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에 놀러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함께하는 즐거움

by 또는

예전에는 몰랐다. 누군가의 방문이 이토록 즐거울 줄은.


처음 집을 짓고 우리집은 그야말로 아이들의 집합소였다. 당시 일했던 곳이 아동전집을 전문으로 판매했던 곳이었던 터라 직장동료들이 다 비슷한 또래의 엄마들이었고 큰아이가 초등학교를 가고 나서는 같은 학년의 친구들과 엄마들이 자주 드나드는 사랑방 같은 곳이었다.

그때가 아마 우리의 최전성기 시절이었을 것이다. 넓은집에 남부러울 거 하나없는 누군가 우리집 하얀 벽에 낙서를 한다한들 아무렇지도 않던 성모마리아였던 시절.


그 시절이 그리 길지 못했던 건 정권이 바뀌고 나서였다. 정치에 진심이었던 나는 나의 소망과 다르게 정권이 형성되자 깊은 절망에 빠졌다.

도올선생이 깊은 겨울잠에 빠져 눈을 떴을 땐 봄이 와있길 소망한다고 하셨던 것처럼 나도 깊은 겨울잠을 자야했다.

코로나보다 더한 혹한기였다.

사람이 싫었고 가족이라도 만나기 싫을 정도였으니 나의 절망감이 어느정도였는지 가늠할 수도 없었다.

그 덕분에 인간관계도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고 내가 위로를 받을수 있는 사람만 만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년의 겨울잠을 자고 나서야 오지 않을거 같던 봄이 진짜 왔다.

그동안 바깥생활을 거의 안했던 탓이었는지 요즘은 좀처럼 나가고싶은 마음이 들지않았다.

그래서 이번 여름휴가는 지인의 방문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정말 오랜만의 방문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누군가의 방문이 이렇게 반가울 줄은.


큰언니가 조카 둘과 오랜만은 아니었지만 나의 휴가의 첫문을 열었다. 가장 친했던 친구가 시내로 전학가서 외롭게 지내던 둘째는 까칠한 누나와는 너무도 다른 형을 만나고 좋았는지 언니와 조카들이 올라가고 나서도 매일밤 보고싶다며 울어댔다.

그나마 다행히 언니네가 올라가고 난 뒤 제주에서 만났던 귀한 인연이 육지에 이사한 뒤 제주로 여행을 오면서 우리집에 방문하기로 했다.

아이는 아이를 만나야 가장 아이다울 수 있다는 걸 새삼 느꼈다. 또래의 남자아이들과 만나면서 둘째는 다시 활력을 찾았고 첫째는 예전의 만났던 친구인데도 사춘기가 온건지 서먹해했다.

아이가 셋인 총 5인 가족인 지인은 우리집에서 자고 가라고 해도 극구 민폐라며 거절을 하더니 집 옆에 있던 펜션에 숙박을 잡았다.

잘도 좋은사람이라 피해주는게 싫었던 터지만 나는 오랜만의 지인 방문이 반가워 다음 날은 꼭 자고 가라고 했고 아이들의 성화에 마지못해 지인가족은 우리와 함께 잠이 들었다. 집이 넓은 탓도 있었고 우리 가족 해봐야 셋만 있으니 누가 와서 함께 머문다는 느낌이 가족이 더 생긴마냥 든든하고 좋았다.


'좋은 벗과 함께 한다는건 이토록 즐겁고 감사한 일이구나'


내 마음에 봄볕을 맞이하고 피어오르는 새싹을 발견했다.

큰언니가 와서 동생의 안위를 걱정해준 마음과 귀한인연의 발걸음이 겨울잠을 자고 있었던 나에게 잔잔한 노크로 마음의 문을 열게했다.


귀한 인연은 나에게 이런 선물을 주고서도 미안했던 건지 선물을 남겨뒀다며 찾아 보라고 했다. 나는 도대체 선물이 무엇인지 궁금하면서도 도대체 언제 선물을 투척하고 갔던건지 생각보다 빠른 행동력에 감탄을 하고 있었다.

집이 넓은건지 내가 둔한건지 도저히 찾을수 없다고 하자 알려준 장소에는 급하게 제작되어진 봉투에 정성스럽게 쓰여진 편지글이 있었고 봉투 안에는 심사임당님께서 두분이나 웃고 계셨다.


'세상에나.무슨 돈을 이렇게 많이 주고 간거야.'


돈을 주고 간 마음이 오히려 내가 미안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래 이런 사람이었지. 내가 제주에서 잠깐 만났지만 너무 좋은 사람이라 여긴 인연.


나는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는편이라 혼자서도 씩씩하게 잘지내는 편이었지만 역시나 사람의 정은 사람을 살게 만드는 것이었다.


형바라기가 된 둘째는 시도 때도 없이 형에게 전화를 해댔다.

마음좋은 형은 어느 날 아침 둘째와의 통화에 바로 짐을 싸서 제주로 내려왔다. 비행기표가 너무 싸서 라는 신박한 이유와 함께.

둘째는 형과 자석처럼 붙어 다녔고 나는 조카의 마음이 고마웠다.

큰언니는 집에서 잔소리만 해대는 아들이었기에 민폐를 예상한다며 조카를 공항에 데려다주고 오는 차안에서 언니가 보낸 선물을 또 그렇게 받았다.


"사람이 누굴 만나고 싶어도 돈때문에 다 부담이 되서 만나기 힘든데 조카 뒷바라지 한다고 고생했다."


조카가 와서 둘째와 좋은 추억을 만들어줘서 고마웠는데 언니는 또 그렇게 나에게 선물을 주었다.

이토록 선물같은 집에서 선물같은 사람들이 와주다니 나는 정말 복이 많은 사람이구나.



나는 그동안 그리웠던 사람의 정을 다시 느끼며 이번 여름을 조용히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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