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불가능성과 이별의 필연성: 정신분석적 시선으로 읽는 『배정원의 사랑학 수업』
환상의 장막 너머
정신분석 상담실에서 만나는 내담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종종 라캉의 "성관계는 없다(Il n'y a pas de rapport sexuel)"는 명제를 떠올린다. 이 수수께끼 같은 문장이 『배정원의 사랑학 수업』을 읽는 동안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았다. "아름다운 이별은 환상이다"라는 저자의 단언은, 어쩌면 라캉이 말한 근본적 불가능성의 다른 표현이 아닐까.
라캉에게 있어 '성관계는 없다'는 것은 두 주체 사이의 완전한 합일, 완벽한 소통이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우리는 각자의 무의식적 환상 속에서 상대를 욕망하지, 실재하는 타자를 온전히 만날 수는 없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배정원이 말하는 '아름다운 이별의 환상' 역시 우리가 관계의 본질적 불가능성을 부인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상담실에서 만난 한 내담자는 "완벽했던 우리가 왜 헤어져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울먹였다. 하지만 정신분석적 탐색을 통해 드러난 것은, 그가 사랑했던 것이 실제의 연인이 아니라 자신이 투사한 이상적 이미지였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자신의 결핍을 메워줄 완벽한 대상을 상대방에게서 찾으려 했고, 상대 역시 마찬가지였다. 두 환상이 더 이상 맞물리지 않을 때, 관계는 필연적으로 위기를 맞는다.
욕망의 미끄러짐과 이별의 지연
"힘들다는 이유로 이별을 유보하고 시간만 끄는 것, 원치 않는 관계를 견디는 것은 두 사람 모두에게 현명한 일이 아니다"는 저자의 지적을 읽으며, 나는 라캉이 말한 '욕망의 환유적 특성'을 떠올렸다. 욕망은 결코 한 곳에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미끄러진다. 그럼에도 우리는 마치 욕망을 고정시킬 수 있는 것처럼, 관계를 붙잡으려 한다.
정신분석 상담에서 자주 목격하는 현상이 있다. 이미 욕망이 다른 곳으로 향했음에도, 죄책감과 초자아의 명령 때문에 관계를 유지하려는 사람들. 그들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당위에 묶여, 자신의 진정한 욕망을 억압한다. 하지만 억압된 것은 반드시 회귀한다. 증상의 형태로, 실수 행위로, 때로는 더 파괴적인 방식으로.
한 내담자는 이별을 결심하고도 1년 넘게 관계를 유지했다. 그 기간 동안 그는 원인 모를 불안과 불면증에 시달렸고, 업무에도 집중할 수 없었다. 정신분석 과정에서 밝혀진 것은, 그가 '상대를 버리는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을 견딜 수 없어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별을 지연시킴으로써 그는 상대에게 더 큰 상처를 주고 있었다. 저자가 말하듯, "오히려 빨리 정리하고 새 출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 배려"일 수 있다.
반복 강박과 이별의 어려움
"그 헤어짐의 대사가 우리 입을 떠나기 전에 수천수만 번 생각했을 '정말 더 이상 안 되는 걸까?'에 대한 질문과 답이 오갔다 하더라도!"라는 구절은 프로이트가 말한 '반복 강박'을 연상시킨다. 우리는 고통스러운 상황임에도 익숙한 패턴을 반복하려는 무의식적 충동을 갖고 있다.
상담실에서 만나는 많은 이들이 불행한 관계 패턴을 반복한다. 그들은 의식적으로는 변화를 원하지만, 무의식적으로는 익숙한 고통 속에 머물고자 한다. 이별을 앞두고 수천 번 자문자답하는 것 역시, 어쩌면 이미 알고 있는 답을 회피하려는 방어기제일 수 있다.
라캉은 우리가 '향유(jouissance)'라고 부르는 고통스러운 만족에 중독되어 있다고 말한다. 불행한 관계에서도 우리는 일종의 향유를 얻는다. 그것이 고통스럽더라도 말이다. 이별이 어려운 이유는 단순히 상대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그 관계에서 얻던 특정한 향유의 방식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주체의 진실과 감정의 정당성
"자신의 감정은 늘 옳다"는 저자의 말은 정신분석의 핵심 전제와 맞닿아 있다. 라캉은 무의식이 '주체의 진실'을 담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 특히 불편하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감정일수록, 그것은 우리의 무의식적 진실을 가리키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상담 과정에서 나는 내담자들에게 자주 묻는다. "당신이 느끼는 그 감정이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요?" 많은 이들이 자신의 감정을 판단하고 검열한다. '이런 걸 느껴선 안 돼', '내가 이기적인 거야' 같은 자기 비난으로 진짜 감정을 덮어버린다. 하지만 정신분석은 그 감정의 편에 선다.
한 내담자는 "객관적으로 봐도 완벽한 연인"과의 이별을 고민하며 죄책감에 시달렸다. 하지만 분석 과정에서 드러난 것은, 그 '완벽함'이 오히려 그를 질식시키고 있었다는 것이다. 상대의 완벽함 앞에서 그는 자신의 결핍과 욕망을 드러낼 수 없었고, 그것이 그를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그의 감정은 옳았다. 그것은 주체로서의 그가 살아있기 위한 신호였다.
대타자의 욕망과 이별의 유보
정신분석적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이별을 유보하는 이유 중 하나는 '대타자의 욕망'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라캉이 말하는 대타자(Autre)는 우리가 내면화한 사회적 규범, 부모의 기대, 이상적 자아상 등을 포함한다. 우리는 종종 자신의 욕망보다 대타자가 우리에게 원한다고 가정하는 것을 따른다.
"좋은 연인은 끝까지 노력해야 한다", "사랑은 인내다", "쉽게 포기하면 안 된다" 같은 명제들이 우리를 옭아맨다. 하지만 이것들은 정말 우리의 욕망인가, 아니면 대타자의 요구인가? 상담실에서 이 질문을 던질 때, 많은 내담자들이 당황한다. 그들은 처음으로 자신의 욕망과 타자의 욕망을 구분해보려 시도한다.
배정원이 말하는 "원치 않는 관계를 견디는 것"의 이면에는, 대타자의 시선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실패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을까' 같은 불안. 하지만 라캉은 말한다. 대타자 역시 결핍된 존재라고. 완벽한 답을 가진 대타자는 없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그 시선은 실은 우리 자신이 만들어낸 환상일 수 있다.
분리의 작업과 애도의 과정
정신분석에서 이별은 단순한 관계의 종료가 아니라 '분리(séparation)'의 작업이다. 라캉에 따르면, 주체는 타자로부터 분리됨으로써 비로소 자신의 욕망을 찾을 수 있다. 이별은 고통스럽지만 필수적인 주체화 과정의 일부다.
저자가 "빨리 정리하고 새 출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강조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애매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애도를 지연시킨다. 프로이트가 「애도와 우울증」에서 지적했듯, 애도는 상실을 받아들이고 리비도를 회수하여 새로운 대상에게 투자할 수 있게 하는 정상적인 과정이다. 하지만 이별을 유보하면, 이 애도 작업이 시작될 수 없다.
한 내담자는 "헤어지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것이 바로 분리 불안의 핵심이다. 우리는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구성하기에, 이별은 자아의 일부를 잃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정신분석은 이 상실을 통해서만 진정한 주체가 출현할 수 있다고 본다.
실재의 만남으로서의 이별
라캉의 관점에서 이별은 '실재(Réel)'와의 만남이다. 실재는 상징화될 수 없는, 언어로 포착할 수 없는 영역이다. 우리가 관계를 맺는 동안에는 상상적 환상과 상징적 의미들로 실재를 덮어둘 수 있다. 하지만 이별의 순간, 그 모든 의미가 붕괴하며 실재가 드러난다.
"누구도 사랑했던 사람과의 이별은 쉽지 않다"는 저자의 말처럼, 이별은 우리를 무력하게 만든다. 그것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실재와의 대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신분석은 이 실재와의 만남이 주체에게 필수적이라고 본다. 환상을 가로지르고 실재를 대면할 때, 비로소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다.
나가며: 불가능성을 받아들이기
『배정원의 사랑학 수업』을 정신분석적 렌즈로 다시 읽으며, 나는 사랑과 이별에 대한 더 깊은 이해에 도달할 수 있었다. "성관계는 없다"는 라캉의 명제가 비관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실은 이것이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완벽한 합일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불가능한 것을 추구하는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
저자가 말하는 "자신의 감정은 늘 옳다"는 것은, 정신분석적으로 보면 주체의 무의식적 진실을 인정하라는 요청이다. 우리의 증상, 실수, 불편한 감정들은 모두 무언가를 말하고 있다. 그것들을 억압하거나 부인하는 대신 귀 기울일 때, 우리는 자신의 진정한 욕망에 다가갈 수 있다.
정신분석 상담가이자 사주상담가인, 나는 이별의 고통 속에서도 주체가 성장할 가능성을 본다. 이별은 환상의 붕괴이자 실재와의 만남이며, 고통스러운 분리이자 새로운 주체화의 기회다. 배정원의 책이 제시하는 현실적 조언들이, 정신분석의 통찰과 만날 때 더욱 깊은 의미를 갖게 되는 이유다.