 여는 게 나한테는 중요하다.
의미 없이 하루를 흘려보내면, 마음이 먼저 갇힌다.
회사를 그만둔다는 건, 매달 들어오던 고정 수입이 끊긴다는 뜻이다.
얼마를 벌었는지가 핵심이 아니다.
문을 나서는 순간, 통장 잔고와 보험료, 가족의 시선이
마음에 무게를 얹는다.
더 무서운 건, 시간이 지나도 달라지지 않을 것 같은 감정.
끝나지 않을 듯한 초조함과 불안의 그림자다.
그 감정은 과거를 끌어와 후회로 바꾼다.
“그때 그냥 버틸 걸…” 하는 생각이
숫자보다 더 무겁게 남는다.
그럴 때면, 집안의 사소한 말이 쉽게 커진다.
“이번 달 카드값은 어떻게 하지?” 같은 말이
서로의 마음을 긁는다.
눌러둔 감정이 한꺼번에 올라오고,
우리는 다시 스스로를 탓한다.
내가 잘못한 걸까? 왜 이렇게 된 걸까?
사실 이런 감정은 처음이 아니다.
예전에 임금 체불로 회사를 떠났을 때,
불안은 절망으로 번져 앞이 막힌 듯 버거웠다.
그런데 이번은 다르다.
이미 한번 겪어본 길이라, 이번에는 훨씬 담담하다.
불안은 여전하지만,
이제는 그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법을 배운 것이다.
위로와 조언은 귀하다.
다만 생계 앞에서는 쉽게 가벼워진다.
선의의 말이라도, 현실의 무게를 덜어주긴 어렵다.
나라고 다르지 않다.
다만 조금이라도 달라지려는 쪽을 택하려 한다.
나는 그동안 글쓰기, SNS와 거리가 멀었다.
보안과 프라이버시에 민감해 일상을 드러내는 게 불편했다.
그래도 요즘은 작게나마 시작했다.
하루를 계획하고, 글 한 페이지를 쓰고, 30분이라도 걷는다.
그러면 생각보다 시간이 빨리 흐르고,
잡생각이 줄어든다.
그 안에서 의외의 즐거움도 나온다.
조직을 이끌 때보다,
얼굴 모를 독자들과 글로 만나는 지금이 더 가깝다.
많은 이들이 잠깐의 해방감 뒤에 불안을 마주하고,
다시 생계를 위해 방향을 재조정한다.
돌이킬 수 없는 과거를 곱씹기만 하면
남는 건 한탄뿐이다.
거기서 배우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땐 방향을 다시 잡을 기회마저 사라진다.
그래서 이번에는 다르게 해보려 한다.
값싼 점심이면 어떻고,
누가 불러주지 않아도 상관없다.
내 삶의 방향은 내가 세우고,
그 안에서 할 일은 내가 찾는다.
그리고 다른 방식으로
세상과 만나는 법을 계속 배울 것이다.
기록은 나중이고, 행동은 지금이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말은 하나다.
당장 해야 할 일을 만들자.
작게 시작해 하루를 채워나가자.
자신을 파악하고, 하고 싶은 일을 나열하고,
그걸 캘린더에 넣어보자.
그러다 보면
생각지 못한 즐거움이 문을 두드린다.
과거로 돌아가려 애쓰지 말자.
그 길을 스스로 선택했던 이유를 묻고,
오늘의 발걸음으로 대답하자.
하루를 생각만으로 채우지 말고, 작은 행동들로 가득 채우자.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러나 그 끝에서 다른 세상이 보일 것이다.
지금은 위기이자 기회다.
오늘 배우지 않으면, 나중엔 더 비싸게 배우게 된다.
언젠가, 벤치에 앉아
아무 일도 없이 시간을 흘려보내는 자신을
발견하고 싶지 않다면, 오늘 할 일을 오늘 하자.
결국, 내일을 바꾸는 힘은
오늘의 작은 행동뿐이다.
기록은 나중이고, 행동은 지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