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명사가 아닌 동사로 살아가기
늘 답변하기 어려운 질문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동료들에게 가볍게 물어봤다.
그들의 답 속에서 내가 찾지 못한 힌트를 얻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직업이란 게 뭐라고 생각해요?”
“회사를 떠난 뒤엔 어떤 일을 하고 싶나요?”
“뭐 하고 싶은 거, 자신이 잘하는 거… 정리해본 적 있나요?”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의외였다.
“시골 가서 농사라도… 고구마를.”
“하하 왜 이러십니까. 제가 뭘 잘못한 거라도…”
“직업이라뇨?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정리해고 계획이 있나요? 제 이름이 올라가나요?”
그때 알았다.
이 질문은 쉽게 꺼내면 안 된다는 걸.
그리고 다들 너무 바쁘게 살아서,
깊이 생각할 겨를조차 없었다는 것도.
상대는 적잖이 당황했고,
나도 괜히 불편했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면 이해가 된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그런 질문을 받았다면,
먼저 불안을 떠올렸을 것이다.
“당신은 무슨 일을 하세요?”
처음 만난 자리에서 가장 자주 오가는 질문이다.
나는 늘 직함이나 회사 이름으로 대답해왔다.
마치 그것이 곧 나인 것처럼.
그런데 직장을 떠나는 순간, 그 답이 사라졌다.
명함이 없으면 나를 설명하기가 불편해진다.
심지어 스스로에게 물어도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직장은 나의 일부일 뿐인데,
나는 그 이름을 정체성의 전부처럼 붙잡고 있었다.
회사를 떠난 나는 무엇으로 나를 설명할 수 있을까.
사전은 직업을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하는 일”이라고 정의한다.
하지만 현실 속 직장인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어디 다닌다.” “나는 과장이다.”
어쩌면 우리가 명함과 직함에 집착하는 이유는
자신을 증명할 다른 근거가 없다고 느끼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사회는 직분으로 사람을 구분하고,
우리는 그 언어 속에서 자신을 설명한다.
직함은 명사이고, 행동은 동사다.
명사로 불릴 땐 사회의 언어 속에 있었지만,
동사로 살아갈 땐 나만의 언어로 존재하게 된다.
‘과장’이라는 직업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그건 회사가 붙여준 이름표일 뿐이고, 간판이 곧 정체성은 아니다.
직업은 생계를 넘어,
내가 세상과 연결되는 방식이자,
내가 택한 행동의 총합이다.
나는 한때 컨설턴트였다.
문제를 분석하고, 해답의 구조를 설계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스스로 생각하게 만드는 질문”을 던졌다.
부장이 아니라, 나는 ‘문제를 푸는 사람’이었다.
조직장이 아니라, ‘관계를 새로 설계하는 사람’이었다.
직업명은 바뀌어도,
내가 반복해온 행동은 여전히 나를 말해준다.
결국 직업은 설명의 도구일 뿐, 나 자체는 아니다.
내 친구도 그랬다.
늘 자신을 '영업'이라고 불렀지만,
사실 그가 진짜 잘하던 건 사람들의 마음을 읽어내는 일이었다.
지금은 회사 밖에서도, 그 재능으로 살아간다.
이름표는 바뀌었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이름표가 떨어지면 공허함이 찾아온다.
하지만 직업은 간판이 아니다.
직업은 내가 매일 어떤 행동을 이어가며 살아가고 있는가에 가깝다.
명사로 살 땐 언제나 자리를 지켜야 하는 사람 같았다.
그러나 동사로 정의하니, 어디서든 움직일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기준을 새로 세웠다.
연봉이나 직급, 회사 이름이 아니라,
앞으로 어떤 행동을 계속 이어가고 싶은가.
그 행동이 유지된다면,
직업의 간판이 달라져도 흔들리지 않는다.
첫째, 직함(명사)에 묶이면 선택지가 좁아지지만
동사로 정의하면 훨씬 유연해진다.
둘째, 내가 반복해 잘하는 행위는
결국 시장에서 가치를 만들고,
돈을 벌 수 있는 직업이 된다.
셋째, 잘하는 일을 반복하면 자신감이 쌓이고,
그 힘이 지속성과 성장을 이끌어 한계를 넘어설 수 있게 한다.
내가 반복해온 행위 속에 내 안의 성공 패턴이 숨어 있다.
결국 필요한 건, 내가 걸어온 길을 찬찬히 되짚어보는 일이다.
그 안에는 내가 쌓아온 지식과 경험,
그리고 반복된 패턴이 담겨 있다.
내가 무엇을 잘하고, 어디서 자주 멈추는지.
어떤 길은 열려 있고, 어떤 길은 막혀 있는지.
이 조각들을 다시 이어붙여 나만의 지도를 그려보는 것이다.
그 지도가 있어야, 다음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다.
직장은 사라져도, 내가 해온 행동은 남는다.
그 행동이 나를 다시 정의한다.
남이 정해준 이름 대신,
내가 선택한 언어와 행동으로 나를 설명하는 것.
그 순간부터 직업은 간판이 아니라,
내 삶의 서사가 된다.
“직장을 떠난 나는 무엇인가.”
그 답은 어쩌면, 이미 당신이 반복해온 ‘행동’ 속에 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